실험실의 큰 다툼, 분란조차 추억이다

에디터 2023. 12. 27.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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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춘란 박사는 자매결연 맺은 중국 절강대(浙江大, Zhejiang University) 의대에서 처음으로 동아대에 연구 유학을 오신 분이다.

강의 후 절강대 의대 학장께서 얀 박사를 소개하셨다.

이미 충분하였던 벤치를 얀 박사 때문에 하나 더 도입하여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얀 박사와 관련된 불쾌한 기억은 더 생각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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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현의 의학 논문 속 사람 이야기]

논문 22: Yan C, Oh JS, Yoo SH, Lee JS, Yoon YG, Oh YJ, Jang MS, Lee SY, Yang J, Lee SH, Kim HY, Yoo YH. The targeted inhibition of mitochondrial Hsp90 overcomes the apoptosis resistance conferred by Bcl-2 in Hep3B cells via necroptosis. Toxicol Appl Pharmacol. 2013;266:9-18.

■사람: 얀춘란(중국 절강대 의대)

■학문적 의의: 미토콘드리아의 샤페론인 Hsp90 표적 제어 연구

얀춘란 박사는 자매결연 맺은 중국 절강대(浙江大, Zhejiang University) 의대에서 처음으로 동아대에 연구 유학을 오신 분이다.

양교 자매결연 축하 행사로 절강대 의대에서 국제심포지엄이 열렸고 나는 연자로 강의하였다. 강의 후 절강대 의대 학장께서 얀 박사를 소개하셨다.

중국 절강대 의대 국제심포지움 연자들. 왼쪽 두번째가 필자. [사진=유영현 제공]

얀 박사는 서툰 영어로 인사를 하고는, 대뜸 한 꾸러미 선물을 주며 고맙다고 인사하였다. 출국 전 학교 귀띔은 받았지만, 일상적인 인터뷰 기회라 예상하였는데 전혀 양상이 달랐다.

얀 박사는 내가 연수를 이미 허락하였다는 태도를 보였다. 절강대 의대 학장께서도 내게 "잘 부탁한다"고 말씀하셨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원활할 것 같지 않아 연수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분위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더 의견을 낼 수는 없었다.

귀국 후에도 얀 박사 연수는 내 의사와 관계없이 흘러갔다. 오히려 양교 자매결연 후 첫 교류 행사로 신속히 추진되었다. 마침내 얀 박사가 입국하였고 실험실 생활을 시작하였다.

얀 박사의 연수는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까다로운 성격으로 나를 비롯한 모든 동료에 큰 불편을 끼쳤다. 이전에는 전혀 문제 되지 않던 낮은 음악 소리에도 신경질을 부렸다.

공동 화장실에는 에티켓을 주장하는 한문을 써서 크게 붙여 놓았다. 입도 짧아 함께 회식하면 음식을 거의 먹지 않고 남겨 무안케 하였다. 그러면서 "한국 음식은 피자만 맛있다"는 말도 서슴없이 하였다.

본인이 중국 공산당원임을 자주 내비치며 선택받은 귀족 같은 태도를 보여 실험실 동료들과 융화는 기대할 수 없었다. 내게 묻지도 않고 며칠 동안 대만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였다.

시간이 가면서 문제가 이어졌다. 성능 좋은 세포배양 벤치 사용을 독점하려고 매일 아침 실험실원들과 다투었다. 이미 충분하였던 벤치를 얀 박사 때문에 하나 더 도입하여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하였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씩씩대며 출근하는 얀 박사가 목격되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어 실험실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그날 얀 박사는 단백질 트랜스퍼 예약자 명단에 이름을 쓰지도 않고 일찍 출근하여 기기를 선점하였다. 해당 시간에 예약해 두었던 연구원은 "얀 박사가 기기를 불법 선점하였다"고 항의하였다.

둘은 삿대질하며 거의 몸을 부딪칠 듯 심하게 다투었다. 생전 경험하지 못하였던 장면이었다. 우습기도 하였다.

막상 싸움이 벌어지자 얀 박사 영어가 평소보다 아주 유창하였다.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싸움을 바라보았지만 내심 웃고 있었다.

얀 박사는 1년 연구 후 제대로 된 자료를 내지 못하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늘 그렇듯 마무리는 책임자인 내 몫이다. 나는 대학원생 한 사람에게 보강실험을 지시하고, 논문을 작성하였다.

다행히 본 논문은 독성학 권위지('TAAP')에 최종 게재되었다. 논문 채택 소식에는 이메일로 격한 기쁨을 표시하였다. 자신이 과거 게재하지 못하였던 수준의 잡지에 논문을 게재하였다면서 깊은 감사를 표하였다.

그는 이후에도 기대 이상으로 자주 이메일을 보내왔다. 귀국한 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날 때까지 소식을 전하였고 항주(杭州)의 특산품 차를 보내는 등 정을 보여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얀 박사와 관련된 불쾌한 기억은 더 생각나지 않았다. 이 논문을 돌아보니 그해 경험하였던 특별한 분란이 소록소록 기억난다. 이 분란조차 은퇴를 맞는 내겐 소중한 추억이다.

에디터 코메디닷컴 (kormedimd@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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