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산소 환경 좋아하는 암세포 `꼼짝마`…사멸 유도 `단백질` 찾았다

생명연, 암세포 안정성 유지 단백질 찾아
SETDB1 단백질로, 제어하면 암세포 사멸 유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저산소 환경에서 세포가 안정성을 유지하게 하는 단백질을 찾아냈다. 김정애 박사(왼쪽), 김정훈 박사(가운데), 제1저자 박성렬 박사(오른쪽) 생명연 제공

산소 농도에 따른 SETDB1 단백질의 조절 모식도

국내 연구진이 암이 저산소 환경에서 더 강한 생존력을 가질 수 있게 유도하는 단백질을 찾았다. 이 단백질을 억제하면 저산소 환경을 좋아하는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사멸시킬 수 있는 혁신 신약개발에 활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김정훈·김정애 박사 연구팀이 저산소 환경에서 세포가 안정성을 유지하는 기전을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고 27일 밝혔다.

산소는 세포 생존과 성장의 핵심 요소 중 하나다. 일반 대기 중 산소 농도(약 21%)보다 낮은 저산소 환경에 노출된 세포는 살아남기 위해 분자 수준에서 리프로그래밍을 한다. 이 과정에서 환경 적응에 실패한 세포는 죽는다.

암세포는 조직 내에서 저산소 환경에 빈번히 노출되는 탓에 저산소 적응 리프로그래밍이 더 활발히 일어나 정상세포보다 생존확률이 높다. 이 때문에 암세포의 저산소 적응 리프로그래밍을 저해시켜 암세포를 제거하는 방법이 새로운 항암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연구팀은 저산소 환경에서 히스톤 메틸화 효소인 'SETDB1' 단백질이 유전체의 안정성을 유지하게 하고, 이를 제어하면 유전체 안정성이 깨져 세포사멸이 유도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실제로, 산소 농도가 낮아지면 SETDB1 단백질과 VHL(종양억제 유전자)의 결합이 약해져 SETDB1 단백질이 증가한다. 이 단백질의 증가를 억제하면 SETDB1 단백질에 의한 히스톤 메틸화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비정상적인 유전자 발현이나 DNA 손상이 발생해 유전체가 불안정해지고, 세포사멸이 일어나는 것을 연구팀은 확인했다.

김정훈 생명연 박사는 "암과 같은 저산소 적응성 질환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분자 표적을 찾아낸 연구결과"라며 "향후 SETDB1을 억제하는 혁신신약 개발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결과는 생명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핵산 연구' 최신호에 게재됐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