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개에게 건포도를 주면 안 되는 이유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2023. 12. 2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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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이름 붙이기. 교보문고 제공

지난 8월 '과학카페' 글에서 독서의 계절은 여름이라며 책 두 권을 소개하며 그 가운데 한 권인 ‘The Good Virus(착한 바이러스)’를 서평 형식으로 다룬 적이 있다.

참고로 당시 글 앞부분에서 캐럴 계숙 윤의 책 ‘Naming Nature’를 잠깐 언급하며 “2009년 출간됐음에도 한글판이 없는 게 아쉽다”고 했는데, 다행히 10월에 ‘자연에 이름 붙이기’라는 제목으로 번역서가 나왔다. 관심 있는 독자들은 읽어보기를 권한다.

당시 독서의 계절은 가을이 아니라 무더위로 외부 활동이 힘든 여름이라고 했는데, 같은 맥락에서 역시 돌아다니기에 부담스러운 겨울 역시 독서의 계절이 아닐까 한다. 올해 마지막 글로 최근 재미있게 읽은 책을 다루며 실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소개한다. 다만 원서가 나온 지 얼마 안 돼 아직 한글판은 없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진화생물학자 노아 휘트먼 교수가 쓴 ‘가장 감미로운 독’. 식물의 독성물질이 인간의 삶에 미친 영향을 많은 사례를 들어가며 재미있게 설명했다. 교보문고 제공

● 화학전에 끼어든 인류

‘Most delicious poison(가장 감미로운 독)’이라는 알쏭달쏭한 제목의 책은 화학생태학과 의학, 인류학을 넘나들며 각종 흥미로운 사례와 심오한 통찰을 제시한다. 화학생태학이란 생물이 생체분자를 통해 동종 또는 이종 사이에 상호작용하는 현상을 연구하는 분야다.

주로 식물과 이를 먹이로 삼는 미생물이나 동물 사이의 속고 속이는 화학전이 널리 연구되고 있다. 국내 화학생태학자로는 김상규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교수가 떠오른다.

이동을 할 수 없는 식물은 자기방어를 위해 각종 독성물질 대다수를 인류가 진화하기 훨씬 전 발명해 요긴하게 써왔다. 사람 역시 식물이 만든 독을 일정 수준 이상 섭취하면 탈이 나고 심하면 목숨을 잃기도 한다. 식물을 먹이로 삼는 초식동물은 물론 분류상 거리가 먼 절지동물도 사람과 생화학적으로 겹치는 면이 꽤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류는 식물이 만드는 독을 의도적으로 적당량 더해 음식의 풍미를 높이거나 소량을 섭취해 병을 고치는 약 또는 기분을 좋게 하는 용도(마약 대부분이 식물 독 또는 이를 살짝 바꾼 분자다)로 쓰고 있다. 책 제목이 ‘가장 감미로운 독’인 이유다. 책에는 흥미로운 사례들이 많은데 여기서는 최근 화제가 된 사건이나 실생활에 관련이 깊은 세 가지를 소개한다.
 

빈대와 벼룩, 모기 같은 해충은 국화과 식물인 제충국에 들어있는 피레트린(pyrethrin)에 노출되면 신경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다. 반면 사람이나 새에게는 거의 독성이 없다. Most delicious poison 제공

● 살충제 내성 빈대 퇴치하는 법

지난여름 프랑스 파리에서 빈대가 출몰해 골치라는 외신에 별일이다 싶었는데 가을에 우리나라에서도 빈대가 나타나 깜짝 놀랐다. 그 뒤 조사에 들어가자 곳곳에서 빈대가 발견돼 충격을 줬다. 게다가 기존 살충제에 내성을 지녀 퇴치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빈대를 비롯해 벼룩, 이, 모기 등 소위 해충으로 알려진 절지동물에게 치명적인 독성을 보이는 식물 성분이 있다. 바로 제충국(除蟲菊)이라고 부르는 국화과 식물에 들어있는 피레트린이다. 식물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제충국을 천연 살충제로 써왔고 그럼에도 절지동물 대다수는 내성을 진화시키지 못했다.

피레트린은 절지동물을 비롯한 무척추동물의 신경세포에 있는 나트륨 통로 단백질에 달라붙어 흥분(신호전달)을 멈추지 않게 해 근육수축과 마비를 일으키고 궁극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

피레트린은 단백질이 기능을 하는데 결정적인 부위에 달라붙기 때문에 돌연변이가 일어나 붙지 못하게 되더라도 동시에 기능도 잃어 살아남지 못한다.  그런데 척추동물의 진화과정에서 피레트린이 달라붙지 못하면서도 기능을 유지하는 변이가 일어났다. 덕분에 사람과 새는 피레트린에 노출돼도 별문제가 없다. 다만 어류나 고양이 같은 일부 척추동물은 피레트린을 해독하는 효소가 없어 여전히 위험하다. 

피레트린에 취약한 무척추동물인 파란고리문어나 어류인 복어, 양서류인 영원(newt)은 공생하는 박테리아가 만든 테트로도톡신(tetrodotoxin)으로 무장해 공격에 대비한다. 그런데 테트로도톡신 역시 나트륨 통로 단백질에 달라붙어 작용한다.

다만 포유류와 조류의 단백질의 특정 부위를 표적으로 삼고 무척추동물이나 어류의 단백질에는 붙지 않는다. 천연물의 독성은 내재적 속성이 아니라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속성이라는 말이다.

동물은 먹이에 따라 육식동물(고양이), 잡식동물(사람), 주로 풀을 먹는 초식동물(양), 주로 잎을 먹는 초식동물(사슴)로 나눌 수 있다. 퀴닌(quinine)으로 쓴맛 민감도를 조사한 결과 이 순서로 민감하고 식물 독에 대한 해독 능력은 이 순서로 약하다. Most delicious poison 제공

● 해독 능력 약한 개와 고양이

동물은 먹이에 따라 육식동물, 잡식동물, 초식동물로 나뉜다. 그런데 책을 보니 초식동물을 양처럼 주로 풀을 먹는 동물(grazer)과 사슴처럼 주로 나뭇잎을 먹는 동물(brower)로 세분한다. 그렇다면 네 부류의 쓴맛 민감도 순서는 어떻게 될까. 

식물이 만드는 알칼로이드 같은 독성물질 대다수가 쓴맛이 나므로 얼핏 생각하면 초식동물이 민감하고 이를 먹을 일이 없는 육식동물이 둔감할 것 같다. 그런데 쓴맛이 강한 알칼로이드인 퀴닌으로 실험해보면 육식>잡식>풀>나뭇잎 순으로 쓴맛에 민감하다.

식물을 먹지 않는 육식동물은 이를 해독할 시스템이 부실하기 때문에 식물 독소의 강한 쓴맛에 바로 뱉어낼 수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반면 잎처럼 독소가 잔뜩 들어있는 먹이를 먹는 동물은 뛰어난 해독 시스템이 진화한 상태라 웬만해서는 탈이 나지 않는다. 또 침에 타닌 같은 분자와 결합하는 단백질이 많이 있어 떫고 쓴맛에 둔감하다. 

반려동물의 대명사인 고양이와 개를 키울 때 먹이에 주의해야 하는 것도, 이들이 육식동물 또는 육식동물(늑대)의 생리에서 미처 적응하지 못한 잡식동물이기 때문이다. 식물 독에 대한 사람의 해독력이 이들보다 훨씬 뛰어난 이유다.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우리에겐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이 고양이와 개에게는 소량 섭취도 치명적인 독약이다. 초콜릿에 풍부한 알칼로이드인 테오브로민을 해독하지 못해 심장과 신경계에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포도나 건포도조차 개에게 주면 안 된다. 여기에 고농도로 들어있는 타타르산이 급성 신부전증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고기에 섞인 마늘이나 양파 같은 양념 채소도 조심해야 한다. 여기 들어있는 이황화물이 G6PD라는 효소의 활성을 방해해 빈혈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반면 사람에서는 바로 소화되거나 해독돼 별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개와 고양이는 사료나 전용 간식만 먹이는 게 안전하다는 말이다.

커피에는 카페인을 비롯해 수백 가지 성분이 들어 있고 추출법에 따라 우려 나오는 정도가 다르다. LDL 수치가 높은 사람은 프렌치프레스처럼 필터 없이 추출하는 커피는 피하는 게 좋다. 간에서 LDL을 합성하게 유도하는 물질인 카페스톨과 카와웰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강석기 제공

● 프렌치프레스와 LDL

식물이 만드는 독을 분자 유형으로 나누면 알칼로이드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래서인지 책에서도 6장에서 9장까지 네 개 장을 알칼로이드에 할애하고 있다. 참고로 알칼로이드(alkaloid)란 질소(엄밀히 말하면 아민)를 함유한 분자로 수용액이 대체로 알칼리성(염기성)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우리가 즐기는 기호식품인 커피와 담배의 주성분인 카페인과 니코틴도 알칼로이드로 책에서는 둘을 따로 떼어내 7장에서 자세히 다뤘다. 그런데 도입부를 읽다가 충격을 받았고 다음날부터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을 바꿨다. 그전까지는 핸드드립과 프렌치프레스를 번갈아 이용했는데 이제는 프렌치프레스 기구를 찬장에 넣고 핸드드립으로만 마시고 있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프렌치프레스를 알고는 있었지만 이걸로 추출한 커피를 마셔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스타벅스 하워드 슐츠 회장의 인터뷰를 읽다가 “가장 맛있는 커피는 프렌치프레스로 우려낸 것”이라는 구절이 인상에 남았다. 마침 스타벅스 매장에 프렌치프레스 기구가 있어 샀고 그 뒤 즐겨 이용해왔다. 

원두를 사면 하루는 핸드드립으로 하루는 프렌치프레스로 마셔보고 더 낫다 싶은 쪽을 선택하는 식이었다. 참고로 핸드드립은 종이필터로 거르기 때문에 깔끔한 대신 뭔가 풍부함이 부족하고 철망으로 건더기만 분리하는 프렌치프레스는 그 반대 특징에 찌꺼기가 남는 단점이 있다.

책의 저자는 집에서 프렌치프레스로만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그런데 2020년 발표된 한 논문을 읽고 충격을 받아 그 뒤로는 드립 커피만 마신다고 한다. 노르웨이 사람 50여만 명을 대상으로 커피와 사망률의 관계를 조사한 결과, 프렌치프레스처럼 필터를 쓰지 않은 추출법으로 커피를 마신 그룹은 필터로 거른 커피를 마신 그룹은 물론 커피를 마시지 않는 그룹보다도 20년 추적 조사 기간 사망률이 더 높았던 것이다. 왜 그럴까.

커피에는 카페인뿐 아니라 수백 가지 물질이 들어 있는데 이 가운데 카페스톨(cafestol)과 카와웰(kahweol)이라는 분자가 문제였다. 이 둘은 구조가 호르몬과 비슷해 소장 세포의 호르몬 수용체에 달라붙어 간에게 저밀도지질단백질(LDL) 콜레스테롤을 만들라는 신호를 보낸다. 놀랍게도 필터 없이 추출한 커피에는 필터를 쓴 커피에 비해 두 분자가 30배나 들어 있다. 

건강검진에서 필자의 LDL 수치가 정상 범위를 살짝 넘는 게 이상했는데 어쩌면 프렌치프레스 커피를 즐겨 마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끊었으니 내년 검진에서 수치가 떨어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참고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로 아메리카노나 카페라테 같은 에스프레소 기반 커피를 마시는데, 두 분자의 함량이 드립 커피보다는 많지만 프렌치프레스보다는 훨씬 적다고 한다. 고압에서 순간 추출하기 때문에 덜 추출되는 것으로 보인다.

글을 쓰다 보니 한동안 안 마신 프렌치프레스 커피의 풍미가 생각난다. 내일 아침에는 오늘 사 온 에티오피아 케라모 원두를 모처럼 프렌치프레스로 우려내 한 잔 마셔야겠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10권), 《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 《식물은 어떻게 작물이 되었나》가 있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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