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다리를 자르거나, 아니면 죽거나’…비극적 선택에 몰린 가자지구

김서영 기자 2023. 12. 2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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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 주민들이 지난달 10일(현지시간) 살라 알딘 도로를 따라 남부로 피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팔다리를 자르느냐, 아니면 죽느냐’

가자지구에 사는 사이마 나바힌(22)은 공습으로 발목이 부분적으로 절단된 후 병원에서 패혈증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그에게 생존하기 위해서는 왼쪽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바힌은 결국 왼쪽 무릎 아래 15cm를 절단하기로 했다. 그는 절단 이후 진통제 없이는 잠을 잘 수 없다고 했다. 나왈 자베르(54)도 지난달 이스라엘 공습으로 집이 파괴됐을 때 상처를 입고 양쪽 다리를 절단했다.

가자지구 의료 상황이 날로 열악해지며 많은 부상자들이 이 같은 딜레마에 빠졌다고 26일(현지시간) AP통신이 보도했다.

이스라엘의 공습과 건물 붕괴 등으로 팔다리에 상처를 입어 병원으로 이송된 부상자와 이들을 치료하는 의료진은 힘든 선택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신체 일부를 잃은 이들이 만약 부상 이후 적절한 처치를 받았더라면 절단까지는 필요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병원으로 옮겨진 후에도 더 긴급한 환자에게 우선 순위를 내주거나, 의료진과 의료용품 부족으로 마땅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 AP에 따르면, 가자지구 병원 36개 중 9개만이 운영되고 있으며 그나마도 장비와 인력이 부족해 제대로 처치와 수술을 할 수 없다.

나바힌은 자신이 알아크사 병원으로 이송돼 상처 부위를 봉합하고 지혈했으나, 점점 중상자가 늘어나며 의료진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 사이 그의 다리는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 인생 전체가 바뀌었다. 한 걸음이라도 걸으려면, 어디든 가려면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나세르 병원에서 일했던 의사 주르델 프랑수아는 “다리가 으스러졌지만 다른 환자에 밀려 수술을 받지 못했던 어린 소녀는 결국 그날 밤 사망했다. 아마도 패혈증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매일 50여명이 몰려든다. 선택해야만 한다”고 했다.

가자지구 중부 데이르 알발라에서 지난 25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알마가지 난민촌 공습으로 숨진 이들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최근 가자지구 내 여러 병원을 둘러본 세계보건기구(WHO)의 숀 케이지는 “외상에 가장 먼저 대응할 수 있는 혈관 외과 의사가 심각히 부족해 사지 절단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장애를 입은 이들이 일상으로 복귀하기에는 가자지구의 환경이 너무나 열악하다는 점도 문제다. 가자지구 인구 약 230만명 중 85%가 피란민이 됐다. 이들 대부분은 임시 텐트, 쉼터로 개조한 학교, 친척 집 등에 살고 있다. 가자지구는 물과 음식, 기본 생필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스라엘은 지난 며칠 동안 가자지구 중부에 공습을 강화했다. 데이르 알발라, 부레이 난민촌, 알마가지 난민촌 등에서 부상자가 급증했다. 최근 가자지구 내 병원들을 방문하고 있는 WHO는 “병원은 가자지구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악몽의 축소판”이라고 지적했다. WHO와 국경없는의사회는 의료용품 전달을 위해서라도 휴전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유엔은 이날 가자지구에 대한 구호품 전달을 지휘할 인도주의·재건 조정관으로 시흐리트 카흐 네덜란드 재무장관을 임명했다. 카흐 조정관은 다음달 8일부터 가자지구에서 유엔의 구호품 운송을 촉진, 조율,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지난 2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가자지구 인도주의·재건 조정관을 임명하도록 유엔 사무총장에 요청한 바 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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