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따라하다 ‘노잼도시’로”···주혜진 대전세종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윤희일 기자 2023. 12. 2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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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진 대전세종연구원 책임연구원이 지난 22일 대전세종연구원에서 ‘노잼도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윤희일 선임기자

“대전의 ‘힙’하고 ‘핫’한 장소 이야기는 끊임없이 ‘서울’을 기준으로 만들어지고 퍼져요. 서울만큼 멋지고 서울만큼 근사해야 즐길 만한 장소가 되는 거고요. 서울 기준으로 생각하다 보니 많은 것들이 서울과 비슷해지는 거죠.”

주혜진 대전세종연구원 책임연구위원(사회학 박사)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대전이 이른바 ‘노잼’(재미없는) 도시가 된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주 위원은 최근 <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라는 책을 펴냈다.

지난 22일 대전세종연구원에서 만난 그는 “결국 성심당(동네빵집)과 같은 대전의 대표적인 곳은 ‘사진을 찍고 오는 것’으로 충분한 곳이 돼버렸다. ‘유명한 장소에 대한 인증’만 넘치게 되는 것”이라며 “이런 식으로 가면 대전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도시가 노잼도시가 될 게 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 소멸 시대를 맞이한 한국의 지방 도시에는 어느덧 ‘서울 같은 도시가 되어야 한다’는 생존전략만 남았다”고 말했다.

<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의 표지. 스리체어스 제공

대전을 ‘노잼도시’로 명명한 책까지 내게된 이유로 주 위원은 “도대체 얼마나 재미가 없길래 노잼도시 소리를 듣는 것일까 싶었다”며 “이에 대한 해답을 정리하다 보니 한 권의 책이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을 모방하는 것과 노잼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면서 “서울이 될 수 없는 지방도시들은 결국 노잼일 수밖에 없고 노잼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서울을 좇는 악순환을 거듭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서울 익선동 카페거리와 비슷해지는 대전 소제동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누군가의 뒤를 쫓는 ‘추격’의 특징은 ‘하나의 방향’을 지향하는 데 있습니다.”

주 위원은 이 책에서 ‘서울’을 ‘모든 것을 독점하는 존재’로 정의했다. 그는 “서울은 이야기를 독점하고, 문화를 독점하고, 심지어 도시를 향한 한국인의 상상력에 보이지 않는 천장까지 만든다”고 지적했다. 서울이 모든 것을 독점하고 모든 것의 기준이 되는 현재 상황에서 대한민국 대부분 도시는 결국 노잼도시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주 위원의 생각이다.

주혜진 대전세종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이 지난 22일 대전 유성구 대전세종연구원에서 도시가 이른바 ‘노잼도시’가 되어 가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희일 선임기자

노잼도시라는 딱지를 떼어 버릴 방법은 없을까. 그는 ‘나와 도시 사이의 즐거운 관계 만들기’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주 위원은 “지방 도시들이 ‘고유 정체성’을 내세우면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정체성 또는 특색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지역 정체성은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다”라며 “정체성은 그 지역 주민들이 이웃과 일상을 매일 살아가면서 만들어가는 중인 어떠한 ‘과정’ 또는 ‘삶’ 그 자체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각 지방 도시를 살아가는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또는 도시를 찾아간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도시와 즐거운 관계를 맺어보면서 깊게 느끼고 그 느낌을 적극 표현하고 공유해 나간다면 나중에 그 도시에 애틋함이 생겨날 것”이라며 “결국 그 도시는 ‘노잼도시’가 아니라 ‘나의 도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주 위원은 이어 “도시정책을 펴는 지방자치단체들도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 그 도시를 찾는 사람들이 깊게 관계 맺고 진짜로 느낄 수 있게 하고 느낀 것을 기록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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