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더 라이프이스트-성문 밖 첫 동네, 충정로 이야기]
28, 동양극장 2
동양극장을 설립한 홍순언의 부인, 배구자를 지난 편에 소개했다. 오늘은 그를 무용수로 키운 배정자를 소개한다. 배정자에게 따라다니는 말이 있다. ‘요화(妖花)’, ‘조선의 마타하리’이다. 둘 다 부정적인 이미지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마타하리는 독일 정보기관에 2만 마르크를 받고 연합군 고위 장교들을 유혹, 군사 기밀을 독일군에 넘긴다. 그녀의 활약은 연합군에게 치명적이었다. 연합군 5만 명의 목숨과 바꿀 수 있는 정보가 마타하리에 의해 독일로 흘러갔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여인이 있었다. 배정자. 그녀에 대해 알게 되면 의아함과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동시에 느낀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요화 배정자’라는 영화가 있었다는데 1966년에 개봉된 이 영화 주제가가 금지곡이 됐다. 이 노래에는 '세상을 제멋대로 희롱도 하고 청춘을 마음대로 불태웠지만 요염한 눈동자에 슬픔은 있어 기구한 운명 속에 몸부림을 치면서 그 사람 보내놓고 슬피 우는 배정자'라는 가사가 들어있다. '세상을 제멋대로 희롱도 하고 청춘을 마음대로 불태웠다’는 가사 한 줄에 그녀의 삶이 압축된다. 그녀는 1897년 10월 고종이 황제로 등극해 탄생한 대한제국을 농단해 나라를 멸망케 했다. ‘청춘을 마음대로 불태웠다’는 가사에는 지독한 남성 편력이 녹아 있다. 정보를 빼내 일본에 바쳐 나라를 팔았고, 자신의 치마폭에 수많은 남성을 끌어들여 성적 노리개로 삼았다. 이런 여자이기에 영화 주제가에 ‘슬픔’, ‘기구한 운명’이란 말들은 맞지 않는다. 영화는 너무 배정자를 미화했다. 그녀의 못된 인생사를 알면 이 노래가 금지곡이 된 이유를 알 것이다.
배정자(裵貞子, 1870~1952)의 아버지 배지홍은 흥선대원군과의 인연으로 민씨 척족의 미움을 사 처형당한다. 이때부터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이 시작된다. 유랑 걸식하다가 양산 통도사에서 비구니가 됐다. 그러나 체질상 절에서의 한적한 생활은 견딜 수 없었다. 곧 환속 후, 아버지 친구의 소개로 일본으로 잠입한다. 거기서 만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을 만난다. 갑신정변 후 일본으로 망명한 김옥균을 만났다. 그의 소개로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가 된다. 사실은 내연녀였다. 동양극장을 세운 배구자가 이토 히로부미와 배정자 사이의 딸이라는 말도 이래서 나왔다. 이토는 배정자에게 승마를 비롯해 수영, 사격, 일본어, 국제 예절을 교육한다. 본격적인 스파이 교육이다. 빼어난 외모, 정확한 상황 판단력, 영리한 두뇌를 소유한 배정자를 혼자 독점하기에는 활용 가치가 너무 컸다. 서양에도 이런 고급 과정을 이수한 스파이가 있었을까 싶다.
그녀는 스파이 교육을 받은 후 돌아와 고종에게 접근한다. 명성황후가 일본에 유린당한 을미사변 후 적적하게 생활하던 고종도 배정자의 교태에 넘어갔다. 그녀의 공작으로 많은 기밀이 쥐도 새도 모르게 일본으로 흘렀다. 마치 구약성경에서 삼손이 적국 블레셋의 여인 들릴라에게 머리카락의 비밀을 알려줘 죽음에 이른 것과도 같다. 배정자에게 고종은 너무 쉬운 상대였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친러파는 고종의 안전을 생각해 블라디보스토크로 피신시키려 했다. 이런 고급 정보가 사전에 탄로 났다. 많은 기밀들이 술술 잘도 흘러갔다. 그러나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에 의해 제거됐다. 배정자의 위기다. 그러나 그녀를 눈여겨 보아온 조선 주둔 헌병사령관이 첩자로 채용한다. 이제 그녀는 진정한 스파이의 길로 들어섰다. 일본군을 따라 시베리아로 가서 왕성하게 활동한다. 어떤 정보가 일본으로 샜는지 알 수 없다. 중국 봉천의 일본영사관에도 근무했다. 그녀가 필요한 곳이면 러시아도 가고 중국도 갔다. 이토 밑에서 배운 모든 기술이 총동원됐다. 독립군과 수상한 조선인의 동태를 파악해 일본으로 넘겼다. 영문도 모르게 죽어간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태평양 전쟁 때는 일본인 위안부 송출 업무에도 뛰어들어 남양군도에 수많은 조선의 아리따운 처녀들을 보냈다.
그녀의 악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국적을 불문하고 수많은 남자를 농락했다. 첫 남편인 게이오대학 재학생 전재식이 병사하자, 소설가 현진건의 삼촌 현영운과도 살림을 차린다. 배정자의 조선어 교사였던 현영운이 농공상부 협판이 된 것은 다 그녀의 공이다. 끊임없이 남자를 바꾼다. 현영운의 후배 친일파 박영철과도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 서대문 정거장(서대문역) 옆에 있었던 스테이션 호텔에서다. 일본인 오하시 등도 농락했다. 한때는 중국의 마적단 두목과도 동거했다. 스파이 활동을 위해 러시아와 중국에 진출한 것처럼 남성 편력도 국적 불문이다. 처음에는 스파이 활동을 위해 얼굴과 몸을 활용했지만, 점점 남자에 중독이 되어버렸다. 영화 ‘색계’에서 탕웨이가 스파이로 양조위에게 접근했지만, 점점 그에게 중독된 것처럼. 그녀의 마지막 남자는 25세 연하인 일본인 순사였다. 50대 할머니가 아들뻘의 청년과 살림을 차렸다. 해방 후에는 반민특위에 체포됐다. 초라하고 늙은 죄수로 전락해 뒤늦게 친일의 죄를 후회했다. 따뜻한 국밥을 한 그릇 먹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여자의 눈물이 모든 것을 용서하게 했나? 별다른 형도 받지 않았다. 70살이 넘어서도 성북구 삼선교 근처에서 진한 화장을 하고 다녔다는데 6.25가 발발하자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게 죽었다. 배정자의 이야기는 여러 번 드라마 소재로 쓰였는데 ‘미스터 선샤인’에도 소개됐다. 우리 근대사에는 이런 드라마틱한 소재들이 넘쳐난다. 이 여자의 조카가 배구자이다. 어쩌면 소문대로 이토 히로부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배정자의 친딸인지도 모르겠다.
극장이 개관하고 배구자 무용단원의 활약이 컸다. 그러나 극장이 흥행한 가장 큰 이유는 역량 있는 극작가들이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많은 작품을 무대에 올렸기 때문이다. 주로 최루성 내용과 화류계의 비애, 청춘 남녀의 애정을 다룬 작품들이다. 작품은 비극으로 끝나 객석은 늘 울음바다가 됐다. 그러면 대성공이다. 자극적이고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내용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똑같다.
가장 히트한 작품이 임선규 작가가 대본을 쓴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이다. 이 작품은 전 4막 5장으로 전속 극단 ‘청춘좌’에 의해 1936년 7월 23일부터 31일까지 동양극장에서 초연됐다. 상연 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였는데 이 시간 동안 관객들은 울고 웃고, 때로는 분노하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우리에게도 참 익숙한 작품이다. 지금도 곧 잘 리메이크되고 화제가 되는 노래, ‘홍도야 울지마라’라면 이해하시려나.
초연된 지 3년이 지나도 인기가 수그러들지 않자 영화로 만들어졌다. 1939년 이서구가 가사를 쓰고 김준영이 곡을 만든 영화 주제가로 극 중에서는 오빠 철수가 부르는 노래다. 주제가가 인기를 끌자 아예 극 중 노래가 영화제목이 됐다.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아버지 백일섭이 술만 마시면 부르던 노래다. 당시에 이 노래는 요리집, 목노집, 색주가집, 거리마다 불려졌다. 해방 전까지 가장 많이 불린 대중가요이고 지금도 심심치 않게 불린다. 노래방 기계가 없던 시절, 누군가 이 노래를 부르면 가사를 모르는 사람도 대충 흥얼거리다가 ‘호~옹 도오~ 야~’ 하는 소절에서 모두가 있는 힘을 다해 부른다. 젓가락 장단은 필수다. 내용은 오빠 철수의 학비를 벌기 위해 기생이 된 홍도가 부잣집 아들이며 오빠 친구 광호를 만나 결혼하게 되지만, 결국 시어머니의 괄시와 시누이의 음모로 남편에게서 버림을 받는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홍도는 남편의 약혼녀까지 살해한 뒤 순사가 된 오빠에게 잡혀가게 된다는 줄거리다. 사랑, 돈, 배신, 남매의 사랑. 신파의 모든 요소가 다 들어있다. 그러니 성공할 수밖에
당시의 연출가는 이렇게 회상했다. "아무튼 이것을 보러 기생, 오입쟁이, 노나니 꾼, 바람둥이, 시골사람, 촌사람 몰리고 몰려 극장 전면을 환하게 박아 놓은 유리가 모조리 깨지고 서대문 경찰서에서는 정리한다고 나와서는 구경 온 사람을 두들겨 패고 새문 마루턱이 막혀 전차가 못 다닐 지경을 하면서 아흐렛 동안 공연을 했다. 분장실은 홍도 좀 만나자고 찾아드는 기생들로 붐볐고 그 오라비 역을 한 황철이는 도색(桃色) 아가씨들의 인사차 내방으로 핑크색 비명을 올렸었다. 그러면서 그 연출을 맡은 나를 찾는 할미 하나 없었으나 나는 이름을 바꾸고 싶도록 낯이 화끈거렸다."
이 극의 히트로 홍순언의 입이 귀밑까지 찢어졌다. 돈을 주체하지 못 할 정도로 벌었다. 지금 서대문 비탈길에서 90년 전에 벌어진 일이다. 이 연극을 보고 많이 울었던 사람은 장안의 기생들이었다. 나이 어린 기생들은 파트너 남성과 2층의 특별석에서 관람했다. 따지고 보면 지금 우리가 힘들고 괴로워하는 것도 다 사랑과 돈 때문이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운다는 말 이야말로 사랑과 돈의 속성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다. 청춘들은 이성 문제로 잠을 설친다. 청춘뿐인가. 마음속 불덩이를 삭히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밤낮으로 아버지들이 뛰어다니는 것도 다 돈 때문이 아닌가. 사랑은 잡으려 할수록 멀리 도망가고 돈을 벌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지만, 늘 허탕만 치는 것이 인생이다.
극은 성공했지만 관계자들은 어려움을 겪는다. 극작가 임선규는 아내인 배우 문예봉을 따라 월북했고, 주연 홍도를 맡은 차홍녀는 거지에게 적선하다가 천연두에 결려 22세 꽃다운 나이에 급사했다.
동양극장은 홍순언이 죽고 주인이 몇 번 바뀌다 마지막으로 현대건설이 인수해 사원교육 강당(해외취업근로자교육장)으로 사용했다. 1990년 2월 27일, 일제 강점기 민족자본에 의해 건립된 유일한 연극 전용극장이자 한국 신파극의 요람이었던 동양극장이 갑자기 철거됐다. 극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표석 하나만 남았다. 그러나 무표정한 표석만으로 이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도리가 없다. 90년 전, 성문 밖 첫 동네에 벌어졌던 이야기다.
<한경닷컴 The Lifeist> 한이수 엔에프컨소시엄에이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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