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임윤찬 쌍끌이 활약…국제 콩쿠르 우승도 이어져
뮤지컬은 팬데믹 후유증 극복
학전 등 소극장 침체 못 벗어
안팎에서 젊은 음악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피아니스트 조성진, 임윤찬은 새로운 청중을 끌어들이며 세계 무대에서 한국 클래식 음악의 위상을 높였다. 국제 콩쿠르 우승 행렬은 올해도 멈추지 않았다. 정상급 악단들의 이례적 내한 러시는 한국 클래식 시장의 빛과 그늘을 동시에 보여줬다. 뮤지컬 시장은 팬데믹 후유증을 털어냈지만, 대학로 소극장들은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진-찬 투톱’ 쌍끌이 세계 공략
조성진(29)-임윤찬(19)은 아이돌 스타 뺨치는 인기를 이어갔다. 두 연주자 덕분에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됐다는 팬들도 많다. 강력한 흡인력을 지닌 ‘진-찬 투톱’이 국내 클래식 시장에 새로운 청중을 끌어들이며 활기를 불어넣은 부분은 평가할 만하다.
세계 무대에서도 두 연주자의 ‘쌍끌이 활약’이 눈부셨다. 조성진은 세계 최정상 악단인 베를린 필하모니의 내년(2024~2025년 시즌) 상주 음악가(artist in residence)로 지명됐다. 아시아 연주자로는 일본계 피아니스트 우치다 미츠코(75)에 이어 두 번째다. 조성진이 2월에 낸 음반 ‘헨델 프로젝트’는 미국 빌보드 클래식 주간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저력을 드러냈다.
임윤찬은 클래식 명문 레이블 데카(Decca)와 전속 계약을 맺었다. 데카는 “시대에 한 번 나올 재능”이라고 극찬했다. 뉴욕타임스는 임윤찬의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실황 앨범을 ‘올해의 클래식 음반 25’에 선정했다.
다만, 두 연주자에게 관심이 집중되면서 뛰어난 역량을 지닌 다른 연주자들이 가려지고, 무대에 오를 기회도 줄어들었다. 조성진, 임윤찬이 반짝스타가 아니라 긴 생명력을 지닌 거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산업적, 정책적 차원에서 국내 클래식 시장의 저변 확대를 진지하게 고심해야 할 시기임이 분명해진 한 해였다.
멈추지 않는 국제 콩쿠르 우승 행렬
성악 부문으로 진행된 지난 6월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바리톤 김태한(23)이 우승했다. 아시아권 남성 성악가 가운데 최초 우승이다. 첼리스트 최하영(25)의 지난 대회 우승에 이어 국내 연주자들이 2년 연속 이 대회를 석권했다. 같은 달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도 김계희(바이올린)·이영은(첼로)·손지훈(성악)이 3개 부문을 휩쓸었다. 이 콩쿠르 기악 부문에서 한국인 연주자 우승은 처음이다. 8월엔 윤한결(29)이 젊은 지휘자들의 등용문으로 평가받는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9월엔 비올리스트 이해수(24)가 독일 뮌헨에서 열린 아에르데(ARD)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청중상 등 2개 부문 특별상과 함께였다.
중견 여성 음악가들의 활약도 눈길을 끌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오페라(SFO) 음악감독인 지휘자 김은선(43)이 내년 4월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 무대를 예약했다. 그에겐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한 최초의 동양 여성’이란 타이틀이 붙게 됐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현대음악 작곡가 진은숙(62)의 작품을 녹음한 에디션 앨범을 따로 발매했다.
정상급 오케스트라 내한 러시
10~11월엔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 등 세계 최정상급 악단이 줄줄이 내한 공연을 펼쳤다. 코로나19로 취소되거나 연기됐던 일정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나타난 전례 없는 내한 러시였다. 유럽 명문 악단들이 한국 클래식 시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다만, 만만치 않은 티켓값 때문인지 조성진-임윤찬이 협연자로 나서지 않은 공연에선 빈자리가 제법 눈에 띄었다.
세계 무대에서 활약 중인 ‘월클(월드 클래스)’ 성악가들도 국내 오페라 무대를 찾았다. 최정상급 테너 이용훈(50)이 마침내 ‘투란도트’로 국내 오페라 무대에 뒤늦게 데뷔했다. 세계 굴지의 오페라 극장들이 2~3년 전에 미리 이용훈을 캐스팅하는 바람에 그동안 국내 무대에선 데뷔 기회를 찾지 못했다. 쉴새 없이 유럽 무대를 누비는 소프라노 여지원(43)도 ‘노르마’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주역으로 나섰다. 개관 20돌을 맞은 대구 오페라하우스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엘렉트라’를 초연하는 등 지난해 ‘링사이클 4부작’에 이어 눈에 띄는 기획을 이어갔다.
활기 되찾은 뮤지컬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면서 뮤지컬 시장은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대형 뮤지컬 작품들이 높은 객석 점유율을 과시하며 잇따라 관객들을 만났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올해 100만 관객을 돌파한 ‘레베카’다. 국내 공연 뮤지컬 중에선 12번째, 대극장 뮤지컬로는 10번째다. ‘영웅’ ‘맘마미아!’ ‘시카고’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등 스테디셀러 작품도 어김없이 사랑을 받았다. 창극도 꾸준한 인기를 끌었다. 웹툰 원작인 ‘정년이’, 셰익스피어 비극을 재해석한 ‘베니스의 상인들’이 새로 선보였다. 그리스 비극 ‘트로이의 여인들’은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초청돼 호평받았다.
침체 벗지 못한 소극장
소극장들은 코로나 종식 이후에도 어려움을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 소극장 문화를 상징해온 서울 대학로 ‘학전’이 만성 적자에 시달리다 33년 역사를 뒤로한 채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게 대표적이다. 정부와 서울시가 대책 마련에 나섰고, 연극계와 가요계, 일반 시민들도 마음을 모으고 있지만 창립 33주년인 내년 3월15일까지만 운영하고 문을 닫는 일정엔 변화가 없다. 2002년 문을 연 대학로 한얼 소극장도 11월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앞서, 코로나가 덮치면서 ‘나무와 물’, ‘정미소’, ‘종로예술극장’ 등이 차례로 문을 닫았다.
물량을 투여한 대작이나 스타 배우들이 출연한 작품들은 꾸준한 인기를 끌었다. 박해수(43)의 ‘파우스트’, 손석구(40)의 ‘나무위의 군대’가 대표적이다. 신구(87), 박근형(83), 박정자(81) 등 원로 배우들도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란히 출연하며 식지 않는 열정을 뿜어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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