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차별’ 없이 지정한다지만…‘외국인’ 쿠팡 김범석, 총수 지정 피할 듯
앞으로 외국인도 재벌 총수로 지정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감시를 받는다. 다만 총수가 실질적으로 기업집단을 지배하고 있더라도 친족과 계열사 간 출자·경영·자금거래 관계가 단절된 경우에는 동일인(총수) 지정에서 제외된다. 총수 지정에 대한 예외규정이 생기면서 외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총수 지정을 피했던 김범석 쿠팡 의장의 총수 지정은 이번에도 불투명해졌다.
27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동일인(총수)은 대기업집단 제도가 도입된 1986년부터 사용된 용어로 대기업집단의 규제 대상과 범위를 정하는 기준이 된다. 공정위는 매년 5월1일 자산총액 5조원 이상 그룹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하고, 해당 집단의 실질적인 지배자를 총수로 지정해 관리·감시해왔다. 총수일가를 공시대상으로 묶어 사익편취 행위를 막는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2·3세로의 경영권 승계, 외국인 총수 등장 등 기업 환경이 달라지면서 동일인 지정에 대한 명확한 기준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특히 외국인 총수 지정 여부를 두고는 해마다 논란이 반복돼왔다. 공정위는 통상 마찰을 이유로 외국인 총수 지정을 피해왔는데, 사실상 기업 집단을 지배하면서도 외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대기업 총수 의무를 지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정위는 이번 시행령 개정을 통해 국적 차별 없이 적용되는 동일인 판단 기준을 마련했다.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을 기업집단의 총수로 보는 일반 원칙은 그대로 둔다. 기업집단의 총수 판단 기준 5가지는 △기업집단 최상단회사의 최다출자자 △기업집단의 최고직위자 △기업집단의 경영에 대해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자 △기업집단 내·외부적으로 대표자로 인식되는 자 △동일인 승계 방침에 따라 기업집단의 동일인으로 결정된 자 등이다.
아울러 총수 지정을 피할 수 있는 예외 규정도 마련했다.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이 최상단 회사를 제외한 국내 계열회사에 출자하지 않고 △해당 자연인의 친족이 국내 계열회사에 출자하거나 임원으로 재직하는 등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자연인 및 친족과 국내 계열사 간 채무 보증이나 자금 대차가 없어야 한다. 해당 요건을 모두 충족할 경우에는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개인)이 있더라도 법인을 총수로 지정할 수 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예외요건 미충족 시에는 설령 외국인이더라도 자연인을 동일인으로 판단할 수 있음을 명확히 해 동일인 제도의 합리성과 예측 가능성을 제고했다”며 “예외요건에 해당하는 기업집단 수를 명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올해 기업집단 지정 당시 현황에 비춰볼 때 그 숫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총수 지정 여부를 놓고 관심을 모았던 기업은 쿠팡이다. 쿠팡은 동일인(총수)으로 법인인 쿠팡이 지정돼 있다. 김범석 쿠팡 의장은 기업집단 쿠팡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지만 외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총수 지정을 피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김 의장은 총수 지정을 피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김 의장은 최상단 회사인 쿠팡Inc를 제외한 국내 계열사에 지분을 가지고 있지 않고 있다. 김 의장 동생 부부가 쿠팡 계열사에 재직하고 있지만 임원 직급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위원장은 “쿠팡 관련해서는 새로 확인해야 될 사실관계가 여러 개가 있다”며 “현재로서는 쿠팡의 동일인이 누구로 지정될지에 대해서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총수 지정의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간 공정위가 내부적으로 적용해온 총수 지정 판단 기준을 명문화한 수준에 불과해 내년 총수 지정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전망이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쿠팡 건처럼 그간 논란이 있었던 외국인 총수 지정 문제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라며 “내부 방침을 문서화한 수준이기 때문에 이번 개정으로 큰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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