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의 빈슨메시프 등정, 우리의 출발!
정말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12월 2일 출국한 남극 빈슨매시프 원정대가 12월 14일인 오늘 남극 빈슨 정상에 등정해 동아대산악회 7대륙 최고봉 피날레를 성공했다는 소식이다.
"염려하고 응원해주신 덕분에 무사히 다우악기를 정상에 올렸습니다."
남극에 도착한 후 한동안 연락이 되지 않던 조벽래 선배는 동아대산악회 밴드에 동아대산악회기인 다우악기를 들고 정상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소식을 올려주셨다. 하얀 설산 위에 산악회 회기를 들고 포즈를 취한 선배님을 보니, 전에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상에서 회기를 들고 있을 때 사진이 잘 나오는 포즈가 있다며 꿀팁을 주었다. 나도 꼭 아콩카과에서 선배님과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12월 15일 금요일, 오늘은 모두가 모여서 다시 회의를 했다. 각자 다른 지역에 살다 보니 주말에만 한자리에 모여 회의를 했다.
"가기 전에 많이 먹고 컨디션 조절 잘해야 한다."
선배들은 약속이나한듯 가기 전에 잘 먹어야 한다며 신신당부했다. 배에 살을 찌워 가면 나중에 쓸 수 있는 칼로리 주머니가 된다고 했다. 우리는 그것을 핑계로 이것저것 배부르게 먹고 다녔다. 오늘도 회의 전에 만나 고기를 구워 먹었다.
학교로 올라와 짐 싸기를 반복했다. 다음 주에 출발해야 하기에 오늘 짐을 싸고 더 이상 건드리지 않고 마감하기로 했다. 카고백에 짐을 테트리스하듯 욱여넣었다. 선배들을 볼 때면 제일 신기한 게 짐 싸는 실력이다. 나는 아무리 넣어도 못 넣던 걸 순식간에 가방 빈 공간을 찾아 넣어버렸다. 나도 빰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짐을 여기저기 테트리스처럼 쌓아 넣고 카고백의 지퍼를 닫았다. 누군가 원정을 준비하면서 힘든 게 뭐였냐고 물어본다면 훈련 다음으로 카고백에 짐 넣기라고 할 거다.
해발 3,000m 이상의 고산을 가게 되면, 고도를 높일수록 공기 중 산소농도가 낮아져 호흡곤란, 두통, 현기증, 식욕부진 등의 고산 증세에 시달리게 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차근차근 고도를 높여가며 적응하는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8,000m에서는 산소량이 평지의 3분의 1 정도로 줄어든다.
한국에서는 3,000m 이상의 고산이 없어 적응훈련을 할 수 없어 기계를 통한 저산소 농도 체험인 하이폭시Hypoxic 훈련을 했다. 고산과 같은 산소 농도를 체험해 원정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해준다. 나는 아직 고산 증세를 제대로 겪어보지 않은 탓에 원정보고서와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 공감할 수 없었다. '잠이 온다.', '숨이 찬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같은 다양한 고산증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저산소 훈련을 시작하기 전부터 설렘과 긴장이 공존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시끄럽게 소리를 내는 기계 앞에 앉아 마스크를 꼈다. 5,000m급 산소농도는 어느 정도 버틸만 했다. 내가 잘 버티는 것 같으니 6,000m급 산소농도로 바꾸어 버티기 시작했다. 고도를 높이니 1분이 5분 같고, 10분이 30분 같이 느껴진다. 숨이 막힌다는 느낌보다 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을 뿐인데도 마스크에 영혼이 빨리는 기분이었다.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며 천천히 깊게 호흡하며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오직 내 호흡과 온몸에 집중했다. 마스크를 끼고 간단한 문서작업을 하려고 하니 간단한 계산조차 힘들다. 남미에 가져가려고 챙겼던 스페인어 회화책이 생각났다. 현지에서 할 것이 없으면 스페인어 공부를 하려고 챙겼는데 아마 이 상태라면 책 한번 안 펴볼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을 잔뜩 먹은 기분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마스크를 벗으니 새삼 공기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어지럽고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마스크를 벗고 몇 분 있다 보니 금방 괜찮아졌다. 조벽래 선배는 이 마스크를 끼고 잠도 잔다고 들었는데 대단하다. 여기서는 마스크만 벗으면 그만이지만 그런 환경에서 잠도 자고 산행도 해야 한다는 게 사실 조금 두렵다.
동아대산악회는 세 팀으로 나누어 진행한다. 7대륙 최고봉 등정의 마침표인 남근 빈스매시프 원정대의 조벽래 선배, 두 번째 원정팀인 아콩카구아OB(졸업생) 원정대가 12월 16일인 오늘 새벽에 출발했다. 한국에는 재학생팀만 남겨졌다. 정말 코앞으로 왔다는 게 실감 났다.
OB원정대 대장인 92학번 황태웅 선배가 밴드에 이런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데날리 원정 때 기억입니다. 겨우 끌어 마시는 호흡과 내리누르는 하중감에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정상을 향할 수 있었던 건 타고난 체력이나 사랑하는 와이프의 응원 때문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그동안 했던 훈련의 기억 덕분이었습니다.'
나도 돌이켜보면 지난 일본 북알프스 원정에서, 지리산 천왕봉을 다녀왔던 기억과 OB선배들과 백양산에서 야간 훈련했던 기억이 가장 큰 힘이 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던 길을 계속 걸으면서 힘들었지만 극복했던 나를 기억하며 묵묵히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북알프스 기간 중 뒤처지는 대원명과 후발대로 쳐졌을 때도 속도가 느린 탓에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해가 져버려 무서웠지만 국내에서 했던 야간훈련 기억을 떠올리며 묵묵히 걸었다. 이번 원정에서는 어떤 기억들로 한발 한발 내디딜지 궁금하다.
출발이다. 12월 21일, 아침부터 일찍 눈이 떠졌다. 빠뜨린 건 없는지 두 번 세 번 확인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말도 안 되게 추운 날씨였다. 덜덜 떨면서 부산에서 같이 출발하기로 한 호선이 형을 만났다.
원정 떠나는 이 날만을 기다렸는데 딱히 특별한 아침은 아니었다. 첫 느낌은 그냥 아침 일찍 산행 갈 때의 딱 그런 기분이었다. 하나 특별했던 건 아침을 잘 챙겨 먹지 않던 내가 엄마가 해 준 아침밥이 먹고 싶어서 침대의 유혹을 뿌리치고 식탁에 앉았다는 것이었다.
감사하게도 동아대학교 산악회 91학번 이재규 선배께서 인천국제공항까지 차량으로 태워주신 덕분에 23kg이나 하는 무거운 카고백을 들고 다녀야 하는 수고를 덜었다. 차창 밖에 스쳐가는 산들을 보면서 아콩카과 정상은 여기보다 몇 배나 높을까라고 생각했다. 원정에 대한 걱정과 설렘이 항상 마음속에 있다.
산악회 82학번 최태동 선배께서 인천공항까지 배웅을 나왔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선배님께서 사주신다고 해서, 먹고 싶은 걸 맘껏 먹었다. 선배는 연신 "가면 생각나니까 지금 실컷 먹어"라고 권했다. 선배님들 덕분에 우리끼리 외롭지 않게 출발할 수 있었다. 아직 크게 실감 나지 않았지만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등정 결과를 만들기 위한 과정은 인내의 연속이다. 출발하면 원정의 반은 성공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부산에서 인천으로 가는 시간도 6시간이 넘고, 비행기삯을 줄이기 위해 경유 노선을 택한 탓에 각각 13시간이 넘는 두 번의 비행을 해야 했다. 비행기 안에서부터 답답함에 미칠 지경이었다. 빨리 가서 현지에 먼저 가 있는 조현세 대장을 만나고 싶었다. 비행기를 갈아타느라 이틀을 공항에 갇혀있었다.
기빈이형이 수지에게 이런 질문를 했다. "밥도 다 주는 닭장 속에 닭이 될래? 고된 자유를 얻을래?"라고 물었다. 기나긴 비행기 여정을 닭장이라 표현하고, 고된 자유를 고산에서의 여정이라 표현했다. 물론 지금 이 고통보다 고된 자유를 택했다. 아직 겪어보지 못한 고통이라 그런지 몰라도 자연에서 즐길 수 있는 자유가 가장 큰 이유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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