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법인총수' 가능해졌다…총수 사익편취 '허점' 우려

민경락 2023. 12. 27. 12: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986년 도입 이후 동일인 기준 첫 구체화…"예측 가능성 높아져"
재벌 총수일가 지주회사 전환 이용 지배력 강화(CG) [연합뉴스TV 제공]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박재현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가 1986년 대기업집단 제도 도입 이래 처음으로 사실상 기업을 지배하는 총수를 뜻하는 '동일인'의 기준을 구체화했다.

그간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포괄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동일인 기준을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사전 규제를 받는 대기업 집단의 예측 가능성을 높였다는 평가다.

다만 '자연인' 총수가 있어도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는 길을 터줘 실질적인 총수의 사익편취 등 불공정 행위 감시에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기업 오너 일가의 계열사 등기이사 겸직 (PG) [제작 정연주] 일러스트

내·외국인 불문한 동일인 판단 기준 구체화

공정위가 27일 발표한 동일인 판단 기준에는 포괄적이고 추상적이었던 동일인의 판단 기준을 구체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동일인은 집단 현황 자료 제출 등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서 부여된 의무 사항을 이행하는 최종 책임자로 일반적으로 기업집단의 총수가 되는 경우가 많다.

동일인이 누구냐에 따라 기업집단 범위가 달라질 수 있고 의무적으로 공정위에 제출해야 하는 자료 범위도 달라진다. 대기업들이 매년 공정위의 동일인 지정 절차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하지만 학계 등을 중심으로 '사실상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자연인'을 동일인으로 본다는 지정 기준 자체가 모호하고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대기업ㆍ사외이사ㆍ회사원(PG) [제작 이태호] 사진합성, 일러스트

특히 쿠팡 사례처럼 외국인 국적의 총수나 친족이 있을 경우 명확한 기준이 없어 법적 예측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의견도 제기돼왔다.

이번 공정위 지침에는 '사실상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자연인'을 동일인으로 하는 원칙은 그대로 두되 자연인 특정이 어려울 때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추가로 명시하는 내용이 담겼다.

기업집단 최상단회사의 최다출자자, 최고 직위자, 기업집단을 대표해 활동하는 자 등 5가지 구체적인 동일인 유형도 제시해 동일인 선정 근거도 명확히 했다.

이 기준은 동일인의 국적과 무관하게 적용하도록 함으로써 외국인 총수 논란도 피했다.

공정위가 동일인을 선정한 뒤 이를 기업집단에 통지해 확인하도록 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도 마련해 기업집단의 절차적 권리도 보장했다는 평가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동일인 판단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고 수범자들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지침 제정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쿠팡 몸값 100조 껑충…삼성 이어 시가총액 2위권 (CG) [연합뉴스TV 제공]

자연인 '총수' 지정 피할 수 있는 예외 조건 마련

공정위는 동일인의 판단 기준을 구체화하면서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자연인 총수가 있더라도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는 '예외 조건'도 마련했다.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해도 기업집단 범위에서 자연인이 지배하는 국내 법인이 빠지지 않고 친족 등 특수관계인의 경영 참여·출자 등도 단절돼있는 경우 법인 동일인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동일인이 법인인 기업집단은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집단의 사익편취 규제를 받지 않게 된다. 사익편취는 동일인이 자연인인 경우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자연인 총수가 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한다고 해도 총수 본인이나 친족 관련된 출자·자금거래 등 지정자료 제출 의무도 없다.

자칫 이번 공정위의 기준 변경으로 대기업집단의 사익편취 규제에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과거 네이버 사례처럼 이번 공정위의 지침으로 자연인에서 법인으로 동일인을 변경해줄 것을 신청하거나 중장기적으로 지배구조 등을 바꿔 동일인 변경을 시도하는 대기업들이 다수 나올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책임 없이 권한•돈만 쥔 재벌…"견제•감시 강화해야" (CG) [연합뉴스TV 제공]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2017년 직접 공정위를 방문해 네이버를 '총수 없는 기업집단'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 창업자의 총수 지정을 피하지 못했다.

같은 해 이 창업자가 네이버 총수로 지정되면서 그의 친족 기업 2개 사는 네이버 계열사로서 공시 의무를 지게 됐다.

다만 현재 상황에서 법인 동일인 변경 요건을 충족하는 대기업 집단은 많지 않다는 것이 공정위의 판단이다. 지난해 5월 기준 82개 대기업집단의 동일인 중 자연인은 72명, 법인 10개다

한 위원장은 "2023년 현황에 맞춰 예외 요건에 해당하는 대기업 수를 명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숫자가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rock@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