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에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철호의 시론]
보수 앞섰던 기울어진 운동장
2016년 총선 이후 진보 우위로
與 외부 수혈과 단일화로 신승
기초체력 약한 소수파로 전락
김건희 특검법부터 가시밭길
법치와 자유 칼같이 지켜내야
‘기울어진 운동장’은 스페인 축구에서 유래됐다. 프리메라리가 강자인 바르셀로나FC는 2006년 16연승, 2011년엔 리그 16연승의 대기록을 세웠다. 주눅이 든 상대 팀은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다”고 푸념했다. 이 용어를 잽싸게 수입한 게 열린우리당이다. “보수는 위쪽에, 진보는 아래쪽에서 뛰는 축구다. 진보는 죽을 힘을 다해도 골을 넣기 힘든데, 보수는 뻥 축구를 해도 쉽게 이긴다.” 노무현 정부 지지율이 곤두박질하자 무섭게 확산된 논리다.
현행 선거법으로 총선의 영남 의석은 65석, 호남은 28석이다. 기본적으로 보수 쪽이 37석 먹고 들어간다. 김대중 대통령은 외환위기에도 이인제의 독자 출마에다 김종필과 DJP연합까지 보태 겨우 이겼다. 노무현 대통령도 정몽준과 후보 단일화 파동을 디딤돌 삼아 간신히 승리했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 이런 공식이 무너졌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과 탄핵 사태로 보수 정치권이 쑥대밭이 됐다. 반면, 노무현의 비극적 선택 이후 당시 2030(현재 35∼55세)은 민주당의 견고한 아성이 됐다.
변곡점은 2016년과 2020년 총선이었다. 2016년엔 국민의당에 호남을 뺏겼지만, 민주당은 수도권 압승으로 1당이 됐다. 2020년엔 서울에서 53% 득표하고 의석 81%를 휩쓸었다. 무능한 보수가 인물과 이슈에서 밀린 게 사실이다. 더 중요한 건 진보가 수도권 박빙 지역에서 3∼5%만 이기면 언제든 압도적 승리가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보수 과점 구도가 변했다. 이제 진보가 위쪽, 보수가 아래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다. 결국, 지난 대선 때 국민의힘은 자체 후보를 내지 못하고 외부에서 윤석열 후보를 긴급 수혈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대실패에도 안철수와 후보 단일화 끝에 0.73%포인트 차로 간신히 이겼다. 역사적으로 후보 단일화는 약자의 전술이었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렇게 불리한 위치에서 출발한다. 윤 대통령 국정지지율이 30%대 중반에서 맴도는 게 이상 현상이 아니다. 2016년 총선의 새누리당 비례대표 득표율은 33.5%, 2017년 대선 득표율 30.8%, 2018년 지방선거 광역의원 비례대표 득표율 34.8%, 2020년 총선 득표율이 33.8%였다. 이게 뉴노멀이 됐다. 후보 단일화·합당 등 온갖 신공을 펼쳐야만 대등한 경기를 기대할 수 있다. 지난해 대선 승리와 지방선거 압승이 오히려 기적이다.
한 비대위원장을 향해 윤 대통령에게 할 말을 하고, 이준석 전 대표를 품으라는 주문이 쏟아진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해법이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부터 걸림돌이다. 최근 대통령실은 김 여사 관련 언론 보도 동향을 종합 보고했는데, 윤 대통령은 한참 말이 없었다고 한다. 평소 발언이 많다는 시중의 소문과 달랐다. 김 여사도 심각성을 전달받은 뒤 “당분간 노출을 삼가시라”는 대통령실 건의에 따르기로 한 모양이다. 크리스마스 때 윤 대통령은 혼자 성당을 찾았다.
돌아보면 선출되지 않은 권력 2인자에 대한 심판은 무서웠다. 지나칠 만큼 민심은 가혹하고 잔인했다. 재임 시절 혈육을 쳐내는 것은 아들 김현철을 사법 처리한 김영삼 대통령이나, 아들 3형제를 감옥에 보낸 김대중 대통령 정도의 경지에 올라야 가능한 선택이다. 한 위원장은 “당과 충분히 논의해 대응하겠다”고 했지만, 거친 민심을 어떻게 잠재울지 지켜볼 일이다. 여당은 거명조차 꺼려 ‘도이치모터스 특검’이라 부른다.
역대 비대위 중 성공한 사례로는 2011년 박근혜 비대위, 2016년 김종인 비대위가 꼽힌다. 좁은 강성 지지층을 벗어나 과감하게 중도로 나갔던 게 공통분모다. 한 비대위도 태극기 부대와 아스팔트 개신교, 극우 유튜버들과 절연할 필요가 있다. 냉전 반공주의나 산업화 신화가 중도·청년층에 먹혀들 시기는 지났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표의 숱한 사법 리스크, 송영길 전 대표의 돈봉투 사태 등에도 지지율이 밀릴 만큼 기초체력부터 허약하다. 한 위원장이 취임사에서 “지역구나 비례대표로 출마하지 않고 승리를 위해 용기 있게 헌신하겠다”고 한 것은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운 느낌이다. 칼같이 법치주의와 자유 경제를 수호하는 새 모습을 보여야 한다. 헌 보수가 죽어야 새 보수가 산다. 국민의힘 마지막 승부수라는 한동훈 앞에 이런 힘든 가시밭길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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