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는 X세대, 野는 한총련… ‘엇갈린’ 물갈이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회가’ 오는 29일 공식 출범한다. 당 전국위원회가 한동훈 비대위원장 임명안을 가결한 지 사흘 만이다. 총선을 100여일 앞두고 1973년생 ‘X세대 한동훈’을 전진배치해 당 체제를 쇄신하려는 시도다. 비대위 구성도 이런 방향에 맞춰 세대교체를 단행할 거란 관측이 나온다. 같은 시기 민주당에선 주류 86세대(80년대학번·60년대생) 퇴출을 요구하는 70년대생 한총련(한국대학생총연합회) 운동권이 물갈이를 시도하고 있다.
민주당 혁신계 비주류 모임인 ‘원칙과상식’ 소속 이원욱 의원은 27일 한 비대위원장의 수락연설에 대해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만이 아니고 민주당 전체가 갖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잘 지적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 의원은 이날 SBS 라디오에서 “그동안 운동권이 사용해오던 단어, 정치권에 팽배한 구시대적 발언을 뛰어넘어 새로운 용어를 사용한 것을 보면 매우 영리해 보인다”며 이렇게 말했다.
특히 한 비대위원장의 불출마 선언에 대해 “굉장히 환영한다”며 “이재명 대표가 이 부분을 듣고 어떤 것을 느낄 것인지 궁금하다. 이 대표에게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이 대표가 오로지 자신의 출마를 위해, 비례대표로 도망갈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연동형 비례제 약속 파기 등) 꼼수를 편다면 국민으로부터 심판 받을 것”이라며 “그런 문제를 한 비대위원장이 잘 짚어낸 것 같다”고 했다.
◇불출마 던진 X세대 vs 출마戰 벌이는 86세대·한총련
전날 한 위원장의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문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랫말을 인용한 문구가 담겼다. 92년도에 데뷔한 X세대 상징의 ‘환상속의 그대’로 정치에 대한 생각을 표현했다. 그는 “동료 시민과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빛나는 승리를 가져다줄 사람과 때를 기다리고 계십니까? 우리 모두가 바로 그 사람들이고,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라고 했다. “바로 지금이 그대에게 유일한 순간이며 바로 여기가 단지 그대에게 유일한 장소”라는 가사를 참고했다고 한다.
한 위원장은 ‘운동권 특권정치 청산’과 ‘총선 불출마’로 승부수를 던졌다. 국민의힘 총선 사령탑으로 지역구·비례 모두 불출마를 선언, 여당 주류 및 중진의 용퇴를 요구할 명분을 얻은 셈이다. 최우선 목표로는 ‘86 운동권 청산’을 제시했다. 386(30대·80년대학번·60년대생)으로 국회에 무혈입성한 이들이 60대가 되도록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86 그룹 중 자진해서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는 전대협 1기 부의장 출신인 우상호 의원뿐이다.
이날 한 비대위원장이 겨냥한 86세대는 정치권의 최대 세력이다. 2020년 치러진 제21대 총선 기준, 국회의원 당선자 300명 중 174명이 60년대생이다. 입법기관의 58%를 특정 세대가 차지했다. 민주당에선 뇌물 혐의로 탈당한 송영길 전 대표(5선)를 비롯해 중진급 ‘간판 정치인’ 다수가 전대협(전국대학생연합회) 운동권 출신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직후 실시된 2004년 17대 총선을 계기로 국회에 진출, 문재인 정부 내각 요직에 들어가 기득권으로 자리를 굳혔다.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으로 이들에 대한 용퇴 요구도 더 커졌다. 86 운동권 정치인 대표주자인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구속됐지만, 민주당은 ‘검찰의 야당 탄압’이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는 최근에도 “송 전 대표에 대한 영장 청구는 검찰독재정권이 ‘야당 탄압’을 앞세워 총선을 치르려는 것”이라는 입장문을 냈다.
여기에 반기를 든 조직이 한총련이다. 두 집단 모두 이념 지향성이 강하지만, 한총련은 정치 무대에서 상대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진 못했다. 그랬던 이들이 이재명 체제에서 치르는 총선을 계기로 ‘86 청산론’에 가세해 원내 입성을 꾀하고 있다. ‘이재명대표 특별보좌관’ 경력을 앞세운 강위원·정의찬 특보 등이 대표적이다. 두 사람 다 73년생으로 한 비대위원장과 동갑이다. 각각 한총련과 남총련(한총련 산하 광주전남총학생연합) 의장을 지냈다. 1990년대 학생운동을 이끈 한총련 핵심 간부 출신이다.
한 비대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 최측근, 강 특보는 이 대표 최측근으로 당 밖에서 핵심 지지 그룹을 대표한다는 점도 공통분모다. 이들 중 정 특보는 1997년 민간인 고문치사 사건 관련 전과가 있는데도 당 공직선거후보자검증위원회에서 ‘적격’ 판정을 받았었다. 논란이 되자 심사위가 ‘부적격’으로 심사 결과를 번복했다. 정 특보가 이의 신청을 제기했다가 철회했지만, 이를 계기로 한총련 그룹의 반발도 커졌다.
강 특보가 공동대표를 맡은 더민주전국혁신회의는 “현역 의원은 프리패스, 정치 신인에겐 이중 잣대”라며 운동권 선배인 이광재(뇌물죄) 국회사무총장과 기동민(고가 양복 및 금품 수수)·송갑석(지방의원 공천장사 의혹) 의원 등의 실명과 혐의를 직접 거론했다. 이런 86 그룹이 의원직을 유지하기 위해 후배 세대를 배제한다는 주장이다. 당 관계자는 “한총련이 86에 ‘이제 그만좀 해먹어라’고 들고 일어난 게 ‘정의찬 사태’”라고 했다.
◇“소구력 없는 세대교체, 野 인물 경쟁력 떨어져”
그러나 이념 지향적인 두 집단 모두 중도층에는 소구력이 없다. 민주당 내 세대교체 요구가 강해지더라도, 진보 진영의 인물 경쟁력은 더 뒤쳐질 거란 게 중론이다.
이종근 시사평론가는 “한 비대위원장이 ‘운동권 청산’과 ‘불출마’라는 두 개의 전선으로 프레임을 전환했다”고 말했다. 이 평론가는 “야당의 기존 정권심판론에서 ‘주류 운동권 심판론’으로 구도를 장악했다”며 “본인이 불출마를 선언해 ‘686이 되도록 기득권을 안 내려놓는’ 86운동권과도 차별화를 꾀했다. 민주당은 거센 인적 쇄신 압박에 직면하겠지만, 그 주체와 대상 모두 인물 경쟁력이 없다”고 했다.
한편 정치권의 시선은 국민의힘 비대위원 인선을 향해있다. 최대 15명 중 위원장인 한 전 장관과 당연직인 윤재옥 원내대표·유의동 정책위의장을 제외하고 12명까지 임명할 수 있다. 첫 인선으로 75년생 초선 김형동 의원을 비서실장직에 앉혔다. 당 안팎에선 70~90년대생을 중심으로 한 파격 인사가 단행될 것으로 본다. 국민의힘이 취약한 수도권 및 중도층 표심을 겨냥하자는 주문도 나왔다.
그 외 현역 중 거론되는 건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 정도가 전부다. 한 전 장관이 최근 전화를 걸어 지원을 요청했다는 4선 권영세 의원과 당 원내수석부대표인 이양수 의원도 여권에선 합리적인 인물로 꼽힌다. 그만큼 기존 진영의 문법을 깬 인사를 단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한 전 장관이 우리 정치에서 수십 년 군림한 86 운동권을 물리치고 탈진영 정치 시대를 열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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