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에 찾아온 봄은 왜 '가로수길' 외면했나 [視리즈]
視리즈 가로수길의 눈물➋
공실률 치솟은 가로수길
깔세 찾는 광고까지 붙어
외국인 관광객 돌아오며
활기 다시 감도는 명동
두 거리 무엇이 달랐나
유행을 주도하는 패션 브랜드와 플래그십 스토어가 줄지어 있는 가로수길(서울 신사동)과 명동. 한국을 대표하는 두 상권은 외국인 관광객의 방문 효과를 톡톡히 누리면서 성장했지만, 그 때문에 팬데믹 국면에선 어려움을 겪었다. 바이러스의 공포가 사라진 지금, 두 상권의 모습은 극과 극이다. 명동은 활기를 되찾고 있는 반면, 가로수길은 그렇지 못하다. 왜일까.
서울 상권을 140개로 나눠보자. 이중 가장 매출이 잘 나오는 상권은 어딜까. 많은 이들이 명동을 꼽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땅인 화장품 브랜드 네이처리퍼블릭의 명동월드점 부지가 명동에 있으니 매출도 많을 것이란 관념에서다.
하지만 국내 최대 매출 상권은 명동이 아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이다. 서울시가 진행한 2022년도 상가임대차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로수길 상가의 매출(이하 1㎡당)은 61만6000원으로 가장 많았다. 서울 상권 평균 매출이 37만2000원이라는 걸 고려하면 가로수길 상권의 파워를 체감할 수 있다.
문제는 가로수길의 높은 매출의 원동력이 한곳에 쏠려있다는 점이다. 업계에선 가로수길 상권 매출이 '평균의 함정'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2021년 여의도에 애플스토어 2호점이 생기기 전까지 가로수길 애플스토어가 아이폰 오프라인 매출을 독점해왔기 때문에 가로수길 평균 매출도 크게 집계됐을 것"이라면서 "실제론 이 상권에서 돈을 많이 버는 업체는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가로수길은 면적당 매출이 가장 많은 동시에 공실률도 최고치를 기록했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업체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의 자료를 보면, 2023년 서울 가두상권(명동ㆍ강남ㆍ홍대ㆍ가로수길ㆍ한남/이태원ㆍ청담) 중 공실률이 가장 높은 곳은 가로수길(36.5%)이었다. 1년 전인 28.7%와 비교하면 7.8%포인트 상승했다.
나머지 상권의 공실률은 대부분 10%대였고 가장 낮은 한남·이태원의 공실률은 10.0%에 불과했다. 이 기간 한국 사회가 팬데믹을 극복하고 엔데믹으로 전환하면서 오프라인 상권이 활기를 되찾았다는 걸 고려하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실제로 가로수길을 걸으면 빈 건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660m 가로수길에 둥지를 튼 건물들은 한동 걸러 한동씩 1층에 공실이 있었다. 어떤 건물에는 '깔세' 세입자를 구한다는 광고도 붙어 있었다.
깔세란 월세를 선납하고 들어오는 방식의 임대 조건을 말한다. 그만큼 임대인의 상황이 궁하다는 방증이었다. 깔세만이 아니었다. 5층 규모의 건물 자체가 통으로 빈 경우도 여럿 눈에 띄었다.
어느 건물엔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빠져나갔음을 보여주는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알리페이'가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붙은 유리문 안쪽은 텅 비어 있었다. 이를 방증하듯, 2021~20 22년 가로수길의 매출은 0.48%(61만9000원→61만6000원ㆍ서울시) 감소했다.
가로수길의 '엔데믹 침체'는 명동 상권과 극명히 대조된다. 명동 역시 팬데믹을 지나던 2022년엔 52.5%에 달하는 공실률을 기록했다. 건물의 절반 이상이 비어 있었다는 건데, 1년 만인 2023년 이 비중이 14.3%까지 줄었다. 공실 대부분이 임차인이나 주인을 찾았다는 거다.
실제로 명동은 다시 외국인 관광객으로 활기를 되찾고 있다. 공실이었던 건물에 다시 화장품 로드숍이 들어왔고 한국어가 아닌 중국어ㆍ일본어 등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직원들도 흔히 볼 수 있다. 실제로 명동거리의 1㎡당 매출은 2021년 29만5000원에서 2022년 50만8000원으로 72.2% 늘었다.
두 대표 상권의 희비를 가른 건 임대료다. 명동 상권은 임대료 부담이 전보다 가벼워졌다. 이를 가늠할 수 있는 건 매출액 대비 통상임대료 비중이다.[※참고: 통상임대료는 월세, 보증금의 월세 전환금액, 공용관리비를 합산한 금액이다.] 이 비중이 작을수록 상권의 매출은 크고 임대료는 적다는 뜻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명동거리의 매출 대비 통상임대료 비중은 2021년 72.1%에서 2022년 40.5%로 줄었다. 상권의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크게 끌어올리지 않는 방식으로 공실을 줄여나간 게 상권 매출의 회복으로 이어진 셈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명동 상가의 1㎡당 임대료는 2021년 19만500원에서 2022년 17만4400원으로 8.45% 줄었다.
가로수길은 그렇지 않았다. 가로수길의 매출 대비 통상임대료 비중은 2021년 11.4%에서 2022년 14.1%로 2.7%포인트 커졌다. 앞서 언급했듯 가로수길 상가의 매출은 줄었지만 임대료는 상승한 탓이다. 상가 1㎡당 임대료는 10.8%(6만3900원→7만800원) 상승했다. 코로나19에도 꺾이지 않고 계속 오른 가로수길의 임대료는 결국 공실 증가란 부메랑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임대료가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도 있다. 서울시 상가임대차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임차인의 26.8%가 "점포 운영 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임대료 수준"이라고 답했다. 그다음으로 영향이 큰 것은 '경기 상황'이었다. 호황이냐 불황이냐가 점포 운영의 향방을 가른다는 거다.
정진우 쿠시먼앤웨이크필드 팀장은 "외국인 관광객이 돌아오며 공실률이 하락한 다른 상권과 달리 가로수길은 상권 관심도 자체가 떨어져 공실이 늘었다"며 "가로수길 주축이던 보세 의류점이 매출 감소와 높은 임대료란 난관을 견디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물가가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고 있고 불황의 그림자도 짙다. 임대료 변화 없이 가로수길에 활기를 찾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운 이유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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