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 펼쳐진 ‘라스트 콘서트’… 거장은 마지막까지 감동을 주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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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의 사내가 피아노를 치고 있다.
그의 어깨를 지나 피아노 치는 손에 집중한다.
그가 피아노인 듯, 피아노가 그인 듯하다.
오로지 피아노만 음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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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음악가 사카모토의 마지막 연주
혼신 다한 음악이 예술 의미 깨닫게 해
백발의 사내가 피아노를 치고 있다. 뒷모습만 보인다. 카메라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간다. 그의 어깨를 지나 피아노 치는 손에 집중한다. 건반과 손이 빚어내는 음이 청아하다. 사내의 얼굴이 화면에 들어온다. 혼신의 표정이다. 그가 피아노인 듯, 피아노가 그인 듯하다.
화면에는 피아노 음 가득
한 곡이 끝나면 또 다른 곡이 이어진다. 주변 사물은 작은 전등과 보면대, 마이크 정도다. 오로지 피아노만 음을 만들어낸다. 말은 거의 없다. 연주자는 “힘들어요… 지금 애쓰고 있거든요“, “다시 한번 할게요” 정도의 말만 한다. 피아노 음 이외 다른 소리는 마치 불순물인 듯. 그렇게 20곡이 스크린을 흐른다. 음악만이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의 상영시간 104분을 꽉 채운다. 음악과 화면에는 단단한, 어떤 결의가 스며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오를 무렵 연주자의 심정과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마음에 다가온다. 그에게는 피아노가 전부였고, 음악이 세계였다. 그는 자신의 삶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돌아본다.
연주자는 사카모토 류이치다. 지난 3월 28일 71세로 세상을 떠난 세계적 음악가다. 클래식과 팝, 오페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고, 영화음악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냈던 이다.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로 영화음악을 처음 선보인 이후 ‘마지막 황제’(1987)와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 ‘남한산성’(2017) 등의 음악을 만들었다. ‘마지막 황제‘로 미국 아카데미상 음악상을 아시아 최초로 수상하기도 했다. 상영 중인 일본 영화 ‘괴물’의 음악이 유작이다.
거장다운 이별 방식
사카모토는 오랫동안 암과 싸웠다. 그는 생의 끝을 예감한 듯 지난해 9월 자신만의 방식으로 ‘라스트 콘서트’를 열었다. ’일본에서 가장 좋은 소리를 내는 곳‘이라 평소 여겼던 도쿄 NHK 509 스튜디오에서였다. 그가 1978년부터 작곡한 곡 중 20곡을 선별해 연주했다. 촬영은 8일에 걸쳐 이뤄졌다. 하루 3곡씩을 화면에 담은 셈이다. 감독은 소라 네오다. 사카모토의 아들이다(성은 모계를 따랐다). 독립영화계 새 얼굴로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카메라는 아버지의 연주에 차분하게 조응한다.
사카모토는 연주와 연주 사이 숨을 몰아쉴 때가 있다. 고통을 참으려는 듯 얼굴을 찡그리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오르고 싶은 산 정상을 눈앞에 두고 무거운 발을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등산가 같다.
생성에는 소멸이 따르기 마련이다. 거장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마침표를 어떻게 찍어야 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사카모토의 마침표는 음악이다. 음악가다운 이별 방식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들려주는 음악들은 눈물을 불러낸다. 슬픔이 아니다. 감동이다. 사카모토는 스스로 ‘작품(Opus)’이 된다. 예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영화는 27일 개봉했다. 전체관람가.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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