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호의 Law&Life] 배려의 향기
[홍명호 법무법인 도원 대표변호사] 한국에서는 매일 1만3000여 건의 교통사고(보험사고 기준)가 발생하며, 1분마다 9건의 교통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이로 인해 교통사고로 인한 분쟁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 대부분 운전자가 사고 원인을 상대방에게 돌리고,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는 경우가 많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보면, 특히 유럽 국가는 교통사고 처리 방식에서 우리와 많은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는 사고가 발생하면 경찰을 호출하고, 사고 시간, 장소, 운전자 정보, 차량 번호, 핸드폰 번호, 보험사 정보 등을 작성한 사고카드를 작성하여 보험회사에 제출하면 보험회사 간에 협의를 통해 피해를 보상하는 방식으로 사고 처리가 마무리된다. 이렇게 하면 운전자들 간에 싸움이나 분쟁이 생길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교통사고 처리 방식에 특이한 점이 있다. 경찰청에는 교통사고 조사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여 다투는 민간심의위원회가 있고, 손해보험협회에는 교통사고 당사자 과실 분쟁에 대한 심사를 하는 자동차 사고 과실비율 분쟁 심의위원회가 운영되고 있다. 또한 전국 법원에서도 많은 과실 분쟁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교통사고 당사자는 거의 모두 상대방을 탓하며 ‘0:100’을 주장한다.
얼마 전에는 경찰청 민간심의위원회에서 진로 변경 차량과 후방에서 진행 중인 차량 사이 충돌 사고에 대한 분쟁이 있었다. 진로 변경 차량 운전자는 방향 지시등을 켰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양보하지 않아서 충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후방에서 충돌한 차량 운전자는 갑자기 진로 변경하다가 급정지한 상대 차량 운전자 과실을 주장하면서 격렬하게 다투었다. 손해보험협회 과실비율 분쟁 심의위원회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많이 발생한다.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민간이나 경찰 조사에 승복하지 못하면 결국 법원을 통한 소송이 진행되는데, 소액 분쟁임에도 불구하고 항소심까지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시간과 비용 손실은 물론이고 본인 감정까지 해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 주장만을 고집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 10. 28. 선고 항소심 판결을 보자. 원고는 직진하는 차량을 목격하고도 비보호 좌회전을 하다가 사고가 발생하였으므로 사고 원인은 피고 과실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피고는 자신 차량이 이미 교차로에 먼저 진입하여 비보호 좌회전하고 있었는데, 상대 차량이 전방주시 의무, 회피조치 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은 채 과속으로 진행해 사고가 발생하였으므로 원고 차량 과실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본 사건은 쌍방과실 사고이며, 원고와 피고의 과실 비율은 70:30 이다”라고 판결하였다. 법원은 피고 차량에 대하여는 “비보호 좌회전하면서 맞은편 도로에서 직진하는 원고 차량의 동태를 잘 살피지 않고 그대로 진행한 잘못이 있고, 원고 차량에 대하여는, 신호에 따라 직진하긴 하였으나 피고 차량이 맞은편 도로에서 이미 교차로에 진입하여 좌회전하고 있었는데도 전방주시 의무를 게을리하여 상대 차량의 우측 뒷부분을 충격하였다. 피고 차량으로서는 원고 차량을 피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그 이유를 설시했다.
이 사건에서는 원고와 피고가 상대방 일방과실을 주장하였지만, 법원은 쌍방과실로 판정하였으며, 사고 당시 제반 상황을 고려하여 과실 비율을 결정하였다.
오늘날 피해 정도가 크지 않은 수많은 교통사고 사건이 경찰의 조사, 보험사의 중재를 거치고도 해결되지 않은 채 법원을 통한 법적 분쟁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사건을 처리하면서 느끼는 점은 뒤에서 추돌한 일방과실을 제외하고는 어떤 형태로든 서로 과실이 조금이라도 경합 되는 데 이를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는, 다시 말해 운전자 배려심이 너무 부족하지 않나 하는 답답한 생각이다.
따지고 보면 자동차나 도로는 모두 우리 사회의 유용한 발명품이다. 이러한 멋진 발명품을 이용하는 우리 현대 사회인은 운전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운전을 하는 문화 측면에서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배려심을 기본으로 장착해야겠다. 법규는 우리가 지켜야 할 행동의 최대한이 아니다. 최소한이다.
‘나는 법규를 어긴 것이 없으니까 과실이 없고, 사고는 상대방의 일방과실이다’라는 생각은 지극히 이기적이고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편협한 주장일 뿐이다. 사실 운전자가 운전석에 앉는 순간 양보하고 배려하며 운전하겠다는 마음을 가진다면 이렇게 사고가 많이 일어날 일도 없다. 자율주행 자동차나 AI(인공지능)가 가지지 못하는 우리 인간만의 가치, 그것은 배려와 품위가 아닐까.
|홍명호 법무법인 도원 대표변호사.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 전문위원, 법무부 대한법률구조공단 감사, 손해보험협회 보험분쟁예방협의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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