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묵화를 바꾼 두 거장… 새로운 ‘변혁의 색칠’·묵묵한 ‘영혼의 붓질’

유승목 기자 2023. 12. 2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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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라면 산수화나 사군자(四君子)가 전부라는 고정관념, 정적인 멋을 고리타분하다고 느끼는 감성, 그리고 아파트에 걸기엔 부담스럽단 판단이 더해지며 한국화는 설 자리를 잃어왔다.

두 작가는 한국화의 '오래된 미래'다.

한국화, 동양화를 통칭하는 수묵화를 두고 흔히 '필묵(筆墨)의 회화'라 부른다.

서로 다른 스타일이지만 한국화의 현대화를 꿈꿨던 두 작가의 작품 사이를 지나는 순간, 시공을 뛰어넘는 만남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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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14일까지 ‘필묵변혁’ 展
미공개작 등 회화 42점씩 소개
황창배, 서양화처럼 독특한 구도
아크릴·연탄재 등 여러재료 사용
송수남, 먹물만으로 다양한 실험
산수화에 현대적 조형성 입혀
황창배 ‘무제’(1991) 왼쪽과 송수남 ‘붓의 놀림’(2008).

한국화라면 산수화나 사군자(四君子)가 전부라는 고정관념, 정적인 멋을 고리타분하다고 느끼는 감성, 그리고 아파트에 걸기엔 부담스럽단 판단이 더해지며 한국화는 설 자리를 잃어왔다. 시장성이 떨어지니 상업화랑에서 자취를 감추고, 젊은 작가들은 화선지 대신 캔버스를 펼치는 모습이 30여 년의 흐름이었다. 하지만 한국화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그림이 아니다. 시장의 외면 속에서도 동시대 미술에서 높게 평가받는 한국화의 현대화 과정을 톺아가다 보면 두 명의 한국화가 작품에 이르게 된다.

남천(南天) 송수남(1938∼2013)과 소정(素丁) 황창배(1947∼2001)다.

황창배와 송수남의 작품이 걸린 ‘필묵변혁’ 전시 전경. 세종문화회관 제공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필묵변혁(筆墨變革)’은 이 두 한국화가를 조명하는 전시다. 대표작부터 그간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작업까지 42점씩 총 84점의 회화를 소개하고 있다. 두 작가는 한국화의 ‘오래된 미래’다. 2017년 국내 미술사가, 평론가, 큐레이터들로부터 ‘20세기 대표 한국화가’ ‘재조명돼야 할 한국화가’로 꼽힌 이들은 20세기 후반 한국 수묵화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지난 22일 전시장에서 만난 임연숙 큐레이터(세종문화회관 문화사업본부장)는 “가장 한국적인 매체를 가지고 충분히 현대화, 세계화를 이룰 수 있단 가능성을 보였고, 그걸 해냈던 작가들인데 그간 주목되지 않아 안타까움이 있었다”며 전시기획 의도를 밝혔다.

한국화의 현대적 확장을 꾀했지만 작품의 감상은 사뭇 다르다. 한국화, 동양화를 통칭하는 수묵화를 두고 흔히 ‘필묵(筆墨)의 회화’라 부른다. 필묵은 필법(筆法)과 묵기(默氣)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필법이 외연적인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면 묵기는 내향적인 정신성에 보다 집중한다. 황창배가 종이에 필을 휘둘렀다면 송수남은 묵을 담아내는 방식으로 한국화의 변혁을 이끈 것이다.

‘한국화의 이단아’ ‘한국화단의 테러리스트’로 불린 황창배의 작품은 서양화처럼 색상이 다채롭고 구도가 독특하다. 전통적인 지필묵 외에 아크릴이나 연탄재 같은 색다른 물성을 시도한 것도 흥미롭다. 물고기를 그린 후 커다란 X를 긋거나, 한자 대신 종이에 한글을 가득 채운 작품들은 파격적이다.

“먹과 화선지는 어머니의 품과 같다. 단지 지금은 여행하는 과정”이라며 한국적인 이미지를 찾기 위해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를 보인 자체가 현대적이다. 생전 “붓질은 영혼의 빗질이다”라고 말했던 송수남은 수묵이라는 화두에 일관했다. ‘붓의 놀림’이라는 제목으로 운필의 리듬감, 먹물이 번져가며 생기는 추상적 풍경, 필획의 반복 등의 실험을 통해 산수화에 현대적 조형성을 입혔다. 1998년 작 ‘붓의 놀림’은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단색화나 여타 서양 추상화와 견줘도 밀리지 않는 조형성과 정신성을 보여준다.

송수남과 황창배의 작품들이 구분되지 않고 같은 공간에 나란히 늘어선 것은 전시의 묘미다. 서로 다른 스타일이지만 한국화의 현대화를 꿈꿨던 두 작가의 작품 사이를 지나는 순간, 시공을 뛰어넘는 만남이 가능해진다. 전시는 내년 1월 14일까지.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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