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피의 보복·극단주의 활개에… ‘인류의 오래된 증오’ 부활하다[Who, What, Why]
유대인 폭행·기물파손·시위 등
전쟁후 美서만 사건 337% 급증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극심”
이, 지상전 이후 가자지구 맹공
여성·아동 등 2만명 숨지면서
이스라엘 정부에 반감 최고조
美 등 극단 정치세력 잇단 등장
SNS 통한 음모론 확산도 한몫
워싱턴 = 김남석 특파원 namdol@munhwa.com
“대학 캠퍼스는 물론 초·중·고교와 거리, 시장 등 어디를 가도 반유대주의(Anti-Semitism)가 만연해 있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미국 백악관에서 가장 잘 알려진 유대인인 세컨드 젠틀맨(부통령의 남성 배우자) 더글러스 엠호프 변호사는 11월 영국 런던에서 가진 한 연설에서 최근 미국은 물론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반유대주의 시위의 열기를 보고 충격받았다고 말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극심해진 반유대주의 범죄=25일(현지시간) 미국 최대 유대인 인권단체인 반명예훼손연맹(ADL)에 따르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이후 12월 7일까지 미국 내에서 모두 2031건의 반유대주의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465건보다 337% 증가한 수치다. 여기에는 폭행사건 40건을 비롯해 기물파손 337건, 언어 또는 서면 괴롭힘 749건, 반유대주의 집회 905건 등이 포함됐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도 11월 초 유대교 회랑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하고, 유대계 학교 2곳의 정문에서 총탄 자국이 발견되는 등 반유대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크리스마스 기간 대형 반유대주의 테러가 발생할 수 있다며 테러주의보를 내렸다. 독일 검찰은 14일 유대인 시설을 공격하려 한 하마스 대원 3명을 체포했고 네덜란드에서도 관련 혐의 등으로 4명이 붙잡혔다. 덴마크 경찰도 같은 날 테러방지법 위반 혐의로 3명을 체포했다. 하마스 테러 모의와 별개로 유럽 내 유대인 및 관련 시설에 대한 공격도 급증했다. 독일 반유대주의연구소(RIAS)에 따르면 10월 7일부터 11월 9일까지 반유대주의 사건 944건이 발생해 2022년 같은 기간보다 320% 증가했다. 프랑스 파리 지하철에서는 한 10대가 유대교 랍비의 등을 걷어차 폭행 혐의로 체포됐으며 파리 10구 건물 벽에 유대인을 상징하는 ‘다윗의 별’을 낙서한 몰도바인 2명이 붙잡히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우방인 미국·유럽 등 서구에서 최대 금기였던 반유대주의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극심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세에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 표출=미국·유럽 등에서 반유대주의 정서가 고개를 드는 가장 직접적 이유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과정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정부의 무차별 공습·포격과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 당한 참혹한 피해 때문이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20일 전쟁 발발 이후 가자지구 전체인구(220만 명)의 1%에 육박하는 최소 2만 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사망자의 약 70%는 어린이(8000명 이상), 여성(6200명)이다. 하마스 전투원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고 병원, 학교 등도 목표로 삼고 이뤄지는 이스라엘군의 공세에 가자지구 사망자는 시리아 내전 등 과거 어떤 전쟁·분쟁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쟁 초반 하마스에 집중되던 미국 등 국제사회 비난 여론은 지상전 본격화 이후 이스라엘로 옮겨갔다. 특히 이스라엘에 책임을 묻는 수준을 넘어 반유대주의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엠호프 변호사는 “이스라엘 정부와 유대인의 행동을 분리하지 못하고 모든 유대인에게 이스라엘 정부에 대한 감정을 표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반유대주의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증오’라고 불릴 정도로 뿌리 깊다. 반유대주의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촉발한 이후 표면적으로는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예수 죽음은 유대인들의 책임이라는 데 기반을 둔 반유대주의는 서구 사회 문화·정서적 저변에 잠복해 있다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빌미로 부활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전에도 종교를 이유로 한 증오범죄의 표적이 될 확률이 가장 높은 대상은 유대인이었다. 전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한 유대인이 세계 각국 정·재계와 학계 등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따른 반감도 반유대주의의 근본 원인 중 하나다. 미국 내 유대인은 750만 명 정도로 추산되지만 유대계 연방 상·하원 의원은 36명이나 된다.
◇극단주의 정치세력 등장과 인터넷 문화 확산도 역할=최근 몇 년간 반유대주의가 심화한 배경에는 극단주의 정치세력의 등장도 빼놓을 수 없다. 인종·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증오·폭력을 조장하는 분위기를 확산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인종차별적 발언 등이 백인우월주의자들을 비롯한 반유대주의자들에게 청신호를 보냈다는 분석이다. 실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는 유대인이지만 핵심 측근이었던 스티브 배넌 전 수석전략가는 반유대주의 발언으로 여러 차례 도마 위에 올랐다. 에머슨 브룩 애틀랜틱카운슬 연구원은 “사회 변두리에서 살던 반유대주의자·인종차별주의자들이 갑자기 자신들이 합법성을 가졌다고 생각하게 됐다. 대통령이 이미 하고 있어 혐오 발언을 하는 것이 괜찮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16일에도 “(이민자들이) 미국의 피를 오염시킨다”고 발언하고 반대세력을 ‘해충’에 비유해 아돌프 히틀러의 주장을 연상시켰다.
익명성이 보장된 SNS 등 인터넷문화 확산 역시 반유대주의를 확산하는 토대가 되고 있다. 미국 등의 극우주의자들이 주로 활동하는 4chan·유즈넷 등의 플랫폼은 2001년 9·11 테러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책임을 유대인에게 돌렸다. 2010년대 들어서는 디스코드·8chan 등 유사 플랫폼이 더 불어나고 X(옛 트위터)·페이스북·유튜브 등 주류 SNS도 자체 단속에도 불구하고 미국사회 주변부에만 머물던 반유대주의가 힘을 얻는 기반이 됐다는 평가다. X를 소유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자신의 X 계정에서 반유대주의 음모론에 동조했다가 논란을 빚기도 했다. 중국 바이트댄스가 모기업인 틱톡 역시 반이스라엘 콘텐츠 확산을 통해 미 젊은층의 반유대주의를 부추긴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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