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주목할 만한 전시가 잇달아 열리고 있는 대전을 찾았다. ‘노잼’, ‘성심당의 도시’라는 기존의 키워드를 넘어 헤레디움, 대전시립미술관 등 현대미술의 중심 도시로 탈바꿈 중인 대전에서 이번 겨울 놓치지 말아야 할 전시들을 소개한다.
<안젤름 키퍼: 가을 Herbst >
2022년 단연 눈길을 사로잡은 예술 공간을 꼽으라면 ‘헤레디움(HEREDIUM)’을 들 수 있다. ‘유산으로 물려받은 토지’라는 의미를 담은 이곳은 1922년에 지어진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을 바탕으로 100여 년의 시간을 지나 복원을 거쳐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가슴 아픈 일제강점기 역사의 증거인 동시에 문화예술 신(Scene)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됐다는 데 그 의미가 크다. 2023년 9월부터 열리고 있는 <가을 Herbst>전은 전후 미술사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안젤름 키퍼의 작품 총 17점을 선보이고 있다. 릴케의 시 ‘가을’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답게 전시 공간인 1, 2층 전체가 깊은 가을의 무게감으로 가득 차 있는데 커다란 캔버스에 자리한 낙엽, 나뭇가지 등은 묵직한 두께감의 물감과 뒤엉켜 마치 거대한 자연의 일부처럼 읽힌다. 작품을 감상하는 우리 또한 순환하는 대자연의 일부로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 어두운 역사의 장소를 동시대 예술의 장으로 바꾼 것처럼 지는 것으로부터 아름다움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일부러 대전을 방문할 만한 이유로 충분하다.
기간 ~2024년 1월 31일
관람료 성인 1만5천원/청소년 1만2천원/어린이 9천원
주소 대전시 동구 대전로 735 헤레디움
홈페이지 heredium.art
<미래저편에: 대전 1993/2023>
대전시립미술관과 대전엑스포시민광장 아트센터, 이응노미술관은 서로 이웃하고 있다. 한 곳에 방문해 여러 공간과 전시를 두루 경험할 수 있는 대전의 예술 중심지라 할 수 있겠다. 현재 대전시립미술관에서는 대전 엑스포 30주년을 기념해 1993 대전엑스포 개최기념전 <미래저편에>를 복원해 <미래저편에 : 대전 1993/2023>전을 선보이고 있다. 당시 세계적인 축제로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던 대전 엑스포에 대한 기억이 있다면, 30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재현된 전시를 통해 그 시절이 중첩되듯 떠오를 수도 있겠다. 여러 이유로 이번 전시에 다시 선보이지 못한 작품들에 대해서도 각각의 설명과 함께 자리를 비워 전시 복원에 최선을 다한 기획자의 노력이 엿보인다. 이 전시와는 별개로 대전시립미술관은 열린수장고를 무료로 운영하고 있는데, 작품이 보관되는 수장고가 궁금했다면 이곳을 꼭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특히 오후 2~4시에 방문하면 백남준의 ‘프랙털 거북선’이 가동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기간 ~2024년 2월 25일
관람료 성인 1만원/대학생·청소년 8천원/어린이 6천원/7세 미만·65세 이상 무료
주소 대전시 서구 둔산대로 155 대전시립미술관
홈페이지 daejeon.go.kr/dma/index.do
<빈센트 발 : ART OF SHADOW >
‘그림자의 마술사’라 불리는 것이 마땅한 빈센트 발의 전시가 서울에 이어 대전에서 열리고 있다. 벨기에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영화감독인 빈센트 발은 유쾌한 방식으로 사물과 그 그림자의 관계를 흥미롭고도 창의적으로 풀어낸다. 사물의 그림자에 일러스트를 더해 만들어내는 일종의 협업에서 엿보이는 작가의 재치와 번뜩이는 아이디어 덕분에 보는 사람까지 함께 즐거워지는 전시다.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을 작가의 관점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전시이기에 어린아이와 동행해도 좋겠다. 영화, 만화 등으로 익숙하게 접해온 다양한 캐릭터를 작품 속에서 만날 수 있어 지루할 틈이 없고, 작가의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다양한 영상을 통해 자연스럽게 작가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찾아보게 될 수도 있다. ‘창작’과 ‘발견’ 사이에서 부단히 그림자학(Shadowology)을 발전시켜나가는 작가를 통해 숨겨져 있던 창작 욕구가 생겨날 수도 있겠다.
기간 ~2024년 2월 25일
관람료 성인 2만원 → 1만2천원(겨울방학 특가)
주소 대전시 서구 둔산대로 169 대전엑스포시민광장 아트센터 미디어큐브동
홈페이지 booking.naver.com/booking/5/bizes/958812
<이응노, 동쪽에서 부는 바람, 서쪽에서 부는 바람>
이응노 탄생 120주년을 맞아 국립현대미술관과 이응노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전시다. 특별한 기념전인 만큼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아라리오뮤지엄, 퐁피두센터, 체르누스키 파리 시립 아시아 미술관 소장품과 개인 소장품 등 국내외에 소장된 이응노 작가의 작품 60여 점과 아카이브 90여 점을 한자리에서 마주할 수 있기에 더욱 특별하다.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작가의 화풍을 통해 유럽으로 이주하기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극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작품 ‘군상’은 수많은 사람의 무리로 표현된 역동감이 너무나 강렬해 그 응집된 힘에 깊은 울림이 와닿는다. 더불어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러 작품을 통해 작가의 다양한 예술 세계를 엿볼 수 있기에 이응노 작가를 처음 접하더라도 어렵지 않은 전시라 할 수 있다. 전시 관람료는 성인 1,000원으로 거의 무료나 다름없는데, 대전 지역 거주자는 50% 할인이라니 500원으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예술 만찬’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