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난민 축구팀이 있어? 동두천에 있어!

류석우 기자 2023. 12. 27.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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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미군 떠난 곳에 들어온 아프리카 이주민·난민… ‘프리덤 에프시’ 만들어 축구 하는데 왜 한 명씩 사라져?
2023년 4월16일 ‘프리덤 에프시\'가 첫 연습을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혜원 경기북부이주민센터 센터장 제공

2023년 4월16일 오전, 경기도 동두천종합운동장 앞엔 이른 아침부터 운동하기 위해 찾은 이들로 바글바글했다. 축구장 크기 약 4분의 1 규모 풋살장에 아프리카 이주민 30명 남짓이 모였다. ‘프리덤 에프시’(Freedom Football Club) 팀원들이다. 단장 박혜원(53) 경기북부이주민센터 센터장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참석률에 깜짝 놀랐다. 기껏해야 10명 정도 모일 줄 알았다. 시간이나 약속에 대한 개념이 한국과 달라 평소 약속도 잘 지키지 않던 이들이었다. 박 센터장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렇게나 축구를 하고 싶었는데, 도와줄 사람이 없었구나.’

이로부터 한 달 전, 박 센터장은 평소 알고 지내던 이경렬(40)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씨는 동두천에서 난민 지원 등의 일을 하는 활동가다. 박 센터장이 말했다. “우리 축구팀 한번 같이 만들어봐요. 아프리카에서 온 이주노동자, 난민들로 구성된 축구팀이요.” 그는 이씨에게 매니저를 맡아달라고 했다. 이씨는 흔쾌히 수락했다. 박 센터장이 목사로 있는 교회에 전기를 수리하러 온 성용재(64)씨는 사연을 듣더니 덜컥 1천만원을 내놨다. 그 돈으로 팀 창단에 필요한 물품 등을 마련했다.

미군이 떠난 자리에 들어온 아프리카 이주민

프리덤 에프시 선수들은 대부분 동두천시 보산동에 거주하는 아프리카 이주민이다. 보산동 일대는 인근에 미2사단이 주둔해 오랫동안 기지촌이 형성돼 있었다. 그러나 미군이 점차 경기도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상권도 줄고 인구도 줄었다. 그곳에 아프리카계 이주민들이 자리를 잡았다. 주로 나이지리아 비아프라 출신의 이보족이 모여 살고, 라이베리아와 가나 등 서아프리카 이주민도 많다.

이들은 주로 인근의 섬유공장이나 가죽공장에서 일한다. 난민 자격으로 들어온 이가 많아 기타 체류자격(G-1)을 받고 거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23년 9월 기준 동두천 등록외국인 중 ‘G-1-5’(난민신청자) 비자를 받은 이가 443명, ‘G-1-6’(난민신청은 불인정됐지만 인도적 이유로 체류가 허가된 자) 비자를 받은 이가 57명이다. 통계에는 잡히지 않지만 체류기간이 만료되는 등의 이유로 미등록 상태로 거주하는 이도 많다.

아프리카 이주민이 보산동에 자리를 잡은 건 약 10년 전부터다. 박 센터장이 말했다. “보산동 주민들이 미군의 경제활동에 의지해 살았거든요. 미군이 점차 빠지면서 경제활동 인구는 줄고 낙후되는 과정을 겪었죠. 그 과정에서 한 10년 전부터 아프리카 인구가 유입된 거예요.” 그런데 문화차이가 컸다. “이주민들이 여름에 옷을 벗고 다니거나 파티도 많이 하거든요. 토요일 저녁에 보통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밖에서 술도 마시고요.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갈등이 심해졌고, 물리적 충돌까지 올 수 있는 상황이 됐어요.”

박 센터장은 주말에 동네에서 파티하는 것 외에, 스트레스를 풀거나 취미활동을 할 수 있는 판을 마련해보자고 생각했다. 이주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 축구이니, 축구팀을 만들기로 했다. 모이는 시간도 토요일 일찍 잠자리에 들 수 있도록 일요일 이른 아침으로 잡았다. 교회에 다니는 이주민을 중심으로 모았지만, 입단에 제한은 두지 않았다.

축구를 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관문들

이주민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대학교 때 학생 선수로 활동할 정도로 축구를 잘하고 좋아했던 나이지리아인 써니 에메흐(59)는 2007년 한국에 온 뒤 제대로 축구를 한 적이 없었다. 때때로 외국인들로 이뤄진 팀에 용병으로 나가긴 했지만, 팀에 속해본 적도 없었다. 팀을 만드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불안정한 체류와 비자 문제였다. “많은 이주민이 다른 도시로 떠나거나 다시 외국으로 나갔어요. 완전히 눌러앉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래서 (팀을 만들) 기회가 없었어요.”(써니 에메흐)

의외의 복병도 있었다. 그들은 시간을 정해놓고 정해진 장소에 모인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나이지리아에선 밤이든 낮이든 상관없이 어디에서나 축구를 해요. 한국에서 그렇게 하면 항의가 들어오잖아요.” 한국에서 19년째 사는 나이지리아인 벤저민 아나젬바(47)의 말이다.

“나이지리아 사람들은 축구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삶의 일부예요. 어디든 축구 할 사람이 넘쳐요. 나이지리아는 보통 오후 4시30분이나 늦어도 6시엔 일이 끝나는데 한국은 잔업도 있고 늦게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주말에도 종종 일하고요. 이런 환경이 운동하기 어렵게 하더라고요.”(써니 에메흐)

2023년 12월17일 경기도 동두천시 ‘자유로운 교회’에서 ‘프리덤 에프시\' 팀원들을 만났다. 왼쪽부터 성용재 구단주, 써니 코치, 박혜원 단장, 벤저민 선수. 류석우 기자

프리덤 에프시에서 써니는 코치를, 벤저민은 골키퍼를 맡고 있다. 팀을 만들면 당장 축구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축구장을 섭외하고 예약하는 행정적 어려움도 있었다. 동두천에는 시에서 관리하는 축구장이 4곳인데, 등록된 생활체육 축구팀만 20여 개가 됐다. 더구나 일요일 아침은 인기 시간대라 예약이 더 어려웠다. 한 달 넘게 경기장을 구하지 못하자 풋살장으로 눈을 돌렸다. 그렇게 처음 모인 것이 4월16일. 이날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라인과 골대가 있는 곳에서 축구를 했다는 이도 많았다. 이렇게 모인 30여 명은 박 센터장과 주축 선수들이 다니는 ‘자유로운 교회’ 이름을 따서 프리덤 에프시라는 팀 이름을 짓고 ‘원팀’이 됐다.

첫 연습 이후 동두천의 한 교회가 나섰다. 매주 일요일 오전에 풋살장을 대여해주기로 한 것이다. 동두천시 체육회 등을 통해 매달 한 번씩 동두천종합운동장 축구경기장 사용권도 확보했다. 그렇게 본격적인 기회가 열린 듯 보였다. 그러나 위기는 또 찾아왔다.

2023년 10월, 프리덤 에프시 주장 ㄱ씨가 법무부의 불법체류 단속에 걸렸다. ㄱ씨는 축구선수를 했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 주장을 맡았다. 그의 비자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은 단장인 박 센터장도 몰랐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분 중에선 나이나 이름도 얘기 안 해주는 분들이 있어요. 저도 그럼 굳이 안 물어보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안 보여서 주변에 물어보니 잡혀갔다는 거예요.” ㄱ씨를 비롯해 법무부 단속에 걸려 외국인보호소에 수용된 팀원은 모두 2명이다.

박 센터장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취임하고 나서 법무부 단속이 엄청나게 심해졌다”며 “보통 1년에 두세 번 정도 단속하는데 이젠 계속 단속한다. 보산역 쪽에서 불심검문을 하거나 길거리에서 무작위로 단속한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2023년 12월14일 보도자료를 통해 “2023년 3회에 걸쳐 역대 가장 많은 3만8천여 명의 불법체류 외국인을 단속했다”며 “10월10일~12월9일 시행한 3차 불법체류 외국인 정부합동단속 결과 총 7255명을 단속해 6532명을 강제퇴거 등 출국 조치했다”고 밝혔다. ㄱ씨 등 2명은 팀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운동은 계속된다

12월10일, 동양대 동두천 캠퍼스 인조잔디 구장에서 프리덤 에프시 창단 이후 첫 공식 시합이 열렸다. 삼양제일교회 축구팀과의 교류전이었다. 전반전은 0대0 팽팽한 흐름에서 마쳤다. 전반전 세 번의 결정적 기회를 놓쳤다. 써니 코치가 하프타임 때 선수들을 불러 모아 재정비했다. 그리고 이어진 후반전에서 프리덤 에프시는 4골을 몰아쳤다. 첫 공식 시합 승리였다. “모두가 행복했어요.” 승리엔 비밀이 있었다. “40살 이하 선수들만 출전시켰어요. 연습은 몰라도 게임에선 이겨야 하니까요.” 써니 코치가 웃었다. 나이 제한에 걸려 출전을 못한 벤저민이 옆에서 한마디 보탰다. “내가 뛰었어야 하는데!”

2023년 12월10일 ‘프리덤 에프시\'가 첫 공식 친선경기를 앞두고 몸을 풀고 있다. 박혜원 경기북부이주민센터 센터장 제공

프리덤 에프시는 2024년 2월까지 동절기 휴식 기간을 보낸 뒤 대회 참가를 목표로 다시 훈련에 돌입할 예정이다. 구단주의 목표는 2024년 동두천 내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다문화 국제축구대회 출전, 단장의 목표는 당장 겨울 동안 느슨해지지 않게 팀원들을 다잡는 것이다. 써니 코치의 목표는 조금 다르다. “축구 하면서 가장 좋은 게 함께하는 마음이거든요. 축구를 통해 아프리카 이주민이 하나로 모이면 좋겠어요.” 2024년에도 이들의 운동은 계속된다.

동두천(경기)=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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