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이승만, 정신교육…이념논쟁 자초하는 軍
"이를 부정하고 방관하는 것은 이적행위"…'우경화' 행보 뚜렷
文정부 종전선언 등도 '평화 구걸' 폄훼…정치적 중립 위반 소지
군인정신도 충성‧기강 강조…부당한 명령에 대한 거부권 언급 없어
국방부가 새로 발간한 장병 정신전력교육 교재에서 '북한 주적'을 새삼스럽게 강조할 뿐 아니라 '내부 위협세력'을 처음으로 언급하며 논란이 일고 있다.
한반도 안보 정세가 전례없이 악화된 가운데 올 여름 뜨거운 이슈가 된 홍범도 장군 흉상 문제에 이어 또 다시 소모적 논쟁을 자초한 셈이다.
국방부는 지난 26일 군 장병을 대상으로 발간한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를 국가관, 대적관, 군인정신 항목에 걸쳐 대대적인 수정을 가했다.
우선, 대적관 항목에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을 '우리의 명백한 적'으로 명시한 것은 물론, 처음으로 '내부 위협세력'을 언급했다.
이는 "북한의 대남적화 획책에 따라 우리 내부에서 대한민국 정통성과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부정하고, 북한 3대 세습 정권과 최악의 인권유린 실태, 극심한 경제난 등에 대해서는 침묵하며 북한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세력"이라고 규정됐다.
국방부는 특히 "이러한 세력의 위험성을 명확하게 인식시키는 것은 장병 정신전력 강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제"라면서 "이를 부정하고 방관하는 것은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적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건전한 진보진영을 우리 군이 마치 내부의 위협세력으로 언급한 것처럼 인식하는 게 우려스럽다. 전혀 그렇지 않다"며 과도한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전두환 신군부의 12‧12 군사반란이 6월 민주항쟁으로 단죄된 이후 국방부가 정치‧이념 문제와는 최대한 거리를 둬온 전례와 비교하면 현격하게 달라진 모습이다.
신 교재는 전임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비판하고 현 정부 정책은 대대적으로 홍보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 소지도 있다.
예컨대 한반도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추진에 대해 '평화 구걸' '가짜 평화'라고 폄훼한 반면, 윤석열 대통령의 한미동맹 강화 등은 이례적으로 사진까지 대폭 게재하며 홍보한 것이다.
전 대변인은 "(신세대) 장병들이 시각화된 내용에 대한 인식을 더 쉽게 하기 때문에 그런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서 시각적인 내용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고 해석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신원식 장관 취임 이후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에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완벽한 가짜' '사기극'이라고 비판하는 등 정치적 편향성이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일고 있다.
신 교재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대해서도 별도의 코너를 배정하고 '사사오입 개헌'이나 장기독재, 4‧19혁명에 따른 하야와 망명 같은 과오보다는 공적을 부각하는 등 객관적 형평성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교재는 북한의 대한 인식과 군인정신 항목에서도 과거와 비교해 큰 변화를 보였다.
좌우를 막론하고 북한에 대한 주적 규정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평화통일을 위한 협력의 대상'이라는 이중적 인식과 공감대는 적어도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이후 일관되게 유지돼왔다.
그러나 이번 신 교재는 '북한=협력 파트너'에 대한 언급이 사라지고, 기존 '안보관'이란 항목마저 '대적관'으로 바뀔 만큼 적대 의식에 큰 방점이 실렸다.
군인정신 파트에서도 '상관에 대한 충성'과 규율 및 기강이 강조된 반면 기존의 명령과 복종의 한계에 대한 언급은 사라졌다.
이는 부당한 명령은 거부가 가능하다는 등의 설명이 없다는 점에서 올해 뜨거운 현안이 된 해병대 항명 파동과 관련해 군 내부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전 대변인은 "굳이 안 넣어도 다른 내용들을 가지고 다 교육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교재에 기술하지 않았다)"라고 해명했다.
신 교재는 이밖에도 한일관계와 관련해 역사 및 영토문제에 대한 언급을 생략하거나, 남북통일과 관련한 서술을 대폭 축소한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국방부의 이번 정신전력교재 발간은 5년 단위로 이뤄지는 예정된 일정이다. 그러나 지난 8월 촉발된 홍범도 흉상 논란에 이어 세밑에 이르러서도 또 다시 이념논쟁을 재점화 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차제에 교재 발간 계획을 조정해서라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 되는 군 내부의 불필요한 정치‧이념 논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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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홍제표 기자 ente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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