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요] 홍지영 감독"한국 최초 흑인혼혈 '4번 타자 김영도', 가슴 아픈 사연"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3년 12월 24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베이스볼 하모니' 홍지영 감독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동아대학교 72학번 야구부 4번 타자였던 김영도 씨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베이스볼 하모니가 최근 다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어떤 얘기를 담고 있는 건지 이 영화 감독이신 홍지영 감독 오늘의 주인공으로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베이스볼 하모니는 한국 최초의 흑인 혼혈 야구 선수이자 체육교사 또 야구 감독을 했던 김영도 씨의 인생 역정을 다룬 거더라고요. 어떻게 이런 구상을 하셨어요?
◆ '베이스볼 하모니' 홍지영 감독(이하 홍지영)> 처음에는 이민자 논문을 쓰려고 했어요. 제가 그때 박사 과정 중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제 저희 어머니가 저쪽에 한인타운에 LA에 미국인으로 이렇게 피부가 좀 까무잡잡하신데 한국말을 끝내주길 잘한다. 신기하신 분이 있다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감이 확 왔죠. 그래서 이건 이민자 논문이다. 그래서 뵈러 가서 인사를 안녕하십니까? 박사 과정 중에 있고 논문을 쓰고 싶습니다 그랬더니 학생이야? 그러시더니 뭐 그래 그럼 무슨 얘기해 주면 돼 되게 퉁명스럽게. 그래서 그때부터 2018년도 4월부터 인터뷰를 시작을 했어요. 그래서 이제 한 거의 횟수로는 2년을 이민자 논문을 위해서 인터뷰를 하다 보니까 한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했고 석사까지 하셨고 체육 교사를 하셨다는 거예요. 근데 보통 그 시대에 대학을 가는 게 힘들었고요. 72학번이시니까. 교사까지 하셨다고 그래서 정말로 대단하신 분인데 싶었거든요. 그래서 한국에 방문을 하면서 너무 신기해서 아카이브를 좀 뒤져서 이 정도면 뜨겠다 그랬더니 역시나 김영도 동대문상고 4번 타자 1루수, 김영도 동아대 4번 타자 1루수 하면서 기사들이 줄줄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동대문상고의 동문이셨던 김인식 감독님이 아직도 현역에 계세요. 그래서 그분께 연락을 최선을 다해서 연락이 닿아서 저 김영도 선생님을 아세요? 첫 번째 질문이었어요. 그랬더니 네가 김영도를 어떻게 알아? 이리 와 봐 그래서 만나게 됐어요. 연락이 끊기셨었대요. 지난 30년 넘도록. 그다음 질문은 근데 영도가 너를 상대해 줬다고? 이상한데요? 영도 선생님이 그런 성격이 아니셨던 거예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제가 학생으로 논문 쓴다 그래서 말씀을 좀 같이 나눠주신 거지 그렇지 않으면
◇ 이성규> 저널리스트나
◆ 홍지영> 절대로 상대를 안 하시는 분이시래요. 낯을 많이 가리세요. 근데 학생이 가서 논문 쓰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교사셨잖아요. 그리고 본인도 석사시잖아요. 그래서 응해주셨던 거예요. 정말 다행이었죠.
◇ 이성규> 예 그래서 그렇게 하다 보니까 뭔가 구상이 또 막 됐나요?
◆ 홍지영> 김인식 감독님을 만난 후에 과거 야구를 같이 했던 친구분들과 제자분들까지 제가 한 30명 넘는 분들을 세 달 안에 인터뷰를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한 거예요. 그러고 나서 이야기가 완성이 됐거든요. 제가 부울경 지역을 시외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인터뷰를 하고 다닌 거예요. 제자분들을 다 찾고 친구분들 과거 동창분들 찾고 이거는 논문을 쓰면 안 되겠더라고요. 논문을 쓰면 에디터와 관련 학자들만 보잖아요. 그렇지만 다큐멘터리를 만들면 많은 분들이 동영상으로 보실 수 있으니까 생각을 해보니까 학자보다는 지금 이 다큐로 많은 분들이 보셔야 될 귀중한 얘기더라고요.
◇ 이성규> 그래서 박사를 하셨어요?
◆ 홍지영> 박사는 간신히 땄습니다.
◇ 이성규> 그럼 두 개 다 잡으셨네.
◆ 홍지영> 간신히 박사도 땄습니다.
◇ 이성규> 그래서 그렇게 구상을 하셨구나. 그럼 미국에서 사시다가 한국 오셔서 부울경을 막 그렇게 다니신 거예요.
◆ 홍지영> 그렇게 좀 고생을 많이 해서요. 원래는 제가 지금 상태보다 한 15kg 더 쪘었는데 그 고생을 하면서 다 빠졌습니다.
◇ 이성규> 미국의 기독교 영화제 그리고 베스트 다큐, 베스트 감독, 베스트 작가, 베스트 음악 편집상 이거 다 받으셨어요. 또 세계 최고 독립영화제인데 이 선댄스 영화제에 또 출품도 하셨고
◆ 홍지영> 제가 다문화 학자이기도 합니다. 현재 다문화학회에 소속이 되어 있기도 하고 미국에서는 다문화가 교육학과에서 많이 다루는데 제가 교육학 박사거든요. 그래서 한국의 다문화와 미국의 다문화가 결이 약간 다른데요. 이제 다문화에 대한 연구와 발표를 워낙 많이 하기도 했고 그래서 이 다큐는 미국과 한국 약간 다른 방면으로 잘 통할 수 있다라는 학자적인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역시나 기독교에서도 매우 좋아하셨고 제가 제 수업에서 이제 학생들한테 편집 전에 많이 보여주면서 그 리뷰를 했는데 라티노 학생들은 우리 부모님의 이야기다 그러면서 울었고요. 그다음에 흑인 학생들은 시간과 장소가 다른데 나 저기 나온 대사랑 똑같은 대사를 들으면서 자랐어 그러면서 울었고요.
◇ 이성규> 왜 다 울려요? 그렇게?
◆ 홍지영> 감동이 와서. 그다음에 페스티벌 관계자 미국에서 이제 대화를 하면서 어땠니 하고 물어보니까 그 앞부분에 어머니 산소 나오면서 이렇게 소주 뿌리면서 우는 장면이 있거든요. 같이 울었다고. 페스티벌 관계자도 그렇게 말을 해줬어요. 다 동영상으로 제가 인터뷰 떠놨습니다.
◇ 이성규> 그 이제 거기에 학자적인 통찰이 들어갔네요.
◆ 홍지영> 아무래도 처음에 논문을 쓰려고 접근을 한 거라서 분석은 이미 그렇게 끝나 있었죠. 모든 민족들이 다 좋아할 수 있는 이야기다.
◇ 이성규> 1950년 한국인 어머니 그리고 미군 사이에서 태어나셨죠? 김영도 씨가 그러니까 전쟁 때 태어났는데 이때만 해도 차별 서러움 이런 게 많았을 거예요. 시멘트에다가 검은색 피부를 갈아서 벗기려고도 했다. 그런 내용도 나오던데요.
◆ 홍지영> 그러다 보니까 다름 그 모습에 많은 차별이 있었거든요. 그 약간 외적인 얘기지만 제 친구 중에 부모님은 순 한국인이신데 제 친구만 유달리 머리 색깔이 노란 갈색에 가깝고 피부가 매우 흰 친구가 있어요. 한국인입니다. 부모님 한국인이시고 그 친구마저도 70년대 말 80년대 초에 돌을 맞았다고 해요. 피부색이 달라 보인다고. 그래서 학기 초마다 부모님이 초코파이 사들고 우리가 부모다 이 친구는 혼혈이 아니다 그런 일을 겪은 친구가 있거든요. 하물며 우리 김영도 선생님은 1950년도 70년도 60년대를 다른 피부색으로 사셨으니 그 다름에 대한 차별이 매우 심했죠. 이 김용도 선생님이 어렸을 때부터 기억이 생생한데 이렇게 지나가면 저기 그러면서 피부색 얘기하고 그러면서 막 야야 이리 와 봐 그러면서 동네 사람이 100명이면 100명이 다 모여서 이러고 구경을 했대요. 뭐 그거부터 돌까지. 골고루.
◇ 이성규> 그러다가 9살에 고아원에 알아서 그냥 자처해서 들어갔다면서요.
◆ 홍지영> 이제 어머니가 재혼을 하시려고 했었어요. 그래서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못하는 상황이었거든요. 어머니가 이제 장사를 하셔야 되니까 역술인이셔서 아줌마라고 부르라 그런 거예요. 홍길동도 아니고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어린 나이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겠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재혼을 하실 뻔하니 다른 남자가 오시니 엄마가 날 진짜로 버리나부터 시작해서 생각이 정말로 많은 게 드셨나 봐요. 그래서 나 이제부터 엄마 안 할 거야. 그리고 집을 나가신 거죠. 스스로.
◇ 이성규> 그리고는 이제 고아원에 있으면서 6학년 때부터 야구를 한 거군요.
◆ 홍지영> 고아원 원장 아드님이 야구를 매우 좋아하셨대요. 그래서 미군 부대에서 야구 장비들을 몽땅 지원을 받아서 그렇게 야구를 시작하게 됐다고 합니다.
◇ 이성규> 그러다가 이제 또 동아대 대학원에 가서 석사까지 하나 봐요.
◆ 홍지영> 먼저 동아대학교에 안영필 교수님께서 너는 내 양자로 삼겠다 그러니 동아대로 와서 야구를 해라. 그래서 4년 동안 장학금 받으면서 다니셨고요. 고 안영필 교수님께서 제일 아끼는 제자가 김영도 선생님이셨대요. 그래서 석사까지 하고 강의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대학교에서.
◇ 이성규> 그러다가 또 교사도 했어요.
◆ 홍지영> 교사는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바로 시작했죠.
◇ 이성규> 그럼 교사하다가 석사를 또 한 거군요.
◆ 홍지영> 안영필 선생님의 추천으로
◇ 이성규> 그러다가 또 야구 감독도 하고
◆ 홍지영> 대신 중학교가 야구 명문으로 유명한 학교들 중에 하나인데요. 김영도 선생님이 7년 재직하시면서 전국체전 승리도 하고
◇ 이성규> 네. 대신중?
◆ 홍지영> 예 대신중학교. 그러면서 석사를 하신 거죠. 그 와중에
◇ 이성규> 그러면서 이제 또 경상도 지역에 혼혈인 협회라고 있었는데 거기서 회장도 하고 또 그러니까 하나의 사회적 차별에 맞서는 그런 부분도 좀 있었던 것 같아요.
◆ 홍지영> 그게 이제 여러 가지 측면이 있는데 회장직은 야 그거 내가 돈 버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어. 그러니까 맨날 만나면 밥 사주고 그래야 되는데 돈들이 없잖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가 계속 회장을 했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 이성규> 예. 근데 왜 갑자기 또 미국으로 가셨어요? 그분이. LA에 가셨다며요.
◆ 홍지영> 피부색으로 온 가족이 모욕을 당했어요. 영도 선생님은 평생 해서 괜찮았는데 본인의 자녀들까지 피부색으로 모욕을 당하니까 내 탓이다. 나 때문에 이렇게 됐으니까 내 아이들은 그 설움을 겪지 않도록 하겠다. 그래서 마침 그때 미국에서 레이건 대통령이 법을 하나 지정을 했어요. 미국 병사의 아들이면 다 미국으로 올 수 있다. 그래서 영주권 받고 가셨습니다.
◇ 이성규> 이민 가서 근데 야구를 이제 기억에서 지웠더라고요?
◆ 홍지영> 일단 영어를 못하시기 때문에 선생님이 생각하기에 허드렛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러니까 한국에서처럼 야구 감독 교사 불가능했고요. 그래서 화장실 청소를 제일 처음에 하셨는데 화장실 청소에 오물 치우면서 자아분열이 오고 자신을 완전히 놓게 되셨대요. 내가 여기서 애들 먹여 살리려면 과거를 잊어야 되는구나. 자꾸 과거가 생각이 나면 나는 일 못하고 내 아이를 굶는다. 그 생각에 그때부터 야구를 기억 속에서 지우기 시작하셨더라고요.
◇ 이성규> 근데 그때 그런 인터뷰하시면서 느낌이 어떠셨어요? 감독으로서?
◆ 홍지영> 제가 이민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 자아분열 과정을 저도 겪었거든요. 똑같이. 이제 저는 한국말처럼 영어가 같은 레벨로 나오지 않으니까 저는 뭐 벙어리 귀머거리 그런 느낌이 있어서 이런 거구나 그러면서 이제 저도 많은 거를 자아를 놨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선생님은 저보다 2~3배 더 심하게 놓으신 거죠.
◇ 이성규> 네. 요즘은 이제 그분이 조금 벗어나셨나요?
◆ 홍지영> 많이 벗어나셨고 과거에 대한 상처도 거의 다 회복은 되셨어요. 가끔 가다 울컥하기는 하시는데 이제 괜찮아 이제는 뭐 보통 그렇게 대답을 하세요.
◇ 이성규> 영어는 좀 많이 늘으셨던가요?
◆ 홍지영> 알러뷰 뭐 그런 건 잘하십니다.
◇ 이성규> YTN 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차별을 없애고 주변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는 영화 베이스볼 하모니의 홍지영 감독 자리하고 계십니다. 홍 감독님 우리 이때쯤 노래 하나 듣거든요. 노래 하나 추천해 주시겠어요?
◆ 홍지영> GUANTANAMERA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 이성규> TRINI LOPEZ가 불렀죠. 영화 맘보킹 OST 중에서 GUANTANAMERA 듣고 오겠습니다. 홍지영 감독이 추천하신 TRINI LOPEZ의 GUANTANAMERA 듣고 오셨는데요. 홍 감독님 이 노래를 왜 추천하셨죠?
◆ 홍지영> 원래 작사가가요 호세 마르티 그래서 우리나라로 치면 백범 김구 선생님과 윤동주 시인을 합쳐놓은 것과 같은 분이세요. 그래서 쿠바의 독립운동을 되게 오랫동안 하셨어요. 스페인 식민지 400년이었거든요. 쿠바가. 그래서 이제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쯤에 시를 쓰신 게 이 GUANTANAMERA였어요.
◇ 이성규> 근데 얼마 전에 또 쿠바에 관한 책도 내셨지 않아요?
◆ 홍지영> 네 이제 한류가 쿠바까지 가서 어떻게 한류가 발현됐는지 단순히 한국 문화를 소비를 했으면 노래 좋아하고 드라마를 좋아했으면 제가 책까지는 안 썼는데요. 이 모인 친구들이 한국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토론을 해서 본인들의 이해한 바를 또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걸 공연도 하면서 설명을 해주는 거예요. 한국에 대해서. 이 정도면 책을 써야 된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 이성규> 그분들이 또 막 한국에 오고 싶어 하고 동경하고 막 그러죠.
◆ 홍지영> 너무 오고 싶어 하는데 지금 이제 지쳤습니다. 기다리다가.
◇ 이성규> 기다리다가. 그런 연유로 이 노래를 추천도 하고 그러셨는데 근데 그 어쩌다가 다문화 그런 쪽을 관심을 갖고 공부도 하시고 결국은 이제 다큐 영화까지 찍으시고 이렇게 됐대요?
◆ 홍지영> 이게 교육학으로 전공을 하다 보니까 다문화학회에 속하게 되고 다문화에서 많은 교수님들 만나고 학생들 만나고 다문화학회가 저명한 교수님들과 모여서 가는 첫 번째 여행이 쿠바였어요. 그랬는데 이 저명하신 학자들
◇ 이성규> 공부 하실 때 그러신 거예요? 미국에서 공부하실 때?
◆ 홍지영> 근데 저명하신 학자들이 줄줄이 계신데 학생들이 제가 한국인이라고 저한테만 모여드는 거예요. 저랑 사진 찍고 사인 받고 그래서 이 다문화가 인기가 있다 보니 한국인이라서 각광받는 일도 있구나 그때 깨달았죠. 그래서 다문화에 대해서 더 연구를 하게 됐습니다.
◇ 이성규> 우리 사회에도 점점 이 다문화와 관련된 그런 체계적인 연구들이 들어가야 될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이 드는데 어떠세요?
◆ 홍지영> 이제 미국에서의 접근법은 모든 민족이 모여 살아서 다문화는 그 이퀄리티 평등을 되게 강조를 해서 교육학에서 학교에서 가리키고 있는데. 한국은 사회복지 개념으로 시작을 한 거예요. 이 시작의 개념이 다르죠. 저는 이제 다를 수 있고 다름을 수용하는데 단 사회복지학으로 그렇게 가리키다 보면 약자로 이퀄리티는 없는 거죠. 거기서 약간의 좀 잡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퀄리티로 보는 시선을
◇ 이성규> 접근법이 좀 다르네요.
◆ 홍지영> 아주 많이 다릅니다.
◇ 이성규> 저기는 권리고 어쩌면.
◆ 홍지영> 당연한 거죠. 공기와 같은 당연함인데.
◇ 이성규> 내재적 포함. 그 사회 안에 내재적으로 포함이 되어 있는 거
◆ 홍지영> 당연한 인클루시브인데 한국에서는 익스클루시브한데 이 사람들이 약자니까
◇ 이성규> 그걸 인테그레이트를 시키자 그렇게 되는 거죠.
◆ 홍지영> 그게 그럼 많이 달라지거든요. 그렇죠. 근데 시작이 그랬으니까 이제 수정 과정 중에 있습니다.
◇ 이성규> 그리고 요즘 이제 한국을 위해서 공공외교를 하는 민간인 이렇게 표현을 해야 되는지 또 일본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약간
◆ 홍지영>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공공외교를 저는 이런 식으로 풀고 있어요. 이제 일본이 일본 친구들 같은 경우에 한국이 좋아서 방문한 여학생들이 무지 많아요. 제가 고시원에 살면서 일본인 한국으로 온 유학생들을 이런 식으로 공공외교를 했어요. 한국 재료로만 해서 일본 음식을 만들어주는 거예요. 그러면 그 일본 학생들이 언니의 사랑이 들어서 그렇지만 우리 엄마가 만들어준 것보다 더 맛있어요. 그러면서 언니 이건 맨쯔예요. 그러면서 먹는 거야. 한 사람을 위한 한 그릇 음식이래요. 맨쯔가. 한국 재료로 일본 음식 만들기 제가 그런 식으로도 하고요.
◇ 이성규> 뭐가 있을까요?
◆ 홍지영> 일단 국수 종류는
◇ 이성규> 우리 국수로
◆ 홍지영> 냉국수 온국수 이 모든 거를 일본 음식으로 제가 다 만듭니다. 그런 식으로 공공외교도 하고요. 그다음에 이제 거기서 조금만 더 익숙해지면 콩나물 넣고 이거 이게 한국식 국수야. 근데 라면 아주 모든 서민들이 먹는 음식인데 먹어봐. 그랬더니 후쿠오카에서 온 친구가 언니 우리 고장은 라면으로 유명한 고장인데 언니한테 졌어요. 분하지만 언니 라면이 훨씬 더 맛있어요. 언니 앞으로 저는 일본 라멘을 한동안 먹지 않겠어요. 제가 졌으니까 이게 일본식 표현법이더라고요. 이제 그대로 직독직해를 하니까 한국말을 분하다 졌다. 이게 그냥 일상적인 일본의 언어더라고요. 그래서 일본 엄마한테 다녀오고서 2주 동안 언니 저 이번에 일본 다녀오면서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과 라멘을 먹지 않고 언니 생각만 했어요. 이제 그런 식으로 뭐 아주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음식으로 이렇게 승부를 볼 수 있구나. 그래서 맛있게 만들어주면 그렇게까지 표현을 하고 뭐 이게 공공외교 아닌가요? 그런 식으로 승부를 봤죠. 음식으로.
◇ 이성규> 음식으로. 근데 그 학자로서요. 수교하지 않은 나라에도 우리나라가 거기 K-컬처가 인기가 있고 뭐 BTS, 기생충, 오징어 게임 이런 부분들이 왜 매력을 느낄까요?
◆ 홍지영>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최고의 품질이 보장된 최상품이어서 좋아했습니다.
◇ 이성규> 네
◆ 홍지영> 친구들이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언니 우리는 맨날 남의 드라마를 노래를 많이 들었는데 내용이 치정극, 살인극 너무너무 지겨웠대요. 그런데 한국 드라마와 한국 노래들은 내용이 아주 심플하면서도 사랑스럽고 노래 가사들도 행복, 극복하자 내용도 좋고 그래서 마음의 위로가 됐대요. 그런데 퀄리티는 최고. 화면이 구도가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다고. 비교가 안 된다고. 이 친구들이 고립된 삶을 살다 보니 무역도 못하고 밖으로도 못 나가고. 그래서 그 안에서 밖에 거를 보니까 제3자의 입장으로 전 세계의 모든 미디어들을 분석하는 능력이 있어요. 인터넷이 들어가니까. 그래서 상당히 객관적으로 평가들이 잘 나옵니다.
◇ 이성규> 이제 또 우리 홍지영 감독님의 이제 개인적인 얘기를 조금 더 들어보려면 2000년대 미국으로 가셨더라고요?
◆ 홍지영> 네 유학을 갔습니다.
◇ 이성규> 근데 지금은 어머니도 같이 계시다며요?
◆ 홍지영> 석사 박사 지나면서 이제 결혼하고 정착을 하면서 어머니까지 초청을 했습니다. 어머니 이혼 후에 혼자 사셨거든요. 그래서 미국으로 모셨습니다.
◇ 이성규> 그리고 지금 또 남 네바다 주립대 교수님도 하시고
◆ 홍지영> 이제 한국에는 없는 개념이라서 그냥 한국에서는 겸임 교수라고 표현을 해버렸는데요. 제가 다른 일도 같이 하기도 하고 강의를 5개 합니다. 한 학교에서.
◇ 이성규> 그렇지. 5개면은 많이 하시는 거죠.
◆ 홍지영> 한 학교에서 5개,
◇ 이성규> 강의 전담 교수님이네요. 그럼 그 다섯 과목이 어떤 과목들이에요?
◆ 홍지영> 5과목을 오럴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스피치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한 학기에 100명이 넘게 가리키고 있습니다.
◇ 이성규> 그러면 그 과목을 다섯 클라스를 하시는 거예요. 학부 대학원
◆ 홍지영> 또 교양학부생들만 가리키고 있죠.
◇ 이성규> 선생님들만 오럴 커뮤니케이션 영어로 막 강의를 하셔야 될 텐데
◆ 홍지영> 어렵습니다.
◇ 이성규> 랭귀즈가 중요할 텐데
◆ 홍지영> 그래서 항상 이 강의 초반에 10년 전에는 되게 많이 힘들었고 백인 학생들은 그냥 저 얼굴 보고 나가는 경우도 있었어요. 근데 어느덧 한류가 인기를 타면서 이제 일부러 저를 찾아오는 학생들이 있거든요. 한류를 좋아하는 학생들은. 그러면서 오히려 저의 액센트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한국식 액센트를. 이런 날이 오네요.
◇ 이성규> 참 한류가 무섭긴 하네요.
◆ 홍지영> 저는 행복합니다. 그래서.
◇ 이성규> 가치 있는 무서움.
◆ 홍지영> 네
◇ 이성규> 그 이제 마지막 이제 다문화 학자로서 앞으로 어떤 또 다큐를 또 찍으실지 이젠 영화감독이라는 칭호가 더 유명하게 됐으니까 다음 구상과 함께 마무리 말씀 해주시죠.
◆ 홍지영> 다음 구상은 충청도 할머니 세 분을 인터뷰 2년에 걸쳐서 하고 있고요.
◇ 이성규> 그랬어유?
◆ 홍지영> 어느 정도 대략 정리가 됐습니다유.
◇ 이성규> 근데 왜 충청도를 선택하셨어요?
◆ 홍지영> 이분들이 제일 처음에 제가 찍었던 영화에 엑스트라로 나오셨는데 제가 할머니들하고 대화를 참 잘해요. 이 할머니들 인생 얘기를 듣다 보니 이렇게 신기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대화를 하다가 촬영을 야금야금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베이스볼 하모니의 홍지영 감독과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홍지영> 감사합니다.
◇ 이성규>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YTN 이은지 (yinzhi@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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