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 멀쩡한 스케이트장 두고 또 2천억 쓴다고?

박수혁 2023. 12. 2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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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프리즘]
문화체육관광부와 강원도 등이 지난 10월 2024 강원 겨울청소년올림픽이 열릴 예정인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 등을 점검하는 모습.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박수혁│충청강원데스크

“태릉 국제스케이트장 대체 시설이 완공되면 빙상월드컵, 동계체전 등 국내외 대회 개최를 통해 관광객 유치와 일자리 창출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지난 13일 대한체육회가 쏘아 올린 공고문 한장에 전국이 들썩이고 있다. 조선왕릉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따라 철거 예정인 태릉선수촌 안 국제스케이트장을 대체할 부지를 찾는다는 내용이다. 2030년 완공 예정인 이 사업 공사비는 약 2천억원(부지 매입비 제외)으로 400m 트랙과 부지 면적 5만㎡(연면적 3만㎡) 이상 등이 조건이다.

공고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4개 시·군이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경기도 동두천시와 양주시, 강원도 철원군과 춘천시다. 저마다 당위성을 내세우며 유치를 자신하고 있다. 접수기간이 내년 2월8일까지인 것을 고려하면 추가로 지자체들이 유치전에 가세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앞다퉈 유치전만 보도할 뿐 ‘강릉스케이트장’을 주목하는 곳은 없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의 무대였던 이 경기장 건립엔 국비 948억원 등 1264억원이 투입됐다. 연면적 3만7485㎡로 대한체육회가 조건으로 제시한 400m 트랙까지 갖췄다.

16일간의 겨울올림픽이 끝난 뒤 이 경기장은 어떻게 사용되고 있을까? 소유주인 강원도에 확인해봤다. 올림픽 다음해엔 육아박람회 두번 등 19일 동안 네차례 행사가 열렸다. 2020년에는 5월부터 12월까지 영화 세트장으로만 사용됐다. 2021년에도 1월부터 5월까지 영화 세트장으로 쓰이고, 11~12월에는 평창기념재단 행사가 35일가량 열렸다. 2022년에는 평창기념재단 행사 등이 82일 동안 열렸고, 올해는 강원특별자치도 출범 기념식 등 3개 행사가 열흘 동안 열린 것이 전부다.

1264억원짜리 경기장을 이렇게 대여해 얼마나 벌었을까? △2019년 2371만원 △2020년 5억8369만원 △2021년 4억5392만원 △2022년 1억2991만원 △2023년 1141만원이다. 영화 세트장 대관비를 빼면 연간 수천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경기장은 기본 운영비만 연간 8억~9억원이 든다. ‘애물단지’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면 2천억원을 들여 새 스케이트장을 짓는 대신 영화 세트장, 육아박람회 장소 등으로 전락한 강릉스케이트장을 사용하면 어떨까?

대한체육회 쪽은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분위기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국가대표 훈련 공간 제공이 목적인데 대학 수업과 병행해야 하는 선수들의 이동 거리와 시간 등을 고려할 때 강릉 경기장은 안 될 것 같다. 문화체육관광부와도 새로 짓는 거로 정리됐다”고 선을 그었다. 1264억원짜리 경기장을 짓고선 서울에서 멀다는 이유로 2천억원 들여 새 경기장을 지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왜 이렇게 꼬여버린 걸까? 사실 이런 상황은 강릉스케이트장 건설 전부터 예견됐다. 2014년 말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분산 개최를 권고하자 일부에선 강릉에 스케이트장을 짓는 대신 태릉스케이트장에서 대회를 열자고 했다. 하지만 분산 개최 권고 8일 만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분산 개최는 의미 없다”고 선을 그었고, 논의는 중단됐다.

또 다른 기회도 있었다. 마땅한 사후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한 문체부와 강원도, 평창조직위는 2014년 6월 강릉스케이트장을 임시 건축물로 지어 대회가 끝나면 철거하기로 했다. 그런데 2016년 4월 당시 박근혜 정부는 “철거 예정이던 스케이트장을 올림픽 유산 가치, 겨울스포츠 인프라 여건 등을 고려해 존치·활용하기로 했다”며 갑자기 결정을 번복했다. 이어 “재정에 부담되지 않도록 운영비 절감, 다양한 수요 창출 등 구체적이며 치밀한 사후 활용 계획을 조속히 마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는 앞서 설명한 대로다.

이제는 약속을 지킬 때다. 정부는 태릉스케이트장 대체 부지 선정에 앞서 강릉스케이트장 활용 방안부터 마련해야 한다.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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