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노량’ 정재영 “첫 외국어 연기 막막...전투 같았죠”
정재영은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이하 노량)에서 이순신 장군을 도와 왜군을 정벌하는 조명연함함대의 총사령관 명나라 수군 진린을 연기했다. ‘노량’은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이다. 임진왜란 발발 후 7년 조선에서 퇴각하려는 왜군을 완벽하게 섬멸하기 위한 이순신 장군의 최후 전투를 담아냈다.
정재영은 “처음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역할을 떠나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최후, 이 국민 스포일러를 어떻게 처리했을지 궁금했다. 상당히 어려운 작업일 텐데 읽고 났을 때 감동스럽고 먹먹했다. 그래서 무조건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노량’에 합류한 이유를 밝혔다.
‘노량’ 출연을 결심한 후 힘을 쏟은 건 외국어 대사였다. 첫 외국어 연기에 도전한 그는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막막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사투리 연기만 해봤지 외국어 연기는 처음이었다. 처음엔 ‘하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다. 중국어 잘하는 분들, 외국어 연기를 기가 막히게 해낸 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다”며 “하면 할수록 일취월장해야 하는데 발전 속도가 생각보다 느려서 고통스러웠다. 촬영 내내 힘들었다. 게다가 사극이고 그 시대 고어에 감정을 함께 표현해야 해서 연기 신경 쓰랴, 발음 신경 쓰랴 너무 어려웠다. 중국 사극을 너무 많이 봐 지금은 안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어가 굉장히 빠른데 제 위치가 있으니 포인트를 집어 속도 조절을 해야 했다. 감정적으로 표현해야 할 때는 한국식 표현을 섞어 쓰기도 하니까. 연기하면서 언어적인 부분 때문에 변수가 많아 힘들었다. 신경을 쓸 게 너무 많았다”고 설명했다.
“즉각적인 리액션이나 연기적 교류가 불가한 현장이었다. 알아들어도 못 알아들어야 했다. 계속 통역을 통해 한 템포 느리게 반응해야 하니까. 리얼리티를 위해 한 톤 낮춰서 극적이지 않고 조금은 다큐처럼. 화가 나도 바로 내는 게 아니라 듣고 한 템포 늦게 화내고 반응도 반 템포 느리게 해야 했다. 눈빛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의지와 정도만 즉각적으로 가능해서 그 외 다른 부분들은 한 템포 늦게 해야했다.”
정재영은 “진린은 이순신에게 계속 물어보는 입장이다.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그 이유가 뭐냐고, 이순신의 대의와 그 속마음을 꺼내도록 해주는 역할”이라며 “외부에선 악역으로 주로 나쁜 면이 부각돼 많이 그려져 왔는데 실제로는 의견이 분분하다고 한다. ‘노량’에서는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치우치지 않은 채 긴장감을 조성하면서 입체적으로 각자의 상황에 맞는 인물로 그리려고 노력했다. 그 누구도 평면적일 수 없는, 여러 생각을 가지고 행동할 수밖에 없는 시대여서 그런 부분을 염두에 뒀다”고 밝혔다.
이어 “인물에 대한 총괄적인 느낌을 러프하게 잡은 채로 신마다 집중해서 갔다. 단순화되는 것을 지양하면서 고증을 토대로 진린은 이순신 장군에 대한 존경심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물로 가지고 갔다. 실제로 이순신 장군보다 두 살 많은 인물이고 직책도 높지만, 사적인 자리에서 다른 나라 장군에게 존칭에 해당되는 표현을 쓴다는 것 자체가 깊은 애정을 가진다는 의미”라고 부연했다.
“톤은 기본적으로 남의 나라 싸움, 이미 끝난 전쟁이기 때문에 중재자이면서 약간 한 쪽 편이기 때문에 무게감이 덜하다. 우리 일이 아니니까. 그렇게까지 심각할 필요 없는 무심한 느낌으로 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쟤넨 어차피 도망갈 텐데 왜 이렇게까지 하냐는, 진심을 솔직하게 말하는 인물이다. 이순신이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이해가 안 가니까. 고증을 기본으로 한 픽션이다 보니까 입체적으로 합리적으로 했던 것 같다.”
그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김윤석 형이 할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분장을 안 하고 있을 때는 형이지만, 현장 분위기가 가볍지만은 않았다. 분장할 때는 웃고 떠들 수가 없었다. 무거운 작품이었다. 온갖 고뇌와 짐을 메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같이 느껴졌다”고 치켜세웠다.
김한민 감독에 대해서는 “작품을 함께 하기 전에는 평범해 보이고 여유로워 보였는데, 작업을 할 때는 집요하고 끈질기고 비범하다. 보통 사람이면 할 수 없는 작업과 의지다. 누가 이걸 10년간 할 수 있겠나. 허투루 하는 게 하나도 없다. 현장은 물론 후반 작업도 디테일함이 장난 아니다. 예민하고 그런 부분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타고난 무엇이 있는 것 같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애정이 정말 장난 아니다. 성이 김이 아니라 이인가 싶을 정도로 이순신에 미쳐있는 뜨거운 사랑이라 이 작업이 가능했던 것 같다”며 존경심을 표했다.
정재영은 ‘노량’ 현장 분위기도 “진짜 전투 같았다”고 귀띔했다.
그는 “작품 자체가 주는 중압갑도 크고 저마다 안고 있는 과제가 너무 크다 보니까 진짜 전투 같았다. 갑옷도 무겁고 역할도 무겁고 책임감도 크고 함부로 말을 떠들 수도 없다. 톤을 유지하려면 한국말을 최대한 적게 해야 해서 말을 잘 못해서 괴롭더라. 쉬는 시간에도 서로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사람은 많은데 좀 고독한 작업 현장이었다. NG를 내는 것 자체도 너무 부담스러운 분위기였다. 몰입감이 깨지니까. 굉장히 긴장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마지막으로 그는 ‘노량’에 대해 “개인적으로 이순신 3부작 중 가장 좋았다. 두 작품의 장점을 다 합친 느낌”이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내가 나오는 신은 긴장돼 보기 힘들었지만, 작품 자체로만 본다면 정말 감동적이었고 재미있었고 볼거리와 느낄 거리가 많았다. 해전에선 소름이 돋는 장면들도 있었고 그 기술력에 놀라웠다. 미장센도 각국 병사들이 펼치는 참혹한 난전을 아주 멋진 연출로 담아낸 것 같다. 단지 이순신의 마지막 모습이 아닌 7년의 전쟁의 끝을 제대로 보여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시나리오로 봤을 때 마지막 ‘북소리’가 이렇게 큰 힘을 발휘할지 몰랐지만 영화로 봤을 때 엄청났다. 먹먹함이 장난 아니었다. 앞으로 최소 10년은 이순신 영화는 없지 않을까. 다시 건드리려면 새로운 시각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야하기 때문에 영화로선 향후 10년은 못 보지 않을까 싶다.(웃음)”
[양소영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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