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가 선정한 2023년 10대 뉴스 (下)
[비즈니스 포커스]
2023년은 불확실의 해이자 거꾸로의 해였다. 전문가들이 예상한 경제 전망은 수정되기 일쑤였고, 역성장이 예상된 미국 경제는 오히려 성장을 거듭하며 정반대로 질주했다. 그런가 하면 저출산, 지구온난화와 같은 낡은 단어들이 현실의 문제로 다가와 우리 삶을 습격했다. 2023년은 어떤 해로 기록될까. 한경비즈니스가 2023년 ‘10대 뉴스’를 선정했다.
⑥ 부동산 PF
2023 금융위기의 뇌관
지난 12월 8일을 기준으로, 국내 신용평가회사 3곳이 최근 한 달간 채권의 신용등급이나 등급전망을 낮춘 기업 수는 모두 12개사에 달했다. 이 중 절반에 가까운 5곳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 확대를 하향 조정 사유로 반영했다. 특히 중소형 증권사 그리고 건설사들이 등급전망에 타격을 입었다.
올해 초부터 한국 경제를 쥐고 흔든 부동산 PF가 연말까지 말썽이다. 금융전문가들은 ‘부동산 PF’가 한국 금융위기의 ‘뇌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고 있다.
부동산 PF란 기업의 신용과 담보에 기초해 자금을 조달하는 기존의 기업금융과 달리 기업과 법적으로 독립된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로부터 발생하는 미래 현금흐름을 상환재원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기법을 의미한다. 건설사들은 PF 대출을 통해 공사비를 충당한 뒤 발주처에서 분양수익이 들어오면 현금으로 정산하는 방식을 취한다.
경기가 호황일 때는 예상기대수익이 높은 만큼 많은 금융사들이 참가하다 보니 자금을 끌어모으기 좋지만, 불황일 땐 자금흐름이 경색되면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부동산 PF로 돈을 빌린 건설사들의 파산위험이 증가하면, 이는 곧 금융사들의 부실로 이어진다. 특히 부동산 PF는 캐피탈, 저축은행, 금융투자회사와 같은 2금융권에서 중점적으로 실행됐는데, 이들은 시중은행보다 자본 규모가 작다 보니 부실이 발생할 경우 버틸 여력이 크지 않다. 2금융권을 시작으로 ‘연쇄 도산’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또한 ‘부실한 부동산 PF 사업장에 대해 정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당장의 문제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내년 말쯤으로 예상되는 만큼 당장 의미 있는 업황 개선을 기대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신평사들의 최근 잇단 증권사, 건설사의 신용등급 강등 배경도 여기에 이유가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추가 강등 사례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을 하고 있다.
⑦ 미국으로 간 기업들
미국의 부흥, 한국 제조업의 위기?
“토니, 당신을 비롯해 CS윈드에 근무하는 수백 명의 일꾼들 덕분에 미국이 바뀌고 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2월 4일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한국의 풍력업체인 CS윈드 방문 당시 만난 근로자를 거명하며 특별히 감사의 뜻을 전했다. CS윈드는 풍력 타워와 터빈을 만드는 한국 기업으로, 콜로라도주 푸에블로에 공장을 짓고 투자 중이다.
바이든의 감사는 CS윈드뿐이 아니다. 백악관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한국의 대미 투자 규모가 556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악관이 밝힌 아시아·태평양 기업들로부터 유치한 민간 투자 총액인 2000억 달러의 4분 1이 넘는 수준이다. 백악관 측은 “인플레이션 감축법, 반도체과학법, 초당적인 인프라법과 같은 역사적인 입법 등의 바이드노믹스와 바이든 대통령의 ‘인베스트 인 아메리카’가 전 세계,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업들이) 미국에 상당한 투자를 하도록 촉진했다”고 부연했다.
백악관은 구체적으로 삼성이 텍사스주에 새로운 반도체 공장 건설을 위해 170억 달러를 투자하고, 미국에 전기자동차 베터리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파트너들과 함께 12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며 이를 통해 일자리 수천 개를 창출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화큐셀이 조지아주의 공장 확장을 위해 25억 달러, CS윈드가 콜로라도 풍력 타워 제조 시설에 2억여 달러를 투자했다고 언급했다. LG화학은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있는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 32억 달러를, LG에너지솔루션도 애리조나주 퀸 크릭에 있는 전기차 배터리 생산 공장에 56억 달러, 미시간주 홀란드 공장에 30억 달러 투자를 발표했다고 백악관은 전했다.
이 밖에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산업에 150억 달러 투자를 약속했고, 한국의 당뇨병 치료 전문 제약사 유엔바이오가 웨스트버지니아주 모건타운에 인슐린 생산 제조 시설 마련을 위해 1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대미 투자 규모가 전례 없는 수준으로 늘어나는 동안 국내에서는 투자 한파가 불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10월 설비투자는 전년 대비 9.7% 줄며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KDI는 “반도체 경기 반등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재고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며 관련 설비투자 수요가 제한됐다”며 “여타 기계류도 고금리 기조의 영향으로 부진이 지속됐다”고 진단했다.
20년 전 보스턴컨설팅은 ‘글로벌 대기업 숫자가 한 나라의 경제력을 결정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지금 한국은 투자 혹한기를 겪고 있다. 공교롭게도 228개 시군구 가운데 소멸위험지역은 118곳(52%)이나 된다. 이는 지난해 3월보다 5곳이 증가한 것으로 지방자치단체 2곳 가운데 1곳은 소멸위험에 직면했다는 얘기다.
⑧ 성장주의 실종
같은 고금리, 다른 주가
미국과 한국이 반대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은 투자 규모만이 아니다. 고금리 상황은 동일했지만 ‘성장주’의 운명은 각기 달랐다.
12월 10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MS), 엔비디아, 구글 모회사 알파벳, 애플,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플랫폼, 아마존, 테슬라 등 이른바 ‘매그니피센트 7’이 AI 잠재력에 힘입어 S&P500지수 상승의 4분의 3을 차지했다. 이들 기업은 올해 3분기에만 990억 달러(약 130조원)의 기록적인 수익을 올렸다.
특히 빅테크 주가 상승의 견인차 역할을 한 엔비디아는 AI 수요에 힘입어 실적이 크게 증가했다. 애플 또한 ‘꿈의 시총’이라 불리는 3조 달러를 세계 최초로 넘어서며 화제를 모았다. 전 세계 7위인 프랑스의 GDP보다도 높고 한국 GDP로 따지면 1.7배 수준이다. 이 뒤를 현재 시총 2위인 MS가 오픈AI와의 협업으로 상승세를 타면서 바짝 쫓고 있다. 그야말로 빅테크, 성장주의 시대다.
이론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장면이다. 앞서 미국 중앙은행(Fed)은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정책금리를 525bp나 인상하면서 미국 경기 후퇴가 당연시됐다. 하지만 올 한 해 미국 경제의 성장세는 2022년에 비해 더욱 강해졌다. AI 열풍은 물론, 반도체와 2차전지 기업 중심의 미국 리쇼어링 가속화와 제조업 투자 확대로 재정 자극이 가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코스피지수는 올 한 해 확실한 주도주 없이 박스피를 횡보하고 있다. 성장주가 없는 곳에 개인 투자자들은 2차전지, 초전도체, 맥신, 양자컴퓨터, 후쿠시마 오염수, 정치 등 테마주와 종목을 중심으로 한 당일 매매에 몰두하는 경향이 짙게 나타났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1월 유가증권시장 전체 거래 대금에서 당일 매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41.5%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엔 32.3%로, 올 들어서만 9.2%포인트 급증한 셈이다.
⑨ 지구온난화
GDP 두 자릿수 하락의 범인
뜨거운 겨울.
‘뜨거운 아아메 한 잔’ 같은 소리가 올겨울을 설명하고 있다. 경험해본 적 없는 따뜻한 겨울 날씨,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스페인 남부 지역에는 지난 12월 12일 낮 기온이 30도에 육박하면서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더위가 찾아왔다. 절기상 1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겨울로, 이 기간 남부 지역 기온은 통상 8도에서 18도를 기록하는데 이를 훌쩍 웃도는 깜짝 더위가 찾아온 것이다.
2023년은 지구 역사상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될 것이란 전망이 확실시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기후변화 감시 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연구소(C3S)는 12월 6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올 1∼11월 전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인 1850∼1900년 평균기온보다 1.46도 높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같은 기간(1∼11월) 기준 역대 가장 더웠던 해인 2016년과 비교해서도 0.13도 높다.
지구온난화는 세계의 경제 지도도 바꾸고 있다. 살인적인 폭염에 에너지 가격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농산물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농업과 같은 날씨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산업은 물론 반도체와 관광산업에도 영향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극심한 고온은 공장 기계를 더 빨리 마모시키고 강철을 더욱 쉽게 휘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30년 폭염으로 3000조원 이상 경제적 손실이 전 세계에 닥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여기엔 원자재뿐 아니라 노동력의 손실도 담겼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폭염으로 인한 만성적 신체 위험이 세계적으로 국내총생산(GDP)을 2100년까지 최대 17.6% 위축시킬 수 있다고 추정했다. 학술지 랜싯 등 다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온이 영상 32도에 도달하면 생산성이 25% 떨어지고 영상 38도를 넘으면 70%의 생산성 손실이 발생한다.
⑩ 자동차의 질주
“꼼짝 마, 반도체”
한국 수출액 1위 품목은 반도체다?
2025년이면 이 공식이 깨질 위기에 놓였다. 반전의 주인공은 자동차다. 자동차가 반도체를 제치고 2025년 수출액 1위 품목에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평균 가격이 높은 전기차와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등의 판매가 증가하며 수출 금액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수출금액은 838억 달러(110조5900억원)로 집계됐다. 지난해 연간 수출액인 774억 달러를 이미 넘어선 수치다. 수출 1위 품목인 반도체(853억 달러)와의 차이는 15억 달러에 불과하다.
자동차 수출 금액 확대는 평균 판매단가 상승이 이끌고 있다. 하이브리드차, 전기차 등 친환경차와 SUV는 동급의 내연기관차와 비교해 가격이 1000만~2000만원가량 비싸기 때문에 이러한 고부가가치 상품이 많이 팔리면서 수출액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자동차 수출 금액은 2025년 또 한 번 변곡점을 그릴 전망이다. 현대차의 울산 전기차 신공장과 기아의 화성 목적기반모빌리티(PBV) 전기차 공장 등이 가동을 앞두고 있다. 울산 신공장의 연간 전기차 생산능력은 20만 대, 화성 PBV는 연간 15만 대 수준이다.
업계에선 완성차 수출단가와 수출 물량이 동시에 증가하면서 자동차와 부품 수출액은 반도체를 제치고 1위에 오를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임은영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완성차 가격은 계속 상승하는 추세지만 현대차와 기아의 국내 공장 가동률이 거의 100%에 이르러 양적 성장에는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며 “2025년부터 새로운 공장들이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수출 금액 확대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수는 반도체 업황이다. 올해 부진에 시달렸던 반도체 업황이 내년 반등에 성공한다면 자동차의 1위 탈환 가능성은 낮아질 전망이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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