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다[편집실에서]

2023. 12. 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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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생도들의 5·16 지지 가두행진을 지켜보는 박정희 소장(가운데)의 모습 ㅣ경향신문 자료사진



윤석열 정권이 끝내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조선제일검’으로 불렸다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정치무대 한가운데로 끌어올렸습니다. 특수통 검사 출신으로 정권 출범 때부터 ‘2인자’, ‘황태자’ 등으로 불린 그의 본격 등장은 대통령 친정인 검찰조직의 정치세력화를 의미합니다. 그가 성공한다면 치명적인 데자뷔, 배지(국회의원)부터 청와대 비서실, 정부 각료, 정보기관 수장, 산하 공공기관장에 이르기까지 군부 출신이 장악했던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시대를 떠올리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습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직후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혁명군 장교들과 함께 서울시청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정치인 박정희’의 사진 다들 기억하시지요. 길은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일성과 함께 정치 전면에 등장한 ‘정치인 한동훈’을 보면서 오래전 일이라 빛이 바랬지만 여전히 강렬한 아우라를 풍기는 그 한 장의 흑백사진을 떠올립니다. 정권을 찬탈한 군사쿠데타 세력과 합법적으로 선출된 윤석열 정권을 어떻게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느냐고요? 가치나 역사적 평가 여부를 떠나 현실적으로 한국 보수세력의 뿌리로 추앙받는 박정희한테 ‘정치 초짜’ 한동훈이 명함이나 건넬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물론 가능합니다.

권재현 편집장



그러나 한번 돌이켜보죠. 박정희는 당시 기준으로 정치 초보 아니었습니까. 뒷짐을 지고 당당한 표정으로 대중 앞에 선 점퍼 차림 박정희 소장의 모습이 훗날 민주화를 위한 수많은 투쟁과 시련, 기울어진 운동장의 서막으로 기억되리라고 예견한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됐겠습니까.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인들, 먹고사는 문제는 내팽개치고 좌우 대립에 허구한 날 시간을 허비하는 사회지도층에 넌덜머리가 난다며 “(기성 정치판을) 싹 갈아엎겠다”고 외치는 정치군인 세력에 열광한 사람들은 없었을까요.

지금 펼쳐지는 상황은 과연 그때와 얼마나 다릅니까. ‘강남 엘리트’, ‘눈물까지 멋지다’, ‘클래식과 예술에도 일가견’ 등의 수식어가 정치인 한동훈을 떠받칩니다. 공직(검사) 생활 외에 정치 경험이나 관련 경력이라고는 전무한 일국의 장관이 총선을 진두지휘하겠다며 정치라면 잔뼈가 굵은 영남권 토호, 다선 중진, 원로들이 수두룩한 보수정당의 비상대책위원장 자리를 꿰찼는데도 끽소리 못합니다. 구시렁구시렁 반발하는 제스처를 취해보지만 요식행위일 뿐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지만 실제상황입니다. 반대 진영인 문재인 정권이 임명한 검찰총장 출신의 ‘검사 윤석열’을 대선후보로 받아들이고, 수직적 당정 관계라는 세간의 비판이 무색하게 대통령 말 한마디에 집권당 전체가 끌려다니고, 배우자 리스크가 발목을 잡아도 제대로 건의조차 하기 힘든 분위기의 대통령실 주변 상황을 보면 한동훈의 출현은 예고된 수순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어찌 됐든 배는 닻을 올렸고, 민심의 바다를 항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순풍을 만나 목적지에 당도할지, 격랑을 만나 좌초할지 오는 4월 총선 결과가 주목되는 2024년입니다. 주간경향 신년호, 지금 출발합니다.

권재현 편집장 ja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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