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취임사로 본 비대위 앞날 처칠 연설 인용하며 “싸울 것” 강조 “신뢰·실력 있는 분들 국민께 제시” 불체포 포기 약속해야만 공천 천명 당정 수직관계 지적엔 “동반자 관계” “이재명 대표 찾아뵐 것” 밝히기도 12분 연설에서 ‘동료시민’ 10번 언급 野 “반성은 없이 독설부터 뱉어” 비판
“우리는 상식적인 많은 국민들을 대신해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과 그 뒤에 숨어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운동권 특권세력과 싸울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26일 취임사에서 ‘더불어민주당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내년 총선 승리를 통해 원내 다수당인 민주당의 폭주를 막고 운동권 정치를 종식시키겠다는 것이다. 여당의 새 사령탑인 한 위원장이 전면전을 예고하면서 여야 간 대치는 더욱 극심해질 전망이다.
한 위원장은 민주당과 이 대표를 ‘나라를 망치는 운동권 특권세력’으로 규정하며 ‘대야 투쟁’을 강조했다. 통상 ‘정권 심판론’과 ‘정국 안정론’의 총선 구도를 전환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그는 “이대로 가면 지금의 ‘이재명 민주당’의 폭주와 전제를 막지 못할 수 있다는 상식적인 사람들이 맞이한 어려운 현실은 우리 모두 공포를 느낄 만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저는 용기 내기로 결심했다. 용기 내기로 결심했다면 헌신해야 한다”며 “용기와 헌신은 대한민국의 영웅들이 어려움을 이겨낸 무기였다. 우리가 그 무기를 다시 들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윈스턴 처칠 영국 전 총리의 연설을 차용해 “호남에서, 영남에서, 충청에서, 강원에서, 제주에서, 경기에서, 서울에서 싸울 것이다. 그리고 용기와 헌신으로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전시 내각을 이끈 처칠 전 총리는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이다. 우리는 상륙지점에서 싸울 것이다. 우리는 들판과 거리에서 싸울 것이다”라고 연설했다. 한 위원장이 인용한 ‘공포는 반응이고, 용기는 결정’ 역시 처칠의 명언이다.
한 위원장은 약 12분간 이어진 수락 연설에서 ‘동료시민’이란 단어를 10번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서 정치를 시작하게 된 이유를 언급하며 “미래와 동료시민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위원장은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 동료시민들의 삶을 좋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었다”며 “지금까지 그 마음으로 살았고, 지금은 더욱 그 마음”이라고 밝혔다.
한 위원장은 내년 총선 불출마 선언과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포기로 민주당 이 대표와의 차별점도 내세웠다. 그는 “우리는 이 대표의 민주당과 달라야 하지 않겠나”라며 “우리 당은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기로 약속한 분들만을 공천할 것이고, 나중에 약속을 어기는 분들은 출당 등 강력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한 위원장은 ‘이 대표를 만날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야당 대표를 당연히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한다”고 했다. 새 당 대표나 원내대표가 취임하면 상견례 형식의 만남을 갖는 통상의 절차엔 따르겠다는 의미다.
또 그는 “국민의힘은 다양한 생각을 가진, 국민께 헌신할, 신뢰할 수 있는, 실력 있는 분들을 국민들께서 선택하실 수 있게 하겠다”며 “공직을 방탄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 분들, 특권의식 없는 분들만을 국민들께 제시하겠다”고 다짐했다.
韓 비대위원장 취임 일성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비대위원장 임명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이날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가르치려 드는 운동권 특권정치를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건희 여사 특별검사 법안에 대해서는 “총선용 악법이라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서상배 선임기자
다만 여전히 한 위원장이 ‘수직적 당정관계’를 풀어나갈 수 있을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그는 당정관계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서로 보완하고 동반자적 관계이지 누가 누구를 누르고 막고 이런 식의 사극에 나올 법한 궁중 암투는 지금 이 관계에선 끼어들 자리가 없다”면서 “우리(당)는 우리의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이고, 대통령은 대통령의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해서도 “총선용 악법”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반복했다.
한 위원장 취임을 두고 여권에서는 기대감과 우려가 교차했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불출마 선언은 의외였지만 좋은 것이라고 본다”며 “국회의원 하려고 나온 사람이 아니라 앞으로 여기에 자기 모든 것을 걸겠단 얘기”라고 평가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여당이 빨리 안정을 찾길 바라고 앞으로 당과 소통도 원활하게 이뤄지길 바란다”고 했다.
與 지지자들 응원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이날 취임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응원하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반면 한 비주류 의원은 “이미 우리는 진영 결집은 했고, 그걸로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며 “이 대표가 나쁘다는 걸 강조하기보단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층)에 어필할 수 있는 얘기를 해야 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또 다른 의원은 “취임 일성 치고는 표현이 셌다”면서도 “김기현 전 대표 때와 달리 한 위원장이 분위기를 쇄신시키는 데는 효과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한 위원장의 정치권 데뷔를 두고 날 선 견제 발언을 쏟아냈다. 강선우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어떻게 취임 첫 일성으로 그간 국정운영 실패,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반성 한마디 없이 제1야당의 대표에 대해 모독과 독설부터 뱉냐”며 “이게 5000만 국민의 언어냐”고 비판했다. 김 여사 특검법을 고리로 한 압박도 이어갔다. 강 대변인은 “국민께서는 김 여사 주가조작에 대한 실체적 진실 규명을 원한다”면서 “한 위원장은 결국 윤 대통령의 공천 지령을 전달할 대리인이고, 김 여사를 지키는 호위무사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789 비대위·법조 출신 공관위장’ 주목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취임하면서 비대위원과 공천관리위원장 인선에도 관심이 쏠린다. 비대위 구성 완료는 늦어도 오는 29일, 공관위원장 임명은 이르면 다음주에 이뤄질 전망이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비대위는 위원장 1명과 당연직인 원내대표, 정책위의장을 포함해 전체 15명 이내로 구성된다. 윤재옥 원내대표, 유의동 정책위의장을 제외하면 한 전 장관이 직접 인선할 수 있는 비대위원은 최대 12명이다.
‘국민의힘 영입 인재’로 경기 수원정 출마를 선언한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비대위 참여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비대위원으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이 교수는 이날 “(비대위원을) 할 생각이 없다”면서 “여기(수원정)가 그렇게 여의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선거를 치를 만한 만만한 지역이 아니다”라고 했다.
‘586’(5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이 주류인 더불어민주당과 차별화를 위해 ‘789’(70·80·90년대생) 비대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받아들여질지도 주목된다. 한 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생물학적 나이란 것은 열정이나 헌신할 자세하고는 (관련이 없다)”며 “제한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한 위원장은 이날 첫 인선으로 TK(대구·경북) 초선 김형동 의원을 비대위원장 비서실장에 임명했다. 김 의원은 48세로 한 위원장보다 2살 어리다. 한 위원장과는 1970년대생, 서울대·사법고시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경북 안동·예천을 지역구로 둔 김 의원은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위원장을 지낸 당내 노동 전문가다.
내년 총선을 책임지게 될 공관위원장 자리도 관건이다. 당초 당은 이달 중순 공관위 출범을 목표로 했지만, 비대위 체제로 전환되면서 당헌·당규에 따라 다음달 10일 이전 구성될 전망이다. 검사 출신인 한 위원장에 이어 또 다른 법조인 출신 인사가 공관위원장에 임명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대해 하태경 의원은 MBC라디오에서 “(공관위원장의) 제일 중요한 요건은 검사는 안 된다. 가급적 법조계는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김기현 전 대표 체제에서 임명된 이철규 인재영입위원장, 신의진 당무감사위원장, 황정근 윤리위원장은 이날 한 위원장에게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 이 위원장은 이날 통화에서 “한 위원장이 백지상태에서 인사를 할 수 있게 자리를 비워주자는데 세 사람 모두 생각을 같이했다”고 했다. 주요 당직자들의 사의 표명은 ‘한동훈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자는 뜻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