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無知지옥] 유재석이 추천했다고?… 투자자 유혹하는 ‘가짜 HTS’ 써보니
리딩방 투자 전문가, 경력·사진 모두 ‘가짜’
“사기 업체, 수익금 인출 요구하면 미루다가 도망”
곗돈과 은행 적금이 전부였던 시절도 있었으나 지금은 스마트폰을 활용한 주식, 가상화폐 매매 등 투자처가 다양해졌다. 그만큼 금융 소비자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하지만,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정신이 바뀌지 않았다. 돈을 다루는 장사를 가장 천한 직업으로 여기는 탓에 그간 우리 사회에서 돈에 대한 얘기는 금기시됐고 금융 교육이 전무했다. 그 결과 3대 사모펀드(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및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논란, 라덕연 사태가 터졌다. 반복되는 금융 사고를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짚어봤다. [편집자주]
“해외 선물에 관심 있거나 배우고자 하시면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보내주세요. 최대 15% 페이백 이벤트도 진행 중으로, 현재 200분 넘는 회원님들과 수년간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일확천금의 기회는 흔치 않다. 하지만 ‘이 세계’에선 어렵지 않아 보인다. ‘정식 해외 선물 대여업체’라고 주장하며 “휴대폰 하나로 억대 수익을 누릴 수 있다”고 유혹하는 S그룹 이야기다. 하루 최소 300% 수익 보장에 당일 환급도 쉽다고 말하는 이 회사에 연락을 취해봤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으로 회사에 연락하자 상담사는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선물 투자 경력, 홈트레이딩시스템(HTS) 사용업체, 투자 가능한 시드 금액 등이었다. 거래 수수료는 1계약당 4달러(약 5200원)라고 했다.
거래마다 발생하는 수수료가 부담스럽다고 하자 상담사는 “수수료 지원도 해준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이후 상담사는 자신들이 직접 운영하는 홈트레이딩시스템(HTS) 프로그램 파일을 카카오톡으로 보냈다. 상담사는 “모의 투자 버전도 있으니 연습한 후 실전 투자를 해도 된다”고 안내했다.
HTS를 이용하려면 회원 가입부터 해야 한다. 기재할 정보는 이름, 이메일, 휴대폰 번호, 계좌번호다. 모든 정보를 허위로 입력했지만, 가입은 승인됐다. S그룹이 최소한의 신원 확인도 못 한다는 뜻이다. S그룹 HTS는 빠른 주문, 차트 분석 등 있을 건 다 있는 시스템이었다. 차트는 실시간 선물 거래와 동일하게 움직였다.
우선 모의 투자를 해보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그러자 S그룹 관계자는 80명이 모인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초대하며 “이곳에 실전 투자자도 있으니 함께 대화 나누면서 공부하라”고 했다. ‘복주머니’라는 이름의 이 채팅방에선 하루에 세 번씩 리딩(매매 지시)이 진행됐다. 대개 1부는 오전 10시~11시 30분, 2부는 오후 4~5시, 3부는 오후 11시~오전 12시에 이뤄졌다.
이 채팅방의 지휘자는 최우주 대표 트레이더와 최동근 매니저다. 두 사람은 가격을 지정하고 매도·매수·컷(손절)을 지시한다. 채팅방 참여자들은 서로의 수익률을 인증했고, 일부는 기자에게 모의 투자를 그만하고 얼른 실전에 나서라고 부추겼다.
키움증권 트레이더 출신이라는 최동근 매니저는 키움·삼성·미래에셋증권 투자 대회를 섭렵한 자칭 ‘투자 전문가’다. 하지만 실제 언급된 증권사에 모두 확인해 본 결과, 그는 증권사 어디에서도 상을 받은 적이 없었다.
최우주 대표 트레이더 역시 자신을 키움증권 선물 모의 투자 대회 1등 출신이라고 소개했는데, 이는 사실무근이었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우리가 선물옵션 모의 투자 대회를 개최한 건 2017년에 한 번뿐인데, 수상자 명단에서 최우주란 이름은 찾을 수 없다”고 했다.
홈페이지에 게시된 최우주 대표의 프로필 사진도 도용된 이미지였다. 그가 자신이라고 올려둔 사진은 사실 홍경열 법률사무소 율선 대표 변호사 사진이었다. 홍 변호사는 “예전에 내 사진을 도용한 투자 사이트를 본 적 있는데 아직도 이렇게 악용되고 있는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S그룹은 강호동·유재석·송해 등 유명 연예인과의 인연도 자랑했다. S그룹 홈페이지엔 이들 연예인이 ‘최우주 마스터를 보증한다’는 글을 들고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다. 하지만 이는 ‘행복한 명절 보내세요’ 등의 글을 들고 찍은 사진을 S그룹이 도용한 것이었다.
S그룹은 자체 HTS를 두면서도 현금으론 거래할 수 없게 했다. 모의 투자와 달리 실전 투자에선 가상자산만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즉 투자자가 S그룹에 현금을 입금하면, S그룹이 투자자의 HTS 계좌에 에스코인(S-coin)이라는 가상자산을 주는 식이다. 그들은 현금 1원당 1에스코인을 주겠다고 했다. 수사당국의 자금 추적을 회피하고자 가상자산을 이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가상자산에서 현금으로 환전하려면 S그룹의 승인이 필요하다. HTS에서 수익을 얻었어도 이를 빼 현금화하는 걸 담보하기 어려운 구조다.
홍 변호사는 “이런 구조에서는 투자자가 자금을 빼려고 하면 회사가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며 환급을 미루거나 ‘인출 수수료가 필요하다’며 투자자에게 추가로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설명했다.
조선비즈는 S그룹의 입장을 듣기 위해 회사 고객센터로 수차례 연락했으나, S그룹은 대답을 피하고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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