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법정은 햇살 쨍쨍…국내는 창문 하나 없이 밀폐, 왜?

(서울=뉴스1) 임세영 기자 =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핫도그 가게 상표권 침해금지 가처분 심문 영상재판에서 관계자들이 개정을 기다리고 있다. 2020.6.17/뉴스1

지난 19일 오전 10시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한 법정에서는 횡령 혐의를 받는 남성이 재판받고 있었다. 이 남성은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고 판사는 그를 꾸짖었다. 창문 하나 없는 밀폐된 공간에서 엄숙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법정은 더 차갑게 느껴졌다. 법원 밖은 숨만 쉬어도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웠지만, 법정은 땀이 날 정도로 열기가 가득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재판에 검사는 자신 앞에 놓인 서류를 향해 고개를 푹 숙인 뒤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하품했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서울대학교 로스쿨 재학생 이모씨(27)는 재판 방청을 마친 뒤 취재진에게 "법정 분위기가 딱딱하고 엄숙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창문이 없어서) 답답함을 느끼긴 했다"며 "공기 상태도 좋았던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국내 대부분의 법정에는 창문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27일 대법원이 머니투데이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등 법원 8곳의 법정 261곳 중 248곳(95%)에 창문이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창문이 있는 법정은 단 13곳(5%)에 불과했다.

법원 행정처는 보안 등의 이유로 법정에 창문을 설치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법원청사 설계지침서(2020년 개정판)에 따르면 사건과 관계없는 사람이 건물 외부에서 직접 법정 진행 상황을 볼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법원 행정처 관계자는 "(해당) 기준에 따라 청사 외부와 인접한 법정은 창문 설치를 지양한다"고 설명했다. 서울 지역의 한 판사 "형사 법정 같은 경우 도주 우려 등의 안전 문제 때문에 이렇게 설계된 것 같다"고 말했다.

변호인·검사 등 재판 당사자들과 판사의 동선이 겹칠 우려도 고려됐다. 설계지침서에 따르면 사건 당사자의 동선과 법관의 동선은 엄격히 구분돼야 한다. 법무부 관계자는 "해당 기준에 따라 동선을 구분해 법정을 배치하면 청사 외부와 인접한 법정 외 나머지 법정은 창문이 없는 실로 배치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반영됐다"고 밝혔다.

서울에 있는 법원 법정 중 창문이 설치된 법원 수/사진제공=대법원

실내공기 환경 전문가인 강동화 서울시립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우리가 차를 운전하다가 졸리면 창문을 여는 것처럼 법정 안에도 사람이 많고 환기가 잘 안되면 피곤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강 교수는 "자연 환기, 중앙 공조 또는 환기 시스템 등이 잘 구비돼 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다행히 법정은 내부는 원활히 환기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법원에 따르면 법원은 공기조화기를 활용해 오염된 실내공기를 외부에 배기하고 신선한 공기를 실내에 공급하고 있다. 특히 서울중앙지법의 경우 모든 법정 내부에 공기청정기를 비치하고 있다.

창문이 있으면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허정회 법무법인 안팍 변호사는 "창문이 없다는 걸 불편하게 느껴본 적은 없다"며 "창문이 있다면 오히려 외부의 환경에 따라 재판에서 집중이 흐려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국내와 다르게 해외 법정에는 창문이 설치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법정을 다룬 각종 미디어에서 창문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지난 11월6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지방법원에서 열린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판만 영상만 봐도 그렇다. 이날 트럼프는 재산을 부풀려 은행과 보험사를 속였다는 혐의로 재판받고 있었다. 그가 앉은 피고인석 뒤에는 커다란 창문으로 쨍쨍한 햇살이 법정 안으로 비치고 있다.

재판받는 도널드 트럼프 뒤로 큰 창문이 보인다. 재판 분위기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엄숙하지만 쳐지거나 갑갑한 분위기가 있지는 않다. 중간중간 서 있는 법정 경위들이 긴장된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사진=유튜브 캡쳐

오석진 기자 5stone@mt.co.kr 양윤우 기자 moneysheep@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