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광재 "한국을 글로벌 R&D 센터 허브로"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이 지난달 새 책 '같이 식사합시다'를 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랜 정치 동반자이자 청와대·국회·강원도청을 거친 정치가가 국회 사무총장으로서의 임기를 매듭짓고 내년 총선 등판을 앞둔 시점에 낸 책이란 점에서 더 눈길이 간다.
이 사무총장의 정치 인생, 철학을 10가지 음식에 담아 소개한 이 책은 과거 그의 저서들에 비해 독자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지난 21일 국회에서 그를 만나 신간에 대한 가벼운 내용에서부터 국회 사무총장으로서의 소회, 정치 현실에 대한 생각, 민주당이 처한 현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진보와 보수를 넘나드는 실용주의자란 평가처럼 이 사무총장은 다양하고도 신선한 대안 제시들을 빼놓지 않았다.
▶영화 '서울의봄'에서 다뤄진 내용 이후 우리나라는 광주(5.18 광주 민주화운동)라는 비극을 맞게 된다. 그 이후의 두 남자의 이야기를 음식 이야기로 풀어 쓴 것이라 보면 된다. 노무현 변호사가 어떻게 인권 변호사가 되고 그 후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대입 시험을 마친 뒤 1982년 무전여행으로 광주에 갔던 대학생 이광재가 어떻게 노무현을 만나 질풍노도의 시간을 함께 겪었는지의 과정이다. 이를 음식 이야기와 섞어서 해 놓은 책이다.
-국회 사무총장직을 내려 놓으신다는 게 기사화됐다. 임기를 되돌아보셨을 때 잘한 점과 아쉬운 점은
▶국회 사무처 공직자들에게 자신감을 갖게 한 것은 잘한 일 같다. 일하는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데 그럼 국회 세미나 등 활동이 중계돼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고 봤다. 의원회관에서는 각종 정책세미나와 토론회가 연 1400회 가량 열린다. 이런 활동이 유튜브 뿐 아니라 지역 케이블 TV 등으로 중계되려면 방송법 개정이 필요했다. 다들 안 된다고 했지만 결국 법을 개정해 이를 가능케 했다.
지난 9월 국해 안에 문 연 북&베이커리 카페 '강변서재' 성공도 빼놓을 수 없다. 접근성이 떨어지고 수익성이 낮단 이유로 문을 열기까지 사업이 9번 유찰됐고 민간 자문위원들도 부정적 반응을 보였지만 개점 첫 달부터 흑자를 기록했다. 더 많은 국민들이 국회 안에 들어오도록 해 국회와 국민간 간극을 줄인 것도 의미가 크다.
아쉬운 점은 국회 혁신이다. 연간 본회의 개최 횟수를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37회, 미국은 100회다. 국회 생산성이 이렇게 떨어지는 줄은 의원 시절에 몰랐다. 훨씬 더 많은 회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해나가도록 해야만 국회가 더 봉사할 수있지 않나 생각한다.
▶우리가 미·중·일·러·북한에 대해서는 손바닥 들여다보듯 봐야 한다. 그들을 이해하고 네트워크도 있어야 한다. 해외 주재 우리 대사들의 임기는 평균 1.8년이다. 다른 나라는 평균 임기가 최소 4.5년이다. 10년인 곳도 있다. 우리는 대사관 직원도 3년마다 바뀌는데 이래서는 안 된다. 지구 전체를 운동장으로 쓰는 외교가 필요한데 그러려면 의원 외교가 공공 외교의 핵심이 될 수 밖에 없다. 한일의원연맹은 있지만 한중, 한미의원연맹은 없었다. 최근 한중의원연맹은 창설했지만 한미는 아직이다. 김진표 국회의장께서 내년에 미국 순방을 가시면 창설도 되고 워싱턴 현지에 의회교류센터도 열 것이다. 예산도 확보했고 준비가 한창이다.
▶현 정부는 사실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출범했는데 국민들의 현재 평가는 낙제 수준이라고 본다. 이번에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사례에서 우리가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전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이 없고 국가 비전이 부족하고 바른말 하는 사람이 없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책임지는 이가 없다는 건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잼버리 사태도 마찬가지다. 엑스포 유치 실패 사례만 보더라도 국가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지 않다고 여겨진다. 비전과 관련 현 정부가 내놓은 노동·교육·연금개혁의 방향은 좋았다. 그러나 이후에 구체적인 후속 내용이 없는 게 문제다.
-국정운영에 참여해 보신 경험이 있다. 제언해 주신다면
▶공직자에게 자율과 창의성을 줘야 한다. 그러려면 감사원의 정책감사 제도를 빨리 없애야 한다. 정책감사가 정치감사화되다 보니 공직자들이 일을 안한다.
기업인에게도 자율을 줘야 한다. 우리나라에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국세청 등은 '경제 검찰'로 기능하는데 과도한 규제는 안 된다. 공정위가 추진하는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만 하더라도 옛날 제조업 시대 독점 방지하는 걸 떠올리면 안 된다. 이러면 우리 IT 기업이 다 죽는다. 자율 강화 측면에서 기업인에 대한 배임죄 역시 다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배임제도를 가진 나라가 전세계 몇 곳 없다. 배임죄 대신 주주대표 소송 강화 방안도 나오는데 이는 제도적 연구가 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현 정부 들어 기업친화적인 태도를 강조하지 않나
▶윤석열 대통령이 스스로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라고 하는데 기업이 할 일은 기업에 맡기면 된다. 대통령으로서 할 일은 아시아에 있는 글로벌 기업의 본부, 연구개발(R&D) 센터를 국내로 유치하는 일이다. 아시아에 다국적 기업 본부, 국제 기구가 약 7400개 있고 대부분이 싱가포르, 홍콩에 위치한다. 최근 국제 질서 변화와 함께 이동이 시작됐는데 이를 한국에 유치하면 한국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홍콩에 있는 CNN 아시아 거점을 한국으로 옮겨온다면 이는 굉장히 상징적일 일이다.
-총선 출마를 앞두고 계신다. 지역에서 선출돼야 하는데 본인께서 어떤 점에서 그에 합당하다 보시나
▶겸손해야 하는 문제다. 분명한 것은 새롭고 하나되는 대한민국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란 점이다. 새롭다는 것은 미래를 가장 먼저 만나는 나라를 만들자, 세계 기술 경쟁에서 이겨내자는 뜻이다. 또 살기 좋은 나라가 되지 않고는 하나가 될 수 없다. 결국 민생이다. 일자리, 보육·교육, 주택 이 세 가지 문제가 중요하다.
-이번 국회에서 정쟁이 극단으로 치달았는데 원인과 해법은 무엇일까
▶우선 대통령은 국회를 존중해야 한다. 여당 대표에게는 (야당 대표와) 협상할 여지를 주지 않으면 여당 대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또 야당 대표와 대화 안하면 아무것도 될 게 없다. 대통령도, 의원들도 국민이 선출한 권력이다. 이 둘이 공존해야 한다.
▶맞다. 국력은 경제력이고 경제력은 기술력에서 나온다. 기술력 핵심이 R&D 센터다. 우리나라는 치안도 좋고 날씨도 좋고 국민들 수준도 높다. 글로벌 기업 R&D 센터의 아시아 본부를 우리가 맡을 때도 됐다. 그러려면 북한 리스크도 줄여야겠다. 북한과 대화의 끈을 놓치면 안되는 이유다.
-여야 뿐 아니라 유권자들도 극단으로 나뉘어 싸운데 왜일까
▶중산층 하부토대가 붕괴된 것이다. 일자리가 붕괴되고 빈부격차가 확대되니 분열의 씨앗이 자란다. 결국 허리가 강해야 한다. 축구 경기도 미드필더가 강해야 이기지 않나. 결국 중산층, 중소도시, 중견중소기업, 중도층을 강화해야 하는데 그 핵심은 일자리, 그 중에서도 양질의 일자리다.
그렇다고 제조업을 놓쳐서도 안 된다. 미국이 오늘날 힘든 이유가 러스트벨트(미 제조업 호황을 구가했던 북동부 5대호 주변 공장지대)가 무너져서다. 국내 제조업을 지키려면 한국에 투자한 기업들에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결국 정치권에서도 노력해야겠다. 최근 통계가 있는데 미국과 영국에서 상대당에 대한 비호감도를 조사하니 미국은 80%, 영국은 70%가 나온다. 재미있는 것은 연립정부(연정)를 구성하는 전통이 있는 독일은 그 수치가 30% 아래다. 즉 국민들 사이 증오와 대립을 줄이려면 국회에서 정치 지도자들이 덜 싸워야 한다. 국회에서 지금보다 더 많은 타협, 협상이 이뤄져야 한다.
▶선거제 자체가 선악의 문제는 아니다. 단순 병립형으로 돌아가선 안되고 위성정당도 만들어선 안 된다. 비례대표를 어떻게 뽑을지가 중요한데 결국 좋은 인재들을 어떻게 가려내는지가 중요하다. 여러 정당들과 국민들과 일종의 연대 회의를 만들어 결론을 내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하다. 정책연대가 필요하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경제민주화 담론이나 용혜인 기본소득당 상임대표의 기본소득 개념은 울림이 있지 않나. 그런 담론들을 키워나갈 필요도 있겠다.
▶하나되고 새로운 민주당으로 돌파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정세균·김부겸 두 전 총리님이 화학적으로 빨리 당과 결합이 됐으면 좋겠고 당 외 차원에서는 현 정부를 심판하고 국정대전환을 이룰 연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대의 이유는 결국 국민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민주당은 경제·외교 부문에서 유능함, 민주주의 부문에서 단호함이란 원칙을 갖고 인재를 영입해야 한다. 결국 민주당표 성장·복지 전략이 나와야 한다. 쌍특검'(대장동·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 도입 등에 대한 법률) 국면이 끝나고 내년 선거전에 본격 돌입하면 정책경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화학적 결합 말씀하셨는데 이낙연 전 총리에 대한 생각은
▶지금은 뭉치고 단결해 총선 승리를 이룰 때다. 이 전 총리를 지지했던 의원들은 이 전 총리께서 민주당을 위해 단합하고 백의종군하길 바라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신당을 만들 때가 아니다. 국정대전환을 이뤄야 나라가 바로 선다. 나라를 바로 세우는 차원에서 함께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 신당은 궤도이탈이라 생각한다.
-586세대 쇄신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과거에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가 중요하다. 핀란드의 노키아란 기업은 목재회사에서 출발했지만 휴대폰 제조기업으로 변신해 세계인의 기업으로 떠올랐다. 이후 스마트폰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고 쇠락했지만 최근에는 5G(5세대)기업으로 다시 일어서 AI(인공지능) 시대 핀란드의 새 희망이 되고 있다. 즉 과거에 무엇을 했느냐보다 얼만큼 혁신에 도전하는지, 실력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끝으로 22대 국회에 바라는 점은
▶대통령실과 국회가 서로를 존중하고 대등한 관계를 만들어냈으면 좋겠다. 대통령실이 차기 총리 선출시 국회와 협력할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미국처럼 우리 국회도 좀 더 혁신적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 아울러 상임위원장의 전문성, 협상력도 좀 더 높이는 방안이 필요하겠다.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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