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리부트]'셀프 해고'한 중진 의원이 다시 여의도를 바라보는 이유

박주연 2023. 12. 27.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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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으로 떠나고, 책임이 다시 부르다"
"상식의 목소리가 얼마나 강한지 보여줄 것"
18, 19, 20대 보수 정당 대표 '소신파' 김영우 전 의원,
험지로 꼽히는 서울 동대문 갑에서 정치 복귀

누군에게나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김영우 전 의원의 경우엔 '책임감'이 그랬다. 같은 지역구에서 매번 여유 있게 당선됐고, 소신을 지키는 행보에 당에서는 '상식파', '개혁 보수'로 자리매김했던 그였지만 책임감을 이유로 지난 2019년 불출마를 선언했다.

김영우 전 국회의원이 지난 13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그랬던 김 전 의원이 다시 여의도 복귀를 선언했다. 보수 정당에 험지로 꼽히는 서울 동대문구 갑에서다. '나는 나를 컷오프했다'고 회고하는 김 의원이 다시 여의도 입성을, 그것도 험지에서 선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경제신문은 지난 13일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김 전 의원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국방엔 여야가 없다…양심과 소신에 따를 것"

김 전 의원은 경기 포천·가평에서 내리 3선을 했다. 대표적인 여당 강세 지역이다. 2008년 18대 총선 때부터 41세 나이로 화려하게 여의도에 데뷔하며 20대 총선까지 모두 넉넉한 표 차이로 당선됐다. 보수 정당의 중진의원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현역 시절 당내 '개혁 보수'로 손꼽히던 의원이기도 하다. 당내 개혁 모임 명단엔 항상 그가 있었다. 18대 초선 때는 계파를 아우르는 중도 개혁 초선 모임인 민본21에, 19대 때는 초재선 개혁모임인 아침소리, 20대에는 새누리 혁신모임에 포함됐다.

2016년에는 당론(黨論)을 깨고 원칙에 따라 국정감사에 참여하며 대표적인 당내 개혁파 의원이라는 언론의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당시 새누리당은 이정현 대표가 단식을 강행하는 등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었다. 예정된 국정감사 역시 새누리당이 위원장을 맡은 상임위원회에서는 모두 정지된 상태였다.

지난 2016년 9월 27일 새누리당의 '국감 보이콧' 당론에 맞서 국감 출석의사를 밝혔던 김영우 국회 국방위원장이 27일 오후 국방위원장실에서 여당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김 전 의원이 당시 위원장을 맡았던 국방위원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은 숙고 끝에 국정감사 강행을 선택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그를 말렸지만 김 전 의원은 소신과 양심을 선택했다. 전날 밤 동해상에서 훈련 중이던 헬기가 추락해 조종사와 승무원 3명의 생사를 알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을 국방위 개회의 이유로 들었다. 그는 "국회는 상임위 위주로 운영돼야 하고, 특히 국정감사는 국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라며 "제 양심과 소신이 시키는 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당시 밝혔다.

결국 김 전 의원은 당론을 어기고 국정감사를 위한 전체회의를 주재하게 된다. 당시 여당 의원이 위원장인 상임위 가운데 국감을 위한 회의를 연 것은 국방위가 처음이다. 김 전 의원의 행보를 두고 새누리당은 "책임을 묻겠다"고 했지만 김 전 의원은 "그동안 국방엔 여야가 없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그 말에 책임져야 한다"며 회의장에 입장했다.

 "책임을 지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

당 안팎으로 보수 소신파 중진의원으로 자리매김한 그는 2019년, 21대 총선을 불과 4개월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한다.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기 전 며칠 전부터 잠을 설쳤다. '찻잔 속 태풍'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책임감이 끝끝내 그를 잡았다. '나 하나쯤이야'와 '나 하나라도'를 구분 짓는 차이였다.

김영우 전 의원이 2019년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불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는 당시 느꼈던 감정에 대해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 모두 감옥에 갔고, 두 전직 대통령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받은 정치인으로서 정치적 역사적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다음은 당시 그의 불출마 회견문 중 일부다.

"지금이라도 책임을 지겠다. 이렇게 책임을 지는 일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도 그동안 왜 그리 번민이 있었는지 제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자유한국당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다. 당대표는 추운 겨울에 노천에서 몸을 던져 단식까지 했다. 정당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겠다는 절박함을 국민들께 호소했다.

하지만 모두가 공감하듯이 지금 자유한국당의 모습으로는 국민의 마음을 온전히 얻을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왜 지금까지 국민속에서 함께 하지 못했는가. 국민은 왜 자유한국당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 나라가 총체적으로 무너지는 이 때에 우리 내부에서 혁신을 바라는 목소리가 제지당하거나 막혀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스스로를 깨부수지 않은 채 단순한 정치 기술과 정치 공학, 상대방에 대한 공격적 언어만으로는 국민과의 간격을 메울 수가 없을 것이다.

 책임으로 떠나고, 책임이 다시 부르다

그랬던 그가 다시 정치 복귀를 선언한다. 떠났던 이유와 같다. '책임감'이다.

김 전 의원은 "이젠 상식적인 목소리가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소신 정치, 합리적인 정치, 타협하는 정치가 이뤄지는 국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불출마를 선언한 이후 여의도 바깥에서 느꼈던 여러 소회도 계기가 됐다. 그는 "정치란 나라를 지키고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한 것인데 지금 정치인들은 그 영향력을 자기 기득권을 지키고, 상대방을 비판하는 수단으로만 사용하고 있다"며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정치가 돼버린 것"이라고 했다.

늘어나는 정치권의 막말, 혐오, 분노도 동력이 됐다. 김 전 의원은 "막말 정치, 혐오 정치, 분노를 수단화 시키는 정치를 보며, 이런 상황에서 상식과 책임, 그리고 최소한의 염치가 있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텃밭이 아닌 험지를 선택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김 전 의원은 "3선이란 기득권이 있는 정치인인 내가 편한 곳보단 험지인 동대문에 도전해서 한 석이라도 보태는 게 당과 윤석열 정부의 성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서울 강북에서 중진 의원으로의 역할, 양심과 책임 의식 있는 소신 있는 정치인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영우 전 국회의원이 지난 13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강은구 기자

 학창 시절 보냈던 '험지', "죽을 힘을 다하겠다"

동대문구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기도 해 지역구에 대한 애정도 깊다. 김 전 의원은 동대문에 위치한 경희중학교와 경희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려대 재학 중에도 동대문구에서 지냈다. 과거 수없이 지나쳤던 동네였기에 적극적인 지역공약도 내걸었다.

김 전 의원은 "동대문은 청량리를 중심으로 한 역사적인 교통의 중심지"라며 "청량리역 역세권 환승센터 마무리에 가장 큰 관심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재개발이 활발한 지역 특성에 맞게 동대문을 '살기 좋은 동네'로 가꾸는 것도 목표로 한다. 그는 "전통과 안전 여건과 문화, 교육 시설들을 잘 확보한 주거시설 단지로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하다"며 "서울시민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찾을 수 있는 매력 있는 젊음의 도시가 되도록 도시 자체를 완전히 뒤바꿀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동대문구에 위치한 대규모 시장을 전통과 현대를 모두 아우르는 공간으로 만들 구상도 밝혔다. 그는 "동대문에는 동대문·약령·경동시장과 청과물·수산·풍물시장 등이 몰려 있다"며 "각 시장의 특성을 살려 전통과 현대 문화가 어우러진 곳으로 탈바꿈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기는 선거를 하는 것이 목표다. 김 전 의원은 "지역 당원들이 3번 연속 선거에서 패배하다 보니 이기는 선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며 "죽을 힘을 다해 열심히 해서 이기는 경험을 선물하겠다"고 했다. 인터뷰 전날에도 그는 5개의 지역 일정에 다녀왔다 말했다. 한쪽 눈에는 실핏줄이 선명했다. 

[여의도 리부트]

정치는 왜 이럴까. 왜 작동하지 않을까. 가볍게 정치 뉴스를 보는 사람이나, 무거운 마음으로 주시하는 사람이나 누구나 동감할 문제입니다. 문제가 지속되니 현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2대 총선을 앞둔 지금, 한국경제신문은 '더 나은 정치'를 위해 정치에 몸담은 이들에게 질문합니다. 

박주연 기자 grumpy_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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