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 돌아가는 잼버리 야영지…주민들 마음엔 상처만 남았다
광활한 대지는 습하고 우중충한 공기에 짓눌려 있었다. 흩뿌리는 빗줄기 탓에 육지와 바다의 경계는 쉽게 식별되지 않았다. 4개월 전 스카우트 대원들로 붐볐던 야영지에는 한여름 땡볕을 막으려고 설치한 덩굴터널의 거대한 철제 골조들이 빛바랜 차광막을 얹고서 듬성듬성 박혀 있었다. 정리 작업에 동원된 굴착기와 불도저가 시동을 끈 채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동쪽 방향으로 공사가 진행 중인 흰색 외벽의 글로벌 청소년 리더 센터가 보였다. 잼버리 당시 임시 사용승인을 받아 본부와 병원 등으로 이용되던 곳이다. 축구장 등 보조시설을 갖춰 내년 4월 준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 15일 오전에 찾아간 전북 부안군 하서면 잼버리 쉼터는 한산했다. 국도 30번 도로변에 위치한 이곳에는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야영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있다. 행사 당시 150여 잼버리 참가국의 국기가 펄럭이던 게양대엔 아무것도 없었다. 홍보 전광판도 가동을 멈춘 지 오래였다. 야영지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출입을 통제하는 노란색 테이프가 걸려 있었다.
인적 드문 전망대를 지나 졸음쉼터 화장실 앞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30번 국도를 이용하는 운전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다. 부안 특산물인 바지락죽을 먹으러 군산에서 차를 타고 왔다는 전시연(59)씨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모처럼 여는 대규모 국제행사라고 기대를 많이 했는데, 그렇게 황당하게 끝나버릴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정부 잘못도 큰데 온갖 욕은 전라북도에만 쏟아지니 주민으로서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부안 주민 김아무개(56)씨는 “평소에 이곳을 자주 지나 다니는데, 잼버리 대회 직전까지도 준비가 잘 안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늘 한점 없는 간척지 허허벌판에서 한여름 땡볕에 야영행사를 연다는 게 처음부터 불안했다”고 말했다.
당시 자원봉사자로 나섰던 주민들은 내상이 더 커 보였다. 허정회(62) 부안 성황라이온스 전 회장은 “잘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자원봉사까지 했는데, 남은 건 무능의 낙인과 쓰라린 상처뿐이다. 잼버리의 ‘잼’ 자도 꺼내기 싫다”고 했다. 잼버리 파행으로 경제적 손실을 입은 주민도 만날 수 있었다. 김동기(62)씨는 “야영지 안 문화행사 특설무대 주변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부스를 운영했다. 그런데 중간에 대원들이 떠나면서 1천만원 가까운 손해를 입었다. 한동안 잼버리 때문에 전라북도 사람들 전체가 죄인이 된 듯한 분위기여서 피해를 호소할 곳도 없어 답답했다”고 털어놓았다.
부안 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 안에 설치됐던 잼버리조직위원회는 행사가 끝나고 4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잼버리 파행에 따른 감사원 감사가 한창인데, 그동안 감사 기한이 2차례나 연장됐다. 야영지에 설치됐던 샤워장, 화장실 등의 가설물은 행사가 끝난 8월 말에 일찌감치 철거가 완료됐다.
행사 터를 농업용지로 되돌려놓기 위한 작업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야영장에서 배출되는 오수를 모아 정화하는 임시하수처리장 3곳은 철거해 평탄화 작업을 마쳤고, 빗물 배수를 위해 설치한 간이펌프장도 원상복구했다. 상수관로(26㎞)와 하수관로(31㎞)는 아직까지 철거 작업이 진행 중이다. 덩굴터널용 철조, 바닥에 깔았던 야자매트(13㎞) 등은 재활용을 위해 14개 시·군 및 농어촌공사 등을 상대로 수요조사를 벌였다.
내년에는 2023년도 예산 결산, 백서 발간, 사업별 정산 작업 등이 이뤄진다. 내년 8월쯤 청산 작업을 마무리할 예정이었으나 소송 등의 변수가 있어 미뤄질 수도 있다. 조직위에는 전체 직원 125명 가운데 50여명이 남아 있고, 나머지는 원래 직장으로 복귀하거나 기간제 근무 기간이 끝나 퇴직했다. 올해 안에 20명이 추가로 복귀할 예정이며, 마무리 작업을 위해 최소 인력이 남게 된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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