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을 보내며] 지나온 길 돌아보고, 가야할 길 내다보다
섬지역·민간인 통제구역 특수성
1960년대 풍경들 고스란히 간직
北 한눈에 뵈는 화개산 전망대서
실향민 생각하며 먹먹함 느끼고
새롭게 단장 마친 대룡시장에선
문득 농민들에 대한 걱정 깊어져
무장애 여행작가로 살아가는 삶
같은 어려움 지닌 이들을 위해서
따라올 수 있는 길 내며 나아갈것
가는 해를 배웅하고 오는 해를 마중하는 연말연시. 일년을 돌아보고 잘한 것은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여행지에서 털어버리는 건 어떨까. 12월31일에 해넘이 명소를 찾는 건 많은 사람에게 즐거운 일이지만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겐 이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몰리는 장소에선 자칫하면 사고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해넘이 여행도 조금은 일찍 떠났다.
한해의 끝에서 인천 강화 교동도로 향했다. 교동도는 민간인 통제구역이어서 방문할 때 신분 확인이 이뤄진다. 겁먹을 필욘 없다. 입구에서 운전자 신분증만 보여주면 된다. 황해도 연백군과 휴전선을 경계로 마주하고 있는 섬 교동도. 한국전쟁 이후 연백지역 출신 실향민들은 고향과 가까운 교동도에 터를 잡고 통일될 날을 기다리며 살아갔다.
교동도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과 민간인 통제구역이라는 특수성이 합쳐져 1960년대 풍경을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그 덕에 방송을 탄 후 골목 여행지로 유명해졌다. 최근에는 화개산을 개간해 만든 화개정원과 강화에 사는 저어새의 긴 부리를 본떠 만든 전망대가 교동도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섬 동쪽에 있는 화개산은 해발 259m로 낮지만 고려 말 문신 이색은 이곳을 전국 8대 명산 중 하나로 꼽았단다. 맑은 날 정상에 오르면 북녘땅인 연백평야, 예성강 하구, 개성 송악산까지 보인다. 화개산 주변엔 대룡시장·고구저수지·연산군유배지 등 교동도의 주요 관광지가 모여 있다.
화개산 전망대로 올라가려면 모노레일을 타거나 화개정원을 통해 걸어가야 한다. 모노레일을 타기 위해 표를 끊으려고 하니 휠체어석이 따로 없어 휠체어를 아래에 두고 가야 한단다. 휠체어는 장애인의 다리 역할을 한다. 다리를 떼어놓고 전망대까지 올라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어 포기하려는 찰나 시설 관계자가 입장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며 시설 차량을 타고 출발했다. 우리 일행도 그 차량을 따라 올라갔다.
차를 타고 화개산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길은 굽이친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구름은 저만치 발아래에 있고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함 속 서늘한 기운만이 감돈다. 이 높은 산에 길을 내고 전망대를 만들었다니 인간의 과학 기술이 새삼 대단하다. 1층 야외 테라스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 걸어 올라온 사람들이 잠시 쉬어 가기 좋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 스카이워크로 갔다. 바닥 아래가 훤히 보이는 강화유리로 만들어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다. 난간도 유리로 만든 덕에 교동도 풍경은 물론, 휴전선 너머 연백평야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에 북한이 있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다. 지구촌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 한반도는 언제쯤 하나가 돼 살아갈 수 있을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고향을 지척에 두고 갈 수 없는 실향민의 심정이 어쩌면 휠체어 탄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근사한 여행지를 코앞에 두고도 턱이나 계단 때문에 접근하지 못해 속상할 때가 허다하다.
대룡시장으로 발길을 이어갔다. 새롭게 단장을 마친 시장엔 휠체어 탄 여행객도 접근할 수 있는 곳이 많아졌다. 대룡시장은 1960년대 시대극 속에서나 볼 법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먼저 교동이발관을 찾았다. 2018년 KBS 1TV ‘사랑의 가족’ 촬영차 인연을 맺은 이발 장인 할아버지께 인사를 하기 위해서다. 인자한 미소로 반겨주실 것을 기대했건만, 작년 이맘때 영원한 안식처로 이사하셨다고 한다. 이제나저제나 고향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교동도를 떠나지 못한 할아버지. 할아버지 자녀가 식당으로 개조해 운영하는 교동이발관엔 그를 기억하는 여행객이 종종 찾아온다고 한다. 그중에 나도 포함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여행을 시작한다. 그 끝엔 안식처가 있다.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시장 구석구석을 둘러본다. 고소한 떡 냄새에 참새가 된 듯 방앗간 앞으로 간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은 좌판에 펼쳐놓기 무섭게 팔려나간다. 백설기·콩떡·강아지떡까지 각양각색 떡은 보기만 해도 배를 부르게 한다. 교동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강아지떡엔 재미있으면서도 안타까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연백평야에서 생산된 곡물을 수탈하기 위해 인절미와 술을 만들지 못하게 했다. 주민들은 인절미에 팥을 넣고 콩고물을 잔뜩 묻혀 ‘갓 낳은 강아지’라고 일본군을 속였다고 전해진다. 고소한 콩고물에 쫄깃한 인절미, 달곰한 팥소까지 ‘안 먹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먹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십분 이해가는 맛이었다.
강아지떡의 주재료인 ‘교동섬쌀’은 밥맛 좋기로 소문났다. 귀한 쌀로 만든 떡을 먹고 나니 문득 농민들에 대한 걱정이 몰려온다. 한국인은 안부를 전할 때도 “식사하셨어요?”라고 묻고, “다음에 밥 한끼 먹죠”라며 약속을 정하는 ‘밥심’으로 사는 민족이 아니던가. 강아지 모양으로 떡까지 만들어 지켰던 우리쌀이 해가 갈수록 외면받으며 농민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나 올해는 이상기후에 가축전염병까지 농민이 눈물 흘릴 일이 많았다. 지극정성으로 키워낸 자식 같은 농작물과 소가 죽어가는 것을 보는 심정이 오죽했으랴.
농촌문제는 비단 농작물에만 있지 않다. 농촌의 열악한 의료 환경과 정비되지 않은 길, 부족한 대중교통은 ‘장애인은 나라님 옆에서 살아야 한다’는 웃지 못할 말까지 나오게 한다. 의료 개혁이다 뭐다 세상은 시끄럽지만 장애인이, 노인이 살기 좋은 농촌이 되기까지 갈 길은 멀어만 보인다.
강아지떡을 먹으며 언 몸을 녹이러 다방을 찾아 휠체어를 움직인다. 떡집 바로 앞에도 다방이 있지만 휠체어로는 아무 곳에나 들어갈 수 없다. 고작 10㎝짜리 문턱 때문에 다시 수십미터를 헤맨다. 다행히 문턱이 없는 새로 생긴 다방을 찾았다. 옛것을 좋아하지만 이럴 땐 어찌할 방법이 없다. 다방 한편에 자리를 잡고 달걀을 동동 띄운 따끈한 쌍화차 한잔을 주문했다. 추운 날 여행하느라 떨어진 기력을 올려주고 옛 추억까지 떠올리게 하는 덴 쌍화차 만한 게 없다. 다방은 차를 파는 곳을 넘어 사람 사는 얘기가 오가는 사랑방 역할도 했다. 사랑을 속삭이는 커플, 아이와 놀러 온 가족의 대화를 들으며 나의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가족에게 편하다는 이유로 막 대하진 않았는지, 오래된 친구에겐 마음을 썼는지, 어려운 이웃을 도왔는지…. 새해는 이들에게 안부 메시지를 보내는 걸로 시작해야겠다.
하루 끝에 걸린 저녁 해가 서해에 잠길 때, 하늘엔 주홍빛 조명이 켜진다. 태양보다 노을이 아름다운 건 낮과 밤 그사이에서 한박자 쉬어가는 시간을 주기 때문 아닐까.
12월은 한해 동안 걸어온 발자국을 뒤돌아보고 걸어갈 길을 점검하는 시기다. 무장애 여행작가로 살며 나와 같은 어려움을 지닌 사람들이 따라올 수 있는 길을 내고 있다. 때로는 지치기도 하지만, 사명감은 다시 나를 여행지로 이끈다. 새로운 해를 마중하는 가슴은 뜨겁게 차오른다.
글·사진=전윤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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