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리포트] '마약 잡는 전자코 개발' 고범석 일리아스AI 대표
"후각 정보 파는 세계적 센트테크 목표"
이미지와 소리를 분류하는 인공지능(AI)이 냄새도 맡을 수 있을까. 냄새는 곧 화학적 성분으로 구성된 만큼 AI가 이를 분석할 수 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여기에 착안해 신생기업(스타트업) 일리아스AI를 지난해 창업한 고범석(52) 대표는 후각 분석 AI, 즉 전자코 개발에 도전장을 던졌다. 이 업체처럼 후각 기술을 개발하는 곳을 센트테크(scent-tech)라고 부른다.
그가 도전장을 던진 전자코는 다양한 분야에 쓰일 수 있다. 국내 반입이 늘고 있는 마약류부터 폭발물 탐지, 반입 금지된 각종 육가공품 확인까지 사람과 탐지견의 한계를 뛰어넘어 활용할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전자코의 전 세계 시장 규모는 2026년 3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고 대표를 만나 전자코의 세계에 대해 알아봤다.
잘나가는 콘솔 게임 개발자에서 변신
원래 고 대표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였다. 서경대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하고 경원대에서 전자계산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대상정보기술 연구소에서 1997년부터 5년간 병역특례 연구요원으로 일하며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이후 SK텔레콤에서 투자한 미국 나스닥 상장기업 와이더덴으로 이직했다.
그가 와이더덴에서 한 일은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볼 수 있는 '네이트 에어' 서비스 개발이다. 2000년대 초반 네이트 에어는 월 21억 원 매출을 올릴 만큼 잘나가는 사업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일을 해보고 싶어 사직서를 냈다.
그가 하고 싶었던 것은 게임 개발이었다. 어려서부터 일본 소니의 가정용 게임기(콘솔) '플레이스테이션(PS)' 게임을 좋아했던 그는 2004년 자이네스 창업 후 세계 시장을 겨냥한 'PS4' 게임 개발에 뛰어들어 액션 게임 '엔더 오브 파이어' 등 다양한 게임을 내놓았다. "처음부터 세계 시장에 뛰어들려면 온라인 게임이 아닌 콘솔 게임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PS4, 마이크로소프트(MS)의 '엑스박스', 일본 닌텐도 게임기 등 2, 3년간 5~6종의 콘솔 게임을 개발했죠. 그때 개발한 게임 덕분에 지금도 돈을 벌어요. 음악처럼 저작권 수익이 북미와 유럽에서 계속 들어오죠."
온라인이나 휴대기기용(모바일) 게임을 개발하지 않은 이유는 현금 장사라고 봤기 때문이다. "온라인과 모바일 게임은 진정한 게임의 재미보다 이용자가 돈을 많이 써서 좋은 아이템을 사게 만드는 현금 장사여서 싫었어요. 그래서 모 게임업체에서 모바일 게임을 개발해 달라고 찾아왔는데 거절했죠. 요즘은 콘솔 게임도 현금 장사를 따라가고 있어서 씁쓸해요."
인텔 제의로 시작한 전자코
콘솔 게임 개발을 그만둔 것은 많은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임으로 돈 벌려면 광고 등 마케팅 비용을 많이 써야 해요. 그러지 못해 게임으로 큰돈을 벌지 못했어요."
이후 방향을 튼 것이 얼굴인식 소프트웨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면서 공항이나 건물 등의 출입 관리가 엄격해졌죠. 여기 맞춰 2020년 얼굴을 인식하고 체온을 확인해 통과시키는 'K게이트' 시스템을 개발했죠. K게이트 시스템은 지방자치단체 20여 곳에 팔려 체육센터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설치됐어요. 하지만 경쟁업체들이 속속 등장해 유사한 장치를 내놓으면서 변별력이 떨어졌고 가격 싸움으로 변질됐어요."
신사업을 찾던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미국 반도체업체 인텔이었다. 고 대표는 인텔의 주요 고객이었다. "K게이트에 인텔이 개발한 영상인식 카메라와 부품 등을 사용하면서 인텔의 주요 고객인 골드 파트너가 됐어요. 지금은 인텔이 영상인식 사업을 포기했죠."
양쪽 모두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에 2021년 인텔에서 새로 개발 중인 반도체 정보를 알려줬다. "인텔이 냄새를 인식할 수 있는 미세 신경회로 반도체 '로이히' 개발 소식을 전해줬어요. 로이히칩은 10여 종의 냄새를 구분할 수 있죠. 현재 2단계 칩을 개발 중인데 여기 참여하면서 지금의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죠. 거래처 덕분에 신사업을 찾은 셈이죠."
인텔의 제의는 서로에게 좋은 승부수였다. 고 대표는 차별화된 신사업을 찾았고 인텔은 미래 고객을 확보했다.
끈기로 ETRI의 문을 열다
또 다른 중요 후원자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다. "자료 조사 중 ETRI에서 후각 기술을 연구하는 것을 알게 돼 무작정 찾아갔어요."
처음에 고 대표를 믿지 않았던 ETRI는 그의 끈기에 두 손을 들었다. "듣도 보도 못한 회사가 찾아가 사업을 하자니 믿지 않았어요. 6개월 동안 계속 찾아가 설득한 끝에 결국 같이 사업을 하게 됐죠."
양측이 함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서 성과가 크게 개선됐다. "필로폰 탐지율은 80%에서 90%, 대마초 탐지율은 90%에서 99%까지 올라갔어요."
이 같은 성과에 만족한 ETRI는 한발 더 나아가 연구소 기업을 제안했다. 연구소 기업은 ETRI가 기술을 제공하고 ETRI의 자회사 ETRI홀딩스에서 자본을 투자해 만드는 회사다. 대신 ETRI가 회사 지분의 10%를 갖는다.
그렇게 해서 지난해 12월 직원 9명의 일리아스AI가 탄생했다. "자이네스는 따로 운영하면서 일리아스AI를 설립했죠. K게이트 사업과 기술팀을 자이네스에서 일리아스AI로 옮겼어요."
연간 탐지량 1%, 마약 탐지의 한계
고 대표가 우선 주력하는 것은 사람과 탐지견만으로 한계가 있는 마약 탐지다. "경찰청에 따르면 공항에서 1년 동안 찾아낸 마약류가 700kg입니다. 그런데 국내 들어온 마약류의 1%도 안 된다네요."
가장 심각한 것은 국제특송(EMS)으로 들어오는 마약이다. "미국이나 한국 모두 우편으로 마약류가 많이 들어오는데 일일이 찾아내기 힘들다더군요."
탐지견은 마약을 잘 찾지만 하루 활동량이 제한돼 있다. "탐지견은 30분 일하면 두 시간 이상 쉬어야 해요. 마약 탐지견도 국내 30마리뿐이죠."
고 대표가 개발하는 전자코는 활동에 제약이 없다. "사람이나 탐지견과 달리 전자코는 24시간 가동할 수 있어요. 1차로 전자코가 확인하고 수상하면 전문인력이 투입돼 세밀하게 조사하는 방식으로 공조하면 마약 탐지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죠."
전자코 원리는 간단하다. 탐지기가 포집한 공기를 AI 소프트웨어로 분석해 특정 화학 성분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때 마약류 등 특정 성분을 걸러 내려면 데이터가 중요하다.
여기서 ETRI의 존재가 빛난다. 마약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민간 기업은 마약 데이터를 얻을 수 없어요. ETRI는 국가기관이어서 경찰청, 식품의약품안전처, 관세청 등으로부터 마약 데이터를 받을 수 있죠."
터널형과 탐지기형 등 두 가지 전자코 개발
고 대표가 개발하는 전자코는 두 가지다. 사람이 터널처럼 생긴 금속 통을 지나면 자동으로 마약을 찾아내는 터널형과 검색 요원이 손에 들고 사람의 몸을 훑는 탐지기 형태다. "터널형은 2억 원, 탐지기형은 2,000만 원에 판매할 생각입니다."
탐지기는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에서 실시한 혁신제품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동상을 받았다. "로봇 본체에 연결된 탐지기를 몸 근처에 가져가면 공기를 빨아들여 화학 성분을 분석해요. 일종의 후각 정보 분석 로봇이죠. 필로폰 90%, 대마초 99%를 찾아내요."
현재 개발 중인 이 장치는 인천국제공항, 김해공항과 김해항만,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공항과 내년 하반기 현장 시험을 위한 실증 사업에 투입된다. "로봇 본체와 탐지기가 내년 10월에 나올 예정입니다."
특히 마약 때문에 골치를 앓는 미국에서 이 장치에 관심이 많다. "최근 미국 페어팩스에서 열린 투자 설명회에 참석했는데 정부 관계자들이 세금 등 각종 혜택을 줄 테니 미국에 사무실을 내라고 제안했어요."
이에 고 대표는 내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전자전시회 CES에 나간 뒤 2025년 미국 법인 설립을 검토 중이다. "내년 6월부터 미국 법인 설립을 준비할 계획입니다."
아직까지 마약 탐지 등 보안 분야에서 경쟁업체는 없다. "수면용 디지털 치료제로 후각 기술을 개발하는 국내 스타트업이나 냄새 인식 기술을 개발하는 미국 오스모 등이 있는데 마약 데이터 확보 등의 한계로 보안 분야에 뛰어든 경쟁사는 아직 없어요."
암도 찾아내는 전자코
고 대표가 생각하는 전자코의 미래는 밝다. 마약류 탐지에 그치지 않고 환경 오염, 폭발물, 부패 음식 등을 찾아내는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고 대표는 4가지 서로 다른 감지기(센서) 54개를 로봇에 장착한다. "센서 54개가 공기, 온도, 습도 등을 측정한 뒤 사전 기계 학습한 AI로 성분을 분석해요."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암 진단이다. 고 대표는 전립선암과 폐암을 진단하는 전자코도 개발하고 있다. "전립선암과 폐암에 걸리면 몸에서 사람이 알기 힘든 냄새가 나요. 기계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 확보를 위해 연세대 원주 미래캠퍼스, 원주 세브란스 병원과 손잡고 관련 기술을 공동 개발 중입니다."
군사용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탐지기를 소형화해서 병사나 장갑차량 등에 장착하면 독가스 등을 탐지할 수 있어요."
궁극적으로 고 대표가 지향하는 것은 냄새 정보 사업이다. "후각 데이터 사업이 목적이죠. 탐지기로 포집한 각종 냄새 정보를 공기청정기, 냉장고 등 전자제품을 만드는 업체들에 팔 수 있어요. 탐지기는 전자코 기술을 알리기 위한 장치죠. 이를 통해 세계적인 센트테크로 거듭날 생각입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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