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神과 정령이 노니는… 2000년 전 남인도 미술, 첫 한국 나들이
불룩한 배를 내민 남성 신(神)이 왼손을 허리춤에 받치고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연꽃 두 송이를 엎어놓은 형태의 모자에선 동전이 물기둥처럼 쏟아져 나오고, 남자는 이 동전 기둥을 오른손으로 받쳐 들고 의기양양하게 서 있다. 3세기 말 남인도에서 만든 석회암 조각상의 이름은 ‘동전을 쏟아내는 연꽃 모자를 쓴 약샤’. 일찍이 국제교역으로 부를 축적한 남인도인들은 숲속의 정령이 풍요를 가져와 준다고 믿었는데, 남성형 신은 ‘약샤’, 여성은 ‘약시’라 불렀다.
상상력 가득한 2000년 전 남인도 미술이 한국에 왔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 이야기’는 끓어오르듯 뜨겁고 활기찬 나라, 남인도에서 온 생명력 넘치는 신들과 석가모니 이야기를 소개한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올가을 열렸던 ‘나무와 뱀: 인도의 초기 불교미술’ 전시를 친근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서 재구성했다. 박물관은 “인도의 불교미술은 그동안 간다라, 마투라 같은 북인도 미술을 중심으로 소개됐고 인도 데칸고원 동남부 지역에 해당하는 남인도 미술이 국내에 소개되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뉴델리국립박물관 등 인도 12개 기관을 비롯해 영국·독일·미국 등 4국 18개 기관의 소장품이 출품됐다. 발굴 후 한 번도 인도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던 유물도 대거 포함됐다.
기원전 5세기 인도 북부에서 태어난 석가모니의 가르침에서 시작된 불교가 남인도에 전해진 것은 기원전 3세기 중엽.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왕이 인도 전역에 석가모니의 사리를 보내 스투파(불교에서 부처나 스님의 사리를 안치하는 ‘탑’을 뜻하는 인도의 옛말)를 세우고 안치하게 했을 때다. 일년 내내 따뜻하고 비가 많이 내리는 남인도에선 불교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자연의 정령과 관련된 온갖 신들의 이야기가 가득했고, 이러한 남인도 고유의 신앙에 불교가 자연스럽게 스며들면서 활력을 불어넣는 과정이 펼쳐진다.
출품작 97점 중 절반이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 무렵 남인도에 세워진 스투파를 장식하던 조각이다. 풍요로운 자연이 있었던 남인도인들은 불교가 전해진 이후에도 자연과 생명의 상징을 스투파 조각 장식에 사용했다. 생산과 풍요의 신 락슈미는 풍만한 몸매를 드러낸 아름다운 여인 조각상으로 표현했고, 악어 주둥이에 코끼리 코, 달팽이처럼 말린 꼬리를 지닌 전설 속 동물 마카라는 스투파 입구를 지키는 모습으로 불교 안으로 들어왔다.
전시장엔 스투파의 조각들이 숲을 이루면서 서 있다. 싱그러운 초록빛 영상이 어우러져 관람객들을 2000년 전 남인도의 대자연 숲으로 이끈다. ‘동전을 쏟아내는 연꽃 모자를 쓴 약샤’ 조각상은 녹색 동전이 우수수 쏟아지는 영상과 함께 전시해 입체감을 더했다. 부조 ‘사리함을 옮기는 코끼리’는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왕이 갠지스강 유역의 스투파 8곳에 봉안됐던 석가모니의 사리를 꺼내 인도 전역에 전파하고 8만4000개의 스투파를 세우는 과정을 보여준다. 피프라와 스투파에서 출토된 사리, 아소카왕이 사리를 다시 나눌 때 넣었던 보석도 볼거리다. 내년 4월 1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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