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집중력의 시대… 이제야 모두 명상을 말한다”
40년간 미국 명상 확산 이끈 존 카밧진 명예교수 인터뷰
지금은 세계적 명사들과 주류 엘리트의 일상이 된 명상. 그러나 불과 40~50년 전만 해도 명상은 히피나 하는 ‘미친 짓’ 취급을 받았다. 사회적 외면에도 불구하고 명상과 의학·과학 접목에 앞장선 대표적 선구자가 존 카밧진(79) 박사다. MIT에서 분자생물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979년 매사추세츠 의과대학에 ‘마음 챙김에 근거한 스트레스 완화(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MBSR)’ 8주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이 프로그램의 성공은 명상 확산에 큰 기여를 했다. 카밧진 박사는 “마음 챙김에 근거한 스트레스 완화에 대한 아이디어는 고대 불교 명상 수행법에서 ‘불교 없이’ 의학 및 건강관리의 주류로 가져온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유사 종교’ 취급을 받고 일자리를 걱정하던 시절부터 최근의 세계적 명상 붐까지 지켜본 살아있는 증인이자 역사인 카밧진 박사를 지난 15일 줌으로 인터뷰했다.
-박사님이 명상을 시작하던 1960~70년대엔 명상을 ‘수정 구슬 쳐다보기’나 점성술처럼 여겼다지요. 50여 년이 지나 세계적으로 명상 붐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나요.
“제가 1979년 MBSR 클리닉을 시작했을 때는 모두가 ‘미쳤다’ ‘제정신 아니다’라고 했어요. 제가 MIT에서 노벨상 수상자(살바도르 루리아) 교수 밑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덕분에 ‘그래도 뭔가 있겠지. 어떻게 되는지나 보자’는 생각들이었죠. 그렇지만 이제 명상은 부두교(사이비 종교)나 뉴에이지 광신도가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지요. 많은 사람이 노력한 덕분입니다. 사람들은 집중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현대는 스마트폰을 비롯해 주의를 기울이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알아차림으로 가는 문입니다.”
-명상은 어떻게 처음 접하게 됐나요.
“저는 마음(mind)을 공부하고 싶어 MIT에 갔어요. 분자생물학을 전공한 것도 마음을 연구하기 위해서였죠. 1960년대는 혁명 시대였고, 당시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에는 세계적 명상가와 요가 지도자가 몰려들었어요. 제가 MIT 입학한 첫해에 필립 카플로라는 선사(禪師)의 명상 강연을 들었어요. 저는 그날 밤 명상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있어요. 1965년, 스물한 살 때였습니다.”
-첫 명상의 느낌을 기억하나요.
“말로 표현하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냥 몸을 바라보고 몸을 체험하고 마음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어요. 기본적으로는 호흡을 알아차리고 다른 모든 것은 놓아버리는 것이었어요. 알아차림, 순수한 알아차림이었어요. 그 경험을 통해 ‘아, 지금까지 내가 찾던 것이 이것이구나’ 하고 느꼈어요.”
-그 무렵 한국의 숭산 스님도 만났지요.
“숭산 스님은 정말 강력했습니다. 스님과 함께 있으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스님은 ‘나는 무엇이냐(What am I)?’ 묻고는 ‘모른다(Don’t know)’라고 말씀하셨어요. 모른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이죠. 숭산 스님은 환상적이고 창의적이셨어요.”
-명상을 환자 치료에 접목한 계기가 있나요.
“저는 일자리가 필요했어요. 명상과 요가에 빠지면서 과학자로서 경력은 별로 없었고 매사추세츠 의과대학 해부학 교실에서 일하게 됐죠. 10년 동안 ‘진짜 내 직업은 무엇일까’ 생각했죠. 그렇게 지내던 중 의사들에게 물었어요. ‘환자 몇 퍼센트에게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시나요?’ 의사들은 15~20%라고 하더군요. 나머지 환자들은 저절로 낫거나 절대 나아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의학적으로 더 이상 도울 방법을 모르는 환자를 돌보는 클리닉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물었어요. 통증 클리닉, 정형외과 의사 세 명이 동의해줘서 병원에 제안서를 제출했더니 ‘그래, 우리가 잃을 게 뭐 있겠어?’ 하며 허락해줬어요. 그것도 일주일에 이틀만. 설문지를 만들어서 환자를 조사했어요. 증상, 통증, 고통, 스트레스 등등을 물어서 기록했죠. 그런데 8주 과정의 MBSR을 거치면서 환자들 가운데 통증과 우울증이 가라앉는 경우가 나왔어요. 8년 동안 고통받던 사람들이 8주 만에 나아진 거죠. 마법이 아닌데 마법처럼 보였죠.”
-MBSR로 도움을 받은 환자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나요.
“제 첫 비서가 만성 통증 환자였어요. 응급실에서 ‘두통이 너무 심한 환자가 있다’며 저를 호출했어요. 달려가 그녀에게 호흡하는 법을 알려줬어요. 30~45분쯤 지났을까, 천천히 두통이 사라졌지요. 몇 년 동안 두통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했어요. 그 일을 계기로 그녀를 비서로 채용해 거의 20년간 함께 일했어요.”
-인간은 ‘지금, 여기’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 우울, 걱정을 겪는다고 합니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종(種)만의 특징인가요.
“문명이 생기기 전, 수렵과 채집을 할 땐 인간도 매우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자연과 밀접하게 접촉해야 했어요. 자칫 먹이를 사냥하다가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문명이 발달하고 분업화하면서 사람들은 더 작은 정신 공간에 갇혀 몸과 접촉을 잃게 됐어요.”
-과거 ‘지구는 병들었는데, 지구를 입원시킬 만큼 큰 병원은 없다. 그래서 명상을 한다’고 하셨지요.
“지구 전체를 수용할 만큼 큰 병원이 하나 있긴 있어요. 그 병원 이름은 사람 마음입니다. 인간의 인식은 충분히 커서 지구 전체를 담을 수 있습니다.”
-명상을 만병통치약처럼 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말도 안 됩니다. 많은 정신적 문제는 사실은 사회에서 오는 것입니다. 전쟁, 알코올중독, 가정 폭력 트라우마 같은 것이죠. 명상, 마음 챙김이 모든 삶의 문제에 해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실수입니다.”
-그래도 불안, 우울, 불면증 등에 명상이 도움 되지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결과에 집착하면 명상은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당장 ‘기분이 좋아졌으면’ ‘두통이 없어졌으면’ ‘통증이 없어졌으면’ 원하지요. 그런데 원할수록 안 이뤄집니다. 명상은 아무것도 얻으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알아차리는 것이죠. 명상을 하면서 문제에 대한 통찰력을 갖게 되면 문제도 사라지고 고통도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마음 챙김은 당신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본성을 순간순간 인식하는 것입니다.”
-곧 한국에서 번역 출간할 책 ‘내 인생에 마음 챙김이 필요한 순간’(불광출판사)에는 ‘잠에서 깬 후 바로 침대에서 나가지 말라’는 내용도 있더군요.
“잠에서 깬 후 바로 침대에서 나가지 말라는 것은 ‘완전히 깨어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5분이나 10분만 더 침대에 머물러보세요. 누워서 손, 발, 호흡을 알아차리면서 온전히 깨어나는 겁니다. 샤워할 때에도 다른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샤워할 때에도 마음 챙김을 해보세요.”
-명상은 나이가 들수록 유용한가요?
“글쎄요, 숨만 쉬고 있으면 될 것 같아요.(웃음) 어린이들은 주의를 기울이게 하기가 어렵지만 순수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현재 순간에 더 집중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민감합니다. 어린이들에게 평소 ‘너는 이대로 괜찮아. 자신을 비판할 필요 없어’라고 알려주는 것은 좋은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명상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권할 말씀 부탁합니다.
“일단 명상을 시작하세요. 그리고 포기하지 마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거예요. 불교에서는 당신이 이미 부처이기 때문에 부처가 될 필요가 없다고 하죠. 당신의 진정한 본성은 이미 깨어있습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생각을 멈추려고 할 필요 없습니다. 일어나는 생각은 내버려둔 채 알아차리면 됩니다. 마음 챙김은 무한합니다. 당신의 생각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실제 당신이 아닙니다. 침대에서든, 쿠션에서든 그리고 걷기 명상, 달리기 명상, 요가 명상 무엇이든지 현재 순간을 즐기세요. 호흡을 즐기고, 몸을 즐기세요. 그래서 살아있고 깨어있고 체화하고 그런 것을 당신의 거처로 삼는 것처럼 멋진 순간은 없습니다. 당신의 주소를 ‘깨어있음’, ‘알아차림’으로 삼으세요. 그러면 당신은 항상 그 집(알아차림)에 머물게 됩니다.”
[존 카밧진 명예교수]
사이비 취급 받던 명상… ‘마음 챙김’으로 과학 접목
매사추세츠 대학 의과대학 명예교수이며 과학자, 작가, 명상가이다.
1944년 뉴욕에서 병리학자 아버지와 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과학과 마음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그는 20대부터 숭산 스님, 틱낫한 스님 등에게 대승불교와 초기 불교의 수행법을 익혔다. 그가 개발한 MBSR은 고대부터 이어져 온 명상에서 종교적 색채를 배제하고 의학·과학과 접목해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것. 전 세계 의료 기관 800곳 등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기업, 학교, 군대,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의 명상 프로그램이 MBSR을 참고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한국MBSR연구소(소장 안희영)가 마음 챙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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