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46] 사형수의 식단과 인권 존중 사회
야채수프는 따뜻하다는 것이 유일한 장점인데 다 식어버렸으니 오늘은 그나마도 운이 없는 날이다. 생선이라고 해봐야 살점보다 가시가 더 많다. 얼마나 오래 끓여대는지 살점은 모두 떨어져 나가 형체를 분간할 수 없고 머리와 꼬리만 간신히 남아 있기 일쑤다. 죽은 식어버려 한 덩어리로 뭉쳐 있다. 말이 죽이지, 노르스름한 무슨 풀 같은 것을 썰어 넣은 것으로 어쨌든 끓여서 삼백 그램만 되면 그걸로 족했다. 죽이든 죽이 아니든, 죽이라고 하면 그만인 것이다.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중에서
“식사하셨어요?”는 우리 사회의 흔한 인사말이다. 품 떠난 자식의 안부가 궁금한 부모는 “밥은 먹고 다니냐?”고 묻는다. 친구들은 “언제 밥이나 먹자”며 헤어지기도 한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지만 “지금 목구멍에 밥이 넘어가냐?”며 화를 낼 때도 있다. 배고프던 시절의 잔재인 ‘밥의 정서’는 지금도 작동한다.
207명의 목숨을 빼앗은 미집행 사형수 59명과 일반 수감자들이 매일 떡갈비나 돼지불고기 등으로 차린 밥상을 받는다. 교도소에서 먹는 밥이 맛있을까만, 땀 흘려 일하고 김밥,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도 많다 보니 구치소의 영양 식단이 진수성찬처럼 보이기도 한다. 2023년 기준, 재소자 1인당 연간 관리 비용은 3100만원이다.
스탈린 시대, 강제 노동 수용소에 갇힌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늘 춥고 배고프다. 영하 41도가 되지 않는 한 매일 10시간 고된 노동을 하는 그는 밥 먹는 시간을 고대하지만, 음식은 양도 적고 쓰레기라 불러도 될 만큼 처참하다. 그래도 슈호프는 평소보다 죽 한 그릇을 더 먹은 날, 행복감을 느끼며 잠이 든다.
사람은 경험하고 실수하고 배우고 성장한다. 가능성을 열어놓고 기회를 주는 일, 인간의 기본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지속돼야 한다. 그러나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권리가 중시되고, 실업급여를 받으려고 취업을 미루고, 군 복무 한 사람보다 병역의무를 거부한 인권 운동가의 말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시대다. 보통 사람들은 남을 존중할 때 자신도 존중받는다는 원칙, 정직하게 산 만큼 보상받고 죄지은 만큼 벌 받는다는 상식이 통용되는 세상을 바란다. 의무와 책임을 다한 사람들, 성실한 사람이 손해 보는 기분이 들지 않는 사회야말로 인권이 살아 있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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