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촌놈’ 나달의 이별 방식

박강현 기자 2023. 12. 2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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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으로 1년 가까이 코트를 떠나 있었던 스페인의 라파엘 나달이 지난 1일 다음 달 호주 브리즈번에서 테니스 투어에 복귀한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올해 1월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오픈 대회 첫날 경기에서 승리한 뒤 기뻐하는 모습. /AFP 연합뉴스

스페인이 배출한 남자 테니스 전설 라파엘 나달(37)이 다음 주 호주 브리즈번 대회를 통해 약 1년 만에 돌아온다. 지난해 4대 메이저 대회(호주오픈·프랑스오픈·윔블던·US오픈) 호주·프랑스오픈을 석권했던 그는 올해 1월부터 허리·엉덩이 부상 등에 시달리며 2023시즌을 사실상 통째로 날렸다. 원래 부상 후유증은 6~8주 정도 갈 것으로 예측됐지만, 재활이 길어졌다. 거스를 수 없는 게 세월이다.

나달이 자리를 비운 사이 현역 세계 1위이자 ‘영원한 라이벌’ 노바크 조코비치(36·세르비아)는 세월을 만났다. 그는 호주·프랑스·US오픈을 차례대로 제패하며 나달(22회)을 제치고 메이저 대회 최다 우승 기록(24회)을 세웠다. 메이저 대회 다음 위상과 권위를 자랑하는 마스터스 1000 시리즈 대회에선 전인미답의 40회 우승 금자탑을 쌓았다. 이 부문 2위도 나달(36회)이다. 테니스 ‘페나조(페더러·나달·조코비치)’ 시대의 후발 주자였던 조코비치는 이제 이견 없는 선두 주자다.

사실 나달도 테니스 선수로 모든 걸 이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단식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그는 이미 2010년에 ‘커리어 골든 슬램(4대 메이저 대회 제패 + 올림픽 단식 금메달)’을 완성했다. 페더러와 조코비치도 달성하지 못한 위업이다. 클레이 코트에서 유독 강한 그는 프랑스오픈에서만 단일 메이저 대회 기준 최다인 14회 우승해 ‘흙신’으로 불린다. 마요르카섬 출신의 ‘촌놈’인 나달은 경기 외적으로도 수많은 미담을 제조해 냈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거나 심판 판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라켓을 코트 바닥에 내리쳐 박살내는 모습은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다. 10대에 만난 여인과 백년가약을 맺는 순정파이며, 2004년부터 지금까지 국내 기아자동차와 후원 관계를 이어오는 의리파이기도 하다.

내년에 38세로 테니스 선수론 황혼기에 접어드는 나달이 복귀를 결정한 배경엔 절친한 친구이자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42·스위스)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페더러는 선수 말년에 부상에 허덕이며 결국 종용당하다시피 코트를 떠났다. 그는 2021년 윔블던을 마지막으로 대회에 나서지 못하고, 세계 랭킹도 잃은 채 이듬해 9월 은퇴를 선언했다. 나달은 페더러 은퇴식 당시에 아내가 임신 중이었지만 참석해 눈물을 흘렸다.

나달은 지난 5월 자신의 이름을 딴 마요르카 아카데미 기자회견에서 “(부상으로) 커리어를 마감하고 싶진 않다”며 “꼭 돌아와 내가 원하는 ‘올바른’ 방식으로 현역 생활을 끝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스포츠에서만큼은 편법과 꼼수, 이름값이 통하지 않는다.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박수 받겠다는 그의 열정을 응원한다. 그는 “코트 위에서의 긴장감, 환상, 두려움 등을 다시 느끼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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