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새 국정원, 국내외 보안정보와 대북 휴민트의 첨병 돼야
신임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로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이 지명되었다. 안보실장은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이라는 위상으로 볼 때 같은 장관급이지만 국정원장보다 서열상 상위라고 볼 수 있으며, 역대 사례로 볼 때 국정원장을 거쳐서 가는 자리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런 파격적 인사를 단행한 것은 국정원이 국가정보기관으로서의 위상을 하루빨리 재정립하고 국가 안보의 첨병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라는 취지라고 생각한다.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는 1961년 5·16 군사 정변을 계기로 출범했다. 1965년부터는 공채 제도를 도입해 조직을 문민화하고 국내외 및 북한 정보와 대공 수사 분야 등에서 전문성을 강화하면서 국가정보기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춰 나갔다. 이로 인해 정권 교체기마다 숱한 존폐 위기 속에서도 정체성을 지켜나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태생적 굴레는 쉽게 벗을 수 없었다. 조직 내에는 대통령 직속기관으로서 정권 안보에 충실해야 한다는 문화가 남아 있었고, 역대 모든 정권은 겉으로는 탈(脫)정치, 정치 중립을 외치면서도 이를 활용하려는 유혹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런 와중에도 국가 안보의 최후 보루라는 본연의 역할을 망각하지 않고 대공 전선에서 숱한 공을 세웠음은 물론, 탈냉전 시대 다극화된 국제 질서 속에서 안보 환경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했다. 국력의 바로미터가 첨단 기술력과 직결되리라는 것을 예견하고 1989년부터 ‘산업보안팀’을 꾸려 산업스파이 대응의 구심점 역할을 했는가 하면, 2004년에 ‘국가사이버안전센터’를 설립해 사이버 안보의 토대를 구축해 온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신임 국정원장 부임을 계기로 더 이상 정치권에 휘둘리지 말고 진정한 국민의 정보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오늘날 세계는 미·중 갈등에서 촉발된 신냉전 시대 도래와 함께 동북아를 비롯해 유럽과 중동 등에서 서방과 반(反)서방 세계가 충돌하는 국제 정세의 커다란 변곡점을 맞고 있다. 이런 변화의 격랑 속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내고 통일을 이뤄낼지가 민족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구(舊)한말 외부 세계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국토를 유린당한 전철을 다시는 밟지 말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국정원은 이번에도 위기를 기회로 삼아 국가 안보의 블루오션 개척에 나서야 할 것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국내 보안 정보 활동 중단의 공백을 메우는 일이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의 특수한 안보 상황과 탈냉전 이후 산업스파이, 테러리즘, 사이버 테러, 국제 범죄와 같은 초국가적 안보 위협이 가중되는 글로벌 환경을 고려할 때 북한, 해외, 국내를 아우르는 정보의 시너지 효과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에서 폐지한 국내보안정보 부서를 복원하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크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정보기관 직원이라면 직급과 직무와 무관하게 누구라도 일정한 수준의 정보 마인드와 네트워크가 있는 만큼 이를 잘 엮어낼 것을 제안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
또한 지난 정부에서 약화된 대북 휴민트를 조속히 복원해 이번에 이스라엘 모사드와 같은 정보 실패를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 정보 차단의 원칙에 연연하다가 9·11 테러를 당했던 미국을 교훈 삼아 군·경찰 등 부문 정보기관과 유기적 협력 체계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시스템만 잘 갖춘다면 대공 수사권 복원이 여의치 않은 현실에서 이에 따른 안보 공백을 해소하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업, 언론, 내각과 정보기관이 네트워크를 구축해 일종의 정보 신경망이 연결되어 있는 일본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렇다고 과거 권력기관 향수에 젖어 정권 해바라기를 하거나 일반 부처에서 잘하고 있는 레드오션에 매달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국내외에 첩보망이 구축된 정보기관만이 할 수 있는 일, 국가 안보와 국익 수호를 위한 일에서 경쟁력을 갖춰 나가 국민이 신뢰하는 기관으로 재탄생해야 한다.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는 가운데 탈냉전을 거쳐 신냉전 시대를 맞아 국제 질서가 소용돌이치고 있는 엄중한 현실에 국가 정보기관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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