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만화 번역서에 외국인도 눈물…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로 풀었다
만화가 김금숙(52)은 ‘Keum Suk Gendry-Kim’으로 더 알려져 있다. 그래픽노블로 해외 평단과 독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작가다. ‘풀’로 ‘만화계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미국 하비상 국제도서 부문(2020)을 한국인으론 처음 받았다. 프랑스, 체코 등 해외상을 휩쓴 이 작품은 그의 이름을 각인시키며 35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기다림’으로 하비상 국제도서 부문(2022) 후보에, 이달 중순엔 ‘나목’이 전미 도서 비평가 협회가 수여하는 ‘바리오스 번역서상’ 후보에 올랐다. 이런 해외 반응과 달리 작가는 국내에선 ‘이방인’을 자처하며 강화도에서 조용히 지낸다. 지난 22일 그의 서울 일정에 맞춰 강서구 공항동을 찾았다. 그가 학창 시절을 보낸 동네다.
김금숙은 “해외 행사에서 독자들을 만나 사인을 하면, 눈물을 흘리며 진정성 있게 말하는 젊은 독자들이 많아 놀란다. 제 책을 읽고 ‘내 이야기’라고 말하더라”고 했다. 그의 작품은 한국인으로서 경험하는 자전적 소재에 바탕을 둔 경우가 많다. ‘풀’은 위안부 피해자, ‘기다림’은 이산가족의 현실과 고통을 다룬 그래픽노블이다. 그러나 그는 “제 관심은 한국적 소재가 아니라, 개인의 삶을 통해서 인간의 보편적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입체적 내면에 주목하되 그를 둘러싼 환경을 핍진하게 묘사한다. 기저에는 여성으로서 지니는 젠더적 시각이 있다. 소설가 박완서(1931~2011)의 데뷔작 ‘나목’을 재해석한 그래픽노블 ‘나목’도 시작은 화가 박수근(1914~1965)에 대한 관심이었다. 소설은 박완서가 6·25전쟁 시기 미군 부대에서 초상화를 그렸던 박수근을 소재로 쓴 것. “박수근 선생에 대한 만화를 기획하다가 멈췄는데, 소설 ‘나목’을 접한 뒤 이야기가 풀렸어요. 궁핍한 시기에 예술가의 역할과 모녀 관계에 집중했습니다. 황폐화된 일상이 애잔하면서 감동을 줍니다.”
프랑스에서 겪은 ‘이방인’의 경험이 그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게 했다. 1994년 세종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고등장식미술학교를 다녔다. “부모님이 공항시장에서 장사를 하셨어요. 힘든 형편에도 어머니가 ‘딸이 원하는 공부 끝까지 시키겠다’며 단식까지 하면서 아버지를 설득했죠.”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졸업 이후 조각가의 꿈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파리에서 옷도 팔고, 베이비시터도 했어요. 그러다 한국 만화 번역 일을 시작했습니다.” 한국 만화를 프랑스어로 100여 개 번역하는 동안, 현실과 꿈 사이에서의 고민을 그림일기처럼 쓰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첫 작품 ‘아버지의 노래’(2012)를 내며 만화의 길에 본격 들어섰다. “(만화의) 스토리는 제 안에 갖고 있었어요. 연필 하나와 종이만 있으면 된다는 만화의 가능성을 봤죠. 또 제가 8남매 중 일곱째예요. 한국 현대사를 그대로 겪은 가족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2010년 한국에 돌아온 작가는 “새 책이 나온 직후 국내와 해외 반응이 다른 것이 크게 느껴진다”고 했다. 해외에선 그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유력 언론 등과 인터뷰가 잇따르지만, 국내에선 해외 수상 소식에만 집중하는 탓이다. “국내에선 웹툰에 관심이 높고 출판 만화엔 관심이 낮아요. 처음엔 굉장히 아쉬웠는데, 이젠 익숙해졌습니다. 시간이 가면 그 소중함을 알지 않을까요.” 그는 글과 그림을 모두 담는 그래픽노블이 자신의 작품 성향에 맞는다고 했다. “그래픽노블은 복잡하고 힘든 이야기도 그림 덕분에 쉽게 풀어나갈 수 있어요. 그래픽노블은 흥미 위주 전개보다는,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최근 국내에서 출간한 그래픽노블 ‘내일은 또 다른 날’은 난임을 겪는 한 부부의 이야기가 소재다. 그러나 작가는 “난임 만화로 보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삶에서 어려운 순간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잖아요. 건강이든 가족사든.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하는 게 옳은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역사 같은 거대 담론을 다룬 전작들에 비해, 개인의 내면에 더 집중했다. “점점 저 자신을 깎고 있습니다. 더 좋은 작품으로 시도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다작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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