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다시 연결을 그리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며 그리워한다. 인간이 가장 의존하는 시각을 쓸모없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것’은, 그래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듯 느껴지며, 이미 무뎌진 다른 감각으로 더듬어보려다 뜻밖의 촉각과 소리 정보가 시각 정보 없이 입력되면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한다.
너와 나는 연결되었다. 드라마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붉은 실로 서로의 손가락이 묶여 있을 리 만무하지만, 우리는 서로 연결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연’으로 사랑과 정을 표했으며 ‘인因’을 붙인 것은 그 연결에 이유가 있음이다. 반면, ‘커넥션’으로 바르지 못한 욕망의 연결을 표하기도 한다. 어떠한 단어로 표현되더라도, 장기판의 말처럼 촘촘한 그리드의 네트워크 위를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현대인의 삶의 대표 이미지이다.
요즘 푹 빠져있는 소설가 김초엽의 이야기에서는 많은 연결을 이야기한다. 2021년에 발표한 SF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에서는 시지각 장애가 있는 ‘모그’라는 집단이 소통을 위해 ‘플루이드’를 만들어낸다.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추는 춤이 ‘플루이드’를 통해 근육과 신경의 움직임으로 전달되고, 함께 인지하고 ‘아름다움’으로 공감하는 소통법은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내가, 한국인이, 현대인이 지금까지 대상을 인지하고, 느끼고, 판단하고, 감동하고 폄하하는 프로세스는 과연 진실인가, 학습인가, 관습인가.
지난해에는 오랜 연을 맺은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사진과 영상을 찾아봤다. 그림을 그렸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모든 행위는 마음속 또는 머릿속에 부재의 대상을 복원하려는 것이다. 복원이 될 수 있을까. 사진과 영상 매체는 우리 기억을 선명하게 만든다고 생각했으나, 당사자가 없으니 아무 소용이 없었다. 복원이 어려운 공백이 바로 그 사람의 실존이다. 이후 한동안 머릿속을 빙빙 도는 의문이 있다. 인간의 저장장치에 넣어두고 가끔 떠올리거나 튀어나와 버리는 그 ‘기억’과 가장 닮아있는 매체는 무엇일까. 영상처럼 시각과 청각 정보를 긴 시간 기록한 매체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너무나 완벽한 사실의 기록에는 마음과 감정을 담을 여백이 없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기록과 기억은 달랐다. 인간의 기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나아간다. 종교의 출발도,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모든 과학의 출발도 유사하다.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로부터 메타버스에 이르기까지 사라진 것, 사라진 인연, 사라진 이야기, 그리고 미래의 도시, 미래의 꿈, 미래의 이야기를 보이게 하려고 한다. 그래서 이 기술은 인간의 꿈과 잘 닿아있다.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에 묶여 있다는 붉은 실의 구전된 이야기가 4차 산업혁명으로 희미하게 볼 수 있게 되었고, 콘텐츠가 되고, 도시의 꿈이 되어, 우리가 살고 있는 물리적 실체인 도시가 비로소 마음과 꿈의 영토를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산의 2030년 엑스포 유치가 실패로 끝났다. 우리는 정확히 엑스포 유치를 통해 부산에서 일어날 일을 알지 못했다. 다만 그렇게 강조하던 경제효과가 부산의 부활에 약간의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기대한 면이 컸을 뿐이다. 그러나 부산 엑스포가 인류에게 어떠한 문화적 가치를 보여줄 것인가는 세계에 알리지 못했다. 한국인이 잘하는 언어유희인 ‘X4’를 내세운 홍보는 의도와 달리 미지수, 즉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뜻하는 x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고, 오히려 “우리도 부산의 매력을 잘 몰라요”라고 자백하는 느낌이었다.
부산시는 2035년 엑스포 재도전을 검토한다고 한다. 연결은 중매쟁이가 짝짓듯 쉽게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연결의 선은 마치 살아있는 듯 매력적인 도시를 찾아서 뻗어나가는 것이다. 굳이 ‘강남스타일’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유명 연예인이 ‘넘버원’을 외치지 않더라도, 부산의 역사와 문화 유전자를 발굴해서 가꾸어나가는 내적 성장과 정치, 외교의 외적 노력이 조화를 이룰 때 부산의 꿈은 이어질 것이다.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이 토정비결을 볼 것이다. 그러나 동서남북 어디에서도 귀인은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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