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334> 큰 욕심 내지 않고 평범하게 살고자 한 조선 후기 이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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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망은 많지도 사치스럽지도 않아(所望不農侈·소망불농치)/ 자손이나 키우며 한가하게 살고 싶네.
아이들 교육도 시키고 이웃과 잘 지내기를 바랐다.
하지만 편안하고 소박하고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것도 그에게는 사치에 불과한 꿈이 됐다.
지리산 골짝에 묻혀 이봉한이 소망한 대로 있는 듯 없는 듯 소박하게 살려고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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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망은 많지도 사치스럽지도 않아(所望不農侈·소망불농치)/ 자손이나 키우며 한가하게 살고 싶네.(閑居養子孫·한거양자손)/ 작은 동산을 장만하여 나무를 심고(一區園種樹·일구원종수)/ 곳간에는 벼 백 섬을 거둬들이려네.(百斛稻收囷·백곡도수균)/ 공부시켜 선대 사업 잇고(文化傳先業·문화전선업)/ 닭과 돼지 잡아 이웃 불러 모으려네.(鷄豚會比隣·계돈회비린)/ 유유히 한 백 년 사는 동안(悠悠百歲內·유유백세내)/ 태평시대 백성으로 보내고 싶네.(願作太平民·원작태평민)
위 시는 조선 후기 우념재(雨念齋) 이봉환(李鳳煥·1710~1770)의 ‘소망(所望)’으로, 그의 문집인 ‘우념재시고(雨念齋詩藁)’에 있다. 그는 1747~1748년 무진통신사(戊辰通信使) 서기로 일본에 다녀왔다. 1760~1761년에는 경진동지사(庚辰冬至使)의 군관으로 청나라 연경에 다녀왔다. 이봉환은 글공부를 하는 집안의 서얼로 태어나, 시를 잘 지었다는 이유로 몇몇 인사에게 발탁돼 사행을 다녀왔고, 시회(詩會)에서 문명(文名)을 드날렸다.
하지만 그는 예전부터 친분이 있었던 최익남(崔益男) 옥사(獄事)에 휘말려 최후를 맞이한다. 대역죄 혐의를 받고 영조(英祖)에게 수사를 받는 도중 세상을 떠났다.
이봉한은 능력이 있다고 인정받았으나 겨우 낮은 직책을 지냈다. 그는 영조 말엽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를 옹호하다 죽었다. 위 시는 자기 생을 암시라도 하듯 인생 소망을 읊었다. 작은 동산을 마련하여 나무 심고 벼를 백 섬 수확한다는 것이다. 아이들 교육도 시키고 이웃과 잘 지내기를 바랐다. 즉 한평생 무탈하게 태평시대의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희망하였다. 하지만 편안하고 소박하고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것도 그에게는 사치에 불과한 꿈이 됐다.
한 해를 뒤돌아보면 여러 회환이 밀려온다. 지리산 골짝에 묻혀 이봉한이 소망한 대로 있는 듯 없는 듯 소박하게 살려고 애쓰고 있다. 모든 이가 느끼겠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게 삶이다. 낫 한 자루 들고 혼자 차산에 올라 일하다가 밤에는 이 글 저 글 붙잡고 지낸다. 아무래도 한해 끄트머리에 이봉한의 위 시가 마음에 들앉아 함께 새해를 맞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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