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29> 물텀벙이 생선회
- 독특한 모습에 멸시당했던 어종
- 최고의 탕거리로 겨울철 귀한 몸
- 식감 좋은 횟감도 널리 사랑받아
- 아귀회 인절미 먹듯이 몰캉몰캉
- 숭덩숭덩 썰어낸 물메기회 담백
- 도치숙회 꼬들꼬들 씹는 맛 최고
겨울이 오면 오동통하게 살이 올라 맛있어지는 바닷물고기들이 있다. 방어 삼치 대구 등이 그 대표적인 어종이지만, 절대 뒤지지 않는 겨울 진객들도 있다. 흔히들 겨울철 못난이 삼총사로 불리는 아귀 물메기 도치 등이다. 생긴 것과 달리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과 독특한 육질로 다양하게 조리해 먹는 겨울 진미들이다.
이것들은 각각의 모습이 독특하고 개성적으로 생겨 한때 생선으로도 취급받지 못할 정도로 천시당했던 어족들이다. 볼품없고 흉하게 생겼다고 예전에는 이것들을 3대 ‘물텀벙이’라 부르기도 했다. 게다가 미끄덩거리거나 끈적끈적한 점액질에 덮여있기에, 잡으면 어부들이 ‘재수 없다’면서 다시 바다로 던져버리기 일쑤였다. 바닷물에 빠질 때 ‘텀벙’ 큰소리가 난다고 어부들이 별칭으로 ‘물텀벙’이라고 불렀던 것.
이렇게 천대받던 물고기들이 요즘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아주 귀한 몸이 됐다. 못난이 삼총사가 대중에게 인기를 끌게 된 시기는 1980년대 전후. 서민의 식재료이자 국민 생선이던 명태와 주로 접대용 고급 어종이던 대구가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명태 대구를 대신해 해안지역 도시를 중심으로 새로운 탕거리로 먹기 시작한 것이다.
▮겨울철 최고 탕거리, 횟감도 일품
요즘 이것들은 겨울철 탕거리로 최고 반열에 속한다. 온몸을 지지듯 시원함이 일품인 ‘물메기탕’, 진한 국물이 속을 잘 다스려주는 ‘아귀탕’, 얼큰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제대로인 ‘도치알탕’ 등이 그것이다. 그 외에도 해안가 사람들의 성정과 닮아 화끈한 맛의 ‘아귀찜’, 바다의 푸아그라로 인정받는 아귀 애(간), 말린 물메기로 끓여내는 깔끔하고 담박한 맛의 ‘물메기국’, 칼칼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으로 흔쾌한 ‘물메기찜’, 고소한 맛이 절창인 ‘도치알찜’ 등도 사랑받는 음식이다.
국이나 탕 찜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되며 어느 때부터 횟감으로도 소용되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시원한 맛을 내는가 하면 쫀득하면서도 꼬들꼬들한 식감을 가진 회 맛은, 한 번 맛을 들여놓으면 겨울이 기다려질 정도로 아주 차지고 매력적이다.
원래 이것들은 대체로 살이 무르거나(물메기, 아귀) 알로 가득 차 있어서(도치) 횟감으로는 그다지 활용되지 않았다. 탕으로 끓여놓으면 극강의 시원함으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이기에 대부분 탕거리로만 소비된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직접 어획하는 어부들이나 주 어획지 포구 마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횟감으로 즐겨 먹었다.
물메기는 주로 경남 통영권에서, 아귀는 부산 기장, 강원도 강릉 등지에서, 도치숙회는 강원도 북부지역에서 그 식문화가 이어져 오고 있다.
▮겨울에 더 쫀득한 아귀
얼마 전 지인이 운영하는 아귀찜 전문점에서 아귀회를 맛보았다. 거제 인근에서 어획한 큰 활아귀로 회를 장만했는데, 큰 아귀찜 접시에 가지런히 한가득하다. 살점이 크고 말갛게 윤이 나는 것이 꽤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한 입 먹어보니 처음에는 부드러운데 씹을수록 치밀해진다. 속살과 바깥 살 또한 식감이 다르다. 어떤 부위는 탄탄하고 어떤 부위는 부드러워 씹을 새도 없이 넘어간다. 지인의 표현을 빌리면 ‘처음에는 부드럽고 들부리하다가 점점 몰캉몰캉하면서 달달해지는 것이 마치 인절미 씹는 맛’이라는 것이다.
아귀는 우리나라 전 연안에서 사철 잡히는 어종이다. 부산에서는 기장과 다대포 일대에서 주로 잡힌다. 대가리 위의 발광물질로 작은 물고기를 유인해 단숨에 잡아먹는 포식성 물고기이다. 때문에 ‘자산어보’에는 ‘낚시하는 물고기’라 하여 ‘조사어(釣絲魚)’라 쓰고 있다.
아귀는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한겨울에 특히 맛있어진다. 찜 수육 탕 등으로 요리해 먹는데, 부산 사람 기질을 잘 반영한 맵고 간이 센 ‘아구찜’이 대표적이다. 특히 아귀의 간은 영양가도 높고 맛 또한 좋아, 세계적 별미인 ‘푸아그라(거위 간)’에 비견될 정도이다.
아귀회는 활아귀의 꼬리 부분 살점으로 장만하는데, 포를 뜬 살점을 얇게 썰어서 낸다. 아귀회의 식감은 부드럽고 풍미는 담백하다. 비린내가 없고 잡내도 없다. 그러나 물메기회보다는 쫄깃함이 더하고 식감도 탄탄한 편이다. 소스는 초장과 고추냉이가 잘 어울린다.
▮물메기회는 입안 가득 두껍게
겨울이 오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먹는 겨울 별미 중 하나가 물메기회이다. 부드러우면서도 시원한 식감과 씹을수록 들큰한 풍미가 그저 그만이기 때문이다. 물메기를 한 마리 사서 반은 회나 회무침으로 먹고, 나머지로는 속 시원하게 탕으로 끓여 먹는 것이다.
물메기는 꼼칫과의 어류로 꼼치, 물메기, 아가씨 물메기, 노랑 물메기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주로 남해 지역은 물메기가, 동해 지역에서는 꼼치 등이 많이 잡힌다. 지방마다 물메기, 미거지, 곰치, 물곰, 물텀뱅이, 잠뱅이 등으로 불리며 다양한 국과 탕 찜으로 먹는다.
물메기회는 포를 뜬 물메기살을 숭덩숭덩 썰어서 먹는데, 살점을 크고 두껍게 썰어야 제맛이 난다. 살이 부드럽고 담백해서 한 입 크게 넣고 씹어야 웅숭깊은 맛을 볼 수 있다. 아귀회처럼 비린 맛이나 잡내가 없기에 거부감도 없다.
오래전부터 물메기를 즐겨 먹은 통영 어부들 또한 ‘물메기회는 한 점 큼직하게 삐져(베어) 먹어야 별미’라고 말을 한다. 뭉텅이 살을 초장에 듬뿍 찍어 먹으면 들큰하면서도 촉촉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차진 맛이 온 입을 희롱한다. 양념장은 초장 대신 초간장, 고추냉이와도 잘 어울린다.
▮쫀득한 도치숙회 초고추장에 푹
강원도에 가면 늘 찾아 먹는 겨울철 별식이 여럿 있다. 도치숙회도 그중 하나이다. 쫀득하고 꼬들꼬들한 도치숙회를 초장에 듬뿍 찍어 먹으면 ‘아! 강원도에 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다.
도치의 원 학명은 ‘뚝지’이다. 몸 색깔은 갈색이고 등에 자잘한 반점이 많다. 몸통이 올챙이처럼 통통하고 배에 빨판이 있어 바위 따위에 잘 붙는다. 겨울철 연안으로 이동해 바위틈에 알을 낳는다. 동해안에서는 뚝지라는 이름보다 ‘도치’ ‘심퉁이’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도치는 산란기에 뱃속에 알을 꽉꽉 채우고 있어 알과 내장은 알탕이나 알찜으로 먹고 나머지는 살짝 데쳐서 숙회로 먹는다. ‘도치숙회’는 다른 물텀벙이와는 달리 쫀득하면서 꼬들꼬들하다. 껍질에는 콜라겐이 많아 쫀득하고, 물렁뼈는 꼬들꼬들하기에 씹는 맛이 좋다.
주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데, 숙회를 먹다가 여러 채소를 넣고 살살 무쳐내면 ‘도치회무침’이 된다. 동해 북부지역에서는 도치 알을 사각형 모양의 솥에 찐 ‘도치알찜’을 제사상에 올리기도 한다.
한겨울이면 우리 곁으로 다가와 맛있는 음식이 되어주는 것들. 못생기긴 했지만 맛만은 절대 뒤지지 않는 겨울철 생선의 백미. 이 물텅벙이들로 탕은 물론 회로도 즐겨보면 추운 겨울이 그렇게 성가시지만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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