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 같아진 지역연극, 전용극장 짓고 응집력 키워야”

김미주 기자 2023. 12. 2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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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부두연극단 이성규 대표

- 내년 극단 창단 40주년 맞지만
- 정식 단원 없을 만큼 기반 무너져
- 연극인 자유롭게 쓸 공간 신축을
- 소통 속에 제작시스템 갖춰야

월급 털고, 아파트 팔고, 열정을 바쳐 무대를 지키다 보니 어느새 40년. 초창기 선배와 동료는 대부분 사라졌고, 끈끈했던 동료애는 ‘라떼’가 됐다. 아쉬움은 많지만 그래서 더 지키고 싶은 연극 무대. 새해에 창단 40주년을 맞는 부두연극단 이성규 대표에게 연극은 어떤 의미일까. 지난 20일 액터스소극장(부산도시철도 2호선 남천역 인근)에서 그를 만났다.

부두연극단 이성규 대표. 1984년 창단한 부두연극단이 새해에 40주년을 맞는다. 부산지역 극단 가운데 40년 역사를 쌓은 곳은 극히 드물다. 국제신문 DB


이 대표는 “극단 창단 30주년 때와는 감회가 또 다르다. 연극을 시작할 때 함께한 동료가 지금은 곁에 거의 없다”며 “후배 양성에 힘쓸 시기이지만, 지역 연극계 현실은 그마저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부두연극단이 생긴 1980년대는 ‘소극장 전성시대’였다. 이 대표는 “부두소극장을 포함해 가마골소극장, 극단 자갈치의 소극장 자갈치 등이 일어났다. 각 극단의 색깔은 뚜렷했고, 단원들의 끈끈함과 진지함 열정도 아주 강했던 시기”라고 회상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부두연극단 창단 초기, 이 대표는 특히 힘들었다. 처음엔 월급을 털어 창고를 극장(부두소극장)으로 만들었다. 낡았지만 천장도 높고 독특한 공간이라 마음에 둔 곳이지만, 지하철 공사를 이유로 하루아침에 무대를 빼앗겼다. 1995년, 이번엔 아파트를 팔아 연당소극장(동래구)을 열었다. 배우 김윤식 송강호도 거쳐 간 곳이다. 이마저도 운영난을 못 견디고 3년여 만에 문을 닫았다.

좌절과 방황의 시기를 거쳐 지금의 액터스소극장에 자리 잡은 때가 2005년. 이 대표는 “‘터’를 잃었을 때가 가장 괴로웠다. 좌절감도 매우 컸다”고 회상했다. 액터스소극장은 현재 지역 연극사( 史)를 채워 가는 주요한 ‘본부’가 됐다. 이렇게 ‘버틴’ 40년 동안 무대에 올린 작품은 120여 편이나 된다. 여러 번 터를 옮기면서 한 번쯤 대중성도 고려했을 법하지만 그는 매번 실험적이고 진중한 작품에 방점을 찍었다.

이 대표는 여전히 연극과 함께하지만, 같은 길을 걷던 선배와 동료 대부분은 사라졌다. 부산 1세대 연극인 허영길 선생 등이 작고했고, 생계를 위해 도중 연극판을 떠난 동료도 많다. 지금도 부두연극단은 정식 단원이 없다. 이 대표의 표현을 빌리면,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놔줄 수밖에 없다. 그는 “연극을 기획해 작품별로 배우를 모으는 형태로 작업한다. 생업 때문에 연극에 몰두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성도 옅어진 시대 아닌가. 진지한 작업을 하기가 점점 쉽지 않다”고 했다.

고민은 후계자 양성으로 이어진다. 그는 “젊은 연극인들에게 부두극단 작품을 만들어 보라고 제안했지만 부담스러워하더라”고 했다. 그는 “1년에 작품 4개 정도 올린다고 보면, 절반은 젊은 극단들에 맡겨보고 싶다. 안정된 배우진과 스태프를 꾸려 다양한 연출을 해보고 싶지만, 극단이 탄탄한 시스템을 만드는 게 부산에서는 여전히 난제”라고 토로했다.

지역 연극계의 소통 부족에도 아쉬움을 표했다. 이 대표는 “현재 지역 연극계는 모래알 느낌이다. 능력은 있는데 응집력이 약해 시너지 효과 내기가 힘들다”며 “현실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세대 간, 극단 간 융합을 위해서는 소통의 자리가 자주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극계 ‘핫 이슈’인 부산 연극전용극장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그는 “극장 전문가의 꼼꼼한 자문을 통해, 시간이 조금 걸려도 제대로 된 공간(건물)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신축도 좋은 방법이다. 그 공간은 연극인들이 오롯이 보유하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연극인·시민·전문가 공청회부터 자주 열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내년 부두연극단은 이 대표가 연출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연습 과정, 연출자의 생각 등을 김문홍 극작가가 기록한 책을 낼 계획이다. 그간 부두연극단을 거친 배우들을 모아 특별한 작품도 올릴 예정이다. 그는 “후배들이 가끔 내게 ‘오래오래 버텨주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는데, 말뿐이어도 고맙다. 그래도 말과 함께 내가 힘낼 수 있도록 곁에서 동행하는 행동도 보여주면 좋겠다”고 웃었다. 부두연극단은 오는 30일까지 액터스소극장에서 종말 체험 환경연극 ‘END GAME’(연출 이성규)을 선보인다. 기후재앙과 바이러스로 인류 90%가 사라지고 생존한 10%의 고뇌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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