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간첩’ 64%가 외국서 北접선… “경찰 전담땐 해외수사 공백 우려”

고도예 기자 2023. 12. 2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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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대공수사권 이관’ 문제점은
간첩통신-암호해독에 노하우 필요… 경찰 내부 ‘대공 베테랑수사관’ 적어
경찰 “국정원 인프라 활용 등 협업”
일각 “휴민트 등 100% 공유 의문”
“접선 장소는 캄보디아 프놈펜.”

2018년 4월 5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 선상에 올랐던 ‘자주통일충북동지회’ 구성원 박모 씨가 북한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충북동지회의 또 다른 구성원인 윤모 씨를 프놈펜으로 보내 북한 공작원과 접선하도록 하겠다는 것.

윤 씨는 정확히 3주 뒤 프놈펜 공항에 도착했다. 이후 프놈펜의 한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 내 기념비로 향한 윤 씨는 한 남성을 발견했다. 그리고 공원을 산책하듯 한 바퀴 돌았다. 이어 인파로 북적이는 시장으로 이동했다. 몇 분 뒤 윤 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시장을 빠져나갔다. 공원에서 만난 남성도 함께였다. 행선지는 프놈펜의 한 호텔방. 윤 씨는 그곳에서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국내에서 간첩 활동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국가정보원 수사팀은 ‘007 작전’을 방불케 한 윤 씨와 북한 공작원의 접선 장면을 사진은 물론 동영상으로도 촬영했다. 수년간 내사 후 충북동지회를 확인해 수사를 벌였고, 이후 윤 씨의 출국 계획을 파악한 직후 캄보디아 현지의 다른 국정원 요원 등에게 협조를 구하는 등 신속한 수사가 이뤄진 결과였다. 수사팀이 확보한 영상 자료는 충북동지회에 대한 강제수사를 시작하는 핵심 단서가 됐다.

● 北지령 10명 중 7명, 해외서 공작원 접선

북한의 지령을 받아 국내에서 활동하는 ‘고정 간첩’ 피고인들이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 지령이나 공작금을 받는 경향은 최근 더욱 두드러지는 추세다. 최근 5년간 북한의 지령에 따라 활동하는 등 국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최소 22명 중 14명(63.6%)은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을 접촉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가 이 피고인들의 공소장과 1심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다.

전문가들은 “해외 접촉 사례가 늘면서 간첩 수사가 까다로워진 상황에서 내년 1월 1일부터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가면서 해외 수사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정원법 개정안에 따르면 해외 정보 수집과 간첩 수사를 도맡던 국정원은 앞으로 ‘해외 정보 수집’만 할 수 있게 된다.

2006년 간첩 사건인 일심회 사건 등을 수사한 최기식 전 차장검사는 “일심회 사건 당시 국정원 수사팀이 주요 피의자에 대해 ‘중국 외곽 아지트에 교육을 받으러 간다’는 첩보를 확인했고, 중국에 파견된 요원들에게 협조를 요청해 접선 장면을 채증했다”며 “경찰과 국정원의 신속한 정보 공유가 간첩 검거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국정원 전 수사 요원 A 씨는 “국정원이 북한 공작원과의 접선 장면을 확인해도 이 정보가 곧바로 100% 경찰에 공유되긴 어려울 것”이라며 “경찰이 국정원의 휴민트(인적 정보) 관련 보안을 얼마나 잘 유지해 줄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경찰은 내년 본청에 신설할 안보수사단과 국정원 대공수사국 관계자들 간 업무협의체를 꾸려 국정원의 자문을 받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국정원이 가진 기존 해외 인프라를 적극 활용하는 등 협업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안보수사단에 파견될 국정원 직원이 5명 안팎에 불과할 것으로 알려져 제대로 협업이 될지 의문이란 지적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도 “국정원 파견 인력은 연락관 정도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 “간첩 수사 간부 절반 대공 수사 경력 3년 미만”

내사에만 수년이 소요되는 경우가 빈번한 간첩 수사를 내년부터 전담할 경찰 내부에 대공 수사 경험이 많은 베테랑 수사관이 적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내년에 전국 간첩 수사를 지휘할 본청·시도경찰청 소속 과장급 이상 간부 84명 중 절반 이상인 43명(51%)은 대공 수사 경력이 3년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력이 1년도 안 된 간부도 26명(31%)이었다.

신속함이 생명인 대북 지령문 암호 해독 등에서 생길 수사 공백 우려도 제기된다. 앞서 5월 국정원은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직쟁의국장 석모 씨의 컴퓨터에서 ‘스테가노그라피’ 등으로 잠금 장치가 된 문서를 확보했다. 당시 국정원의 한 베테랑 수사관은 압수물인 파일에서 규칙이 보이지 않는 영문자를 확인했다. 이어 이 문자열을 한글 타자로 변환해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란 패스워드를 발견해 암호 해독에 성공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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