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내가 니 애비다!”...오랑우탄 우리 막장극의 결말은?
어느 놈이 아비인지 불분명
DNA검사 결과를 ‘막장쇼 MC’가 발표
수컷 오랑우탕은 우락부락한 껄떡쇠형과 여리여리한 기생오라비형으로 나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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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니(네) 애비다!(I am your father!)” 스타워즈의 대사로 유명한 이 말 속에서 치정·복수·반전 등 온갖 코드를 상상할 수 있어요. ‘내가 니 에미다’와 함께 막장극을 상징하는 말이죠. 막장극이라는 단어의 맥락엔 ‘사람은 짐승과 다르게 윤리와 도덕이 있다’는 대전제가 깔려있습니다. 짐승이 어느짝과 어느짝이 흘레붙어 뒹구는지를 두고 ‘그래선 아니된다’고 꾸짖을 수 없는 노릇입니다. 짐승이잖아요.
그래도 짐승 세계에서도 촌수가 불분명한 막장극은 일어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자칫 근친이라도 일어나면 종의 다양성과 건강성에 해악을 끼치거든요. 멸종위기종은 더욱 그렇죠. 동물원들끼리 네트워크를 맺어서 족보를 깐깐히 관리하면서 흘레붙을 파트너를 인위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그 과정에서 동물의 의지에 반한 이별도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동물원 동물들은 천적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운대신 맞아야 할 숙명이기도 합니다.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동물원의 오랑우탄 우리에서 발생한 상황도 이런 고민 중에 벌어진 사건이에요. 사랑스러운 오랑우탄 새끼가 태어났는데, 두 마리의 수컷 중 어느 놈이 뿌린 씨앗인지를 규명하기 위해 유전자 검사가 시행됐어요. 딱딱하게 진행될수도 있었는데, 동물원의 대응은 센스 만점이었습니다. 막장리얼 토크쇼 ‘모리(Maury)’의 짐승 번외편으로 포장한 거예요. 모리는 1991년부터 2022년까지 30년 넘게 방영된 최장수 토크쇼 중 하나인데, 선정적이고 노골적이면서 때로는 금기시되는 소재들까지 과감하게 소재로 삼으면서 미국 타블로이드 토크쇼를 상징하는 이름이 됐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간판이자 얼굴인 모리 포비치(84)의 이름에서 딴 토크쇼에요. 가장 핫한 코너는 ‘아빠 찾기’였습니다. 눈물 뿌리는 이산가족 찾기를 떠올리시면 곤란합니다. 대충 이렇게 진행돼요. 온갖 애증으로 얽히고 설킨 남녀가 스튜디오에 등장합니다. 모니터에는 천사 같은 아이의 사진이 떠요. 출연 남성이 사진속 아이의 아빠인지 아닌지에 따라 남녀관계는 격랑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둘 사이 얽힌 사연이 소개되고, 모비치가 친자 검사 확인서 봉투를 열고 외칩니다. “(모니터를 가리키며)이 아이의 경우, (출연자를 지목하며)당신이 아빠다!(또는 당신이 아빠가 아니다)”
토크쇼의 인기 때문에 모비치는 막장극을 결말지어주는 해결사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런 그가 며칠 전 토크쇼에서처럼 오랑우탄 친자감별 발표자로 나선 거예요. 그럼 사건 의뢰의 계기가 된 오랑우탄의 탄생 순간으로 돌아가보죠. 올해 8월 27일 덴버 동물원에 낭보가 들렸어요. 암컷 중 최연장자였던 에이리나(15)가 첫 출산에 성공했습니다. 천사 같은 예쁜 딸 시스카를 품에 안았어요. 에이리나는 국제 오랑우탄 번식 프로그램에 따라 7년 전 독일 도르트문트 동물원에 들어왔죠. 연초부터 수컷들과 찐한 포즈로 부둥키고 뒹구는 모습을 몇 번 보이더니, 올 4월에 임신 징후가 포착된지 넉달만의 경사였어요. 하지만, 동물원은 과제를 떠안습니다. 시스카의 아비가 누구인지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죠. 이 수컷 저 수컷 가리지 않고 관계의 틀에서 자유로웠던 에이리나의 평소 특성상 아비는 동갑내기인 자야(15)와 아빠 뻘인 베라니(30) 중 하나일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혈통을 확인해서 족보에 등재하는 건 멸종위기 보호를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죠. 이런 희귀성말고도 오랑우탄 집안의 짝짓는 과정엔 사람의 관심을 잡아끄는 특성이 있습니다. 알려진대로 오랑우탄은 고릴라·긴팔원숭이·침팬지와 더불어 유인원 4대 천왕입니다. 유인원이 어떤 족속입니까? 정말 깨알 같은 나노급 차이로 인해서 사람과 운명이 갈린 놈들이예요. 그냥 원숭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사람같기에, 그리고 실제로 사람과의 분류학적 차이가 매우 미미하기 때문에 이들을 유인원이라고 따로 통칭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들의 암수가 뒹구는 모습이 눈길을 떼려해도 떼기 힘듭니다. 일부 사회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이 유인원의 습성에서 사람 사회 문제의 해답을 얻으려 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죠.
그중에서도 오랑우탄의 암수 관계는 여타 유인원에서 찾을 수 없는 특출난 점이 있습니다. 바로 수컷의 생김새예요. 고등한 동물일수록 암컷과 수컷의 생김새와 특성의 차이는 확연합니다. 그런데 오랑우탄의 경우 수컷간에도 생김새가 두드러져요. 오랑우탄 수컷은 보통 몸집이 암컷의 두 배 가까이 큰데요. 덩치 뿐만 아니라 얼굴 주변도 달덩이처럼 우락부락 부풀어오르기 시작합니다. 목 주변에는 덜렁덜렁한 주머니가 생겨나요. 이 부풀어오르는 얼굴 주변과 목주머니는 사람으로 치면 덥수룩한 수염과 불끈불끈 근육, 팔다리의 체모와 같은 것이에요. 수컷을 더욱 수컷답게 해주는 상징이기도 하죠.
편의상 얼굴이 부풀어오르는 놈들을 ‘껄떡쇠 타입’이라고 해두죠. 하지만, 모든 오랑우탄 수컷이 껄떡쇠 타입은 아닙니다. 수컷임에도 불구하고 덜 부풀어오른 얼굴과 상대적으로 작달만한 몸집 때문에 묘한 중성적 느낌을 주면서 ‘상수컷’보다는 ‘꽃수컷’ 느낌을 전해주는 놈들이 있어요. 생긴 게 약간 차이가 있다해도 이성에게 달려드는 본능만큼은 여느 수컷 못지 않습니다. 이런 놈들을 편의상 ‘기생오라비 타입’이라고 하겠습니다. 수컷들이 왜 ‘껄떡쇠 타입’과 ‘기생오라비 타입’으로 이분화되는지는 여전히 연구대상입니다.
덴버 동물원의 베라니와 자야 모두 얼굴 주변이 달덩이처럼 부풀어른 ‘껄떡쇠 타입’이에요. 하지만 상대적으로 나이가 젊은 자야가 조금은 여리여리하고 꽃수컷 포스를 풍기니 ‘기생오라비 타입’이 약간 믹스됐다고 할 수 있죠. 산전수전 다겪고 볼장 다본 백전노장 베라니, 패기만만하고 눈에 뵈는게 없는 팔팔함으로 무장한 자야 과연 누가 생후 4개월짜리 아가 시스카의 아비일까요? 다음의 동영상에서 모비치가 발표합니다
네. 시스카는 황혼녘을 향해 달려가는 할배급 수컷 베라니의 늦둥이로 확인됐어요. 이렇게 등재된 혈통에 따라서 오랑우탄들의 인생 항로는 조정될 것입니다. 유인원 4대 천왕 중에서 오랑우탄은 사실 순둥이 이미지가 강한게 사실입니다. 고릴라의 경우 영화 킹콩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 가슴을 두드리는 모습 때문에 사납고 흉포한 괴수로 인식되곤 해요. 침팬지는 집단생활속에서 보여주는 과격하고 광기어린 모습이 섬뜩함을 자아내고요. 긴팔원숭이는 작은 몸집 때문에 사실 유인원으로서의 존재감은 미미합니다. 실제 뇌 크기도 나머지 세 종류보다 작은 걸로 알려져있고요.
오랑우탄은 새끼 때 특유의 귀여운 모습과 순진무구한 느낌의 눈매 때문에 유순하고 길들이기 쉬울 것처럼 인식되곤 하죠. 하지만, 인간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짐승의 면모도 있습니다. 오랑우탄은 주로 숲속에서 과일을 먹으면서 살아가고, 이따금씩 새알 정도를 곁들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때로는 직접 사냥을 해서 고기를 섭취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사냥감이 바로 같은 영장류이면서 앙증맞은 외모 때문에 애완동물로도 밀거래되는 로리스입니다. 어미와 새끼로 보이는 오랑우탄들이 갓 잡은 로리스를 북북 찢어 영양분을 보충하는 장면을 찍어 캡처한 사진입니다. 비위가 약하신분들에겐 건너뛰시길 권합니다.
침팬지도 같은 영장류인 콜로부스 원숭이를 사냥한 뒤 그 자리에서 바로 생고기를 찢어먹는 식습관을 갖고 있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원숭이 먹는 유인원’의 면모가 오랑우탄에게도 있었던 것이죠. 이런 다이내믹한 습성을 지닌 오랑우탄이라는 말에 지닌 뜻은 ‘숲속에 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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