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관의 딜 막전막후] M&A '가격 마지노선'을 정하는 방법

박종관 2023. 12. 2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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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관 증권부 기자

마켓인사이트 12월 26일 오후 5시 26분

주가 움직임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고 하지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적지 않다. 내려야 할 때 오르고, 올라야 할 때 내려가는 일이 부지기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불확실성이나 기대가 엉뚱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시장 참여자 전원이 늘 합리적인 선택만 하지는 않는다.

 산은이 정한 예가의 비밀

HMM 주가 흐름을 보면서 그런 의심이 더해졌다. HMM 보통주 2억 주가 신규 상장된 지난달 10일, 주가는 시장 예상과 정반대였다. 당시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하고 있던 1조원 규모의 영구채가 주식으로 전환돼 상장됐다. 전체 발행주식 수의 40.9%에 달하는 신주가 발행된 것이다. HMM 시가총액은 8조154억원에서 하루 만에 11조4036억원으로 급증했다. 주식가치가 희석되면 주가는 떨어지는 게 맞다. 하지만 그날 주가는 0.98% 올랐다. 주가가 사전에 반영된 것도 아니었다.

비상식적인 주가 흐름에도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주가는 기업가치를 나타내는 대표 지표다. 시장은 언제나 현명하다는 관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주가가 기업가치를 산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사용되면 문제가 생긴다. 산은은 HMM을 매각하면서 일종의 ‘가격 마지노선’인 매각예정가격(예가)을 주가를 기준으로 산정했다. 영구채 주식 전환에 따른 주식가치 희석 효과가 반영되지 않은 주가로 예가를 산정하다 보니 당연히 예가도 비정상적으로 높게 설정됐다.

결국 유력 인수후보인 동원그룹은 예가를 넘지 못해 본입찰에서 떨어졌다. 수개월간 그룹의 역량을 총동원해 인수 작업에 나섰지만 가격 마지노선을 못 맞춘 것이다. 예가를 넘은 후보가 하림그룹뿐이다. 산은은 차순위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매각 협상을 이어가야 한다. 하림이 아니면 유찰인 상황에서 협상해야 하는 셈이다.

산은이 주가를 기준으로 예가를 산정한 건 ‘법대로’ 일 처리를 한 것이다. 국유재산법 시행령 제43조에 따르면 상장 증권의 예가는 30일간 주가를 가중산술평균한 가격으로 정한다. 하지만 반드시 주가를 기준으로 예가를 정해야 하는 건 아니다.

민영화 등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 추진에 따른 매각업무 일반기준 제11조에 따르면 ‘외부전문기관이 실사 및 매각대상 자산의 특성 등을 고려해 산정하되 국유재산법령의 관련 규정을 적용 또는 준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쉽게 말해 주가를 기준으로 예가를 산정해도 되지만 매각대상 자산의 특성을 고려해 정해도 된다. 하지만 산은은 주가만을 기준으로 예가를 설정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담당자가 향후 매각 책임을 물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시 HMM 주가로 돌아가 보자. HMM은 최근 주가가 급등했다. 지난 20일엔 2만2100원까지 올랐다. 예멘의 이슬람 반군 후티가 홍해 인근을 지나는 상선을 공격하면서 글로벌 물류 대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제기되면서다.

 주가는 그저 시가일 뿐

주당 2만2100원은 동원은 물론 하림이 본입찰 때 써낸 가격보다 높다. 당연히 산은이 정한 예가보다 높다. 그렇다면 주가보다 낮은 가격에 HMM을 팔 위기에 처한 산은은 지금이라도 매각을 철회해야 할까. 조금만 늦게 매각 작업을 진행했으면 더 높은 가격에 HMM을 팔 수 있었는데 왜 빨리 매각 작업을 했느냐고 산은을 문책해야 할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얘기다. 다만 현재 HMM 시가가 주가는 그저 특정 시점의 가격일 뿐이란 걸 되묻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매각대상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 시점의 주가를 기준으로 예가를 설정하는 것 역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얘기다.

‘헐값 매각’ 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가격 마지노선은 필요하다. 핵심은 규정의 디테일이다. 주가는 모든 것을 담고 있지만 항상 정답을 가리키는 건 아니다. 공공기관 매각이 있을 때마다 비효율 얘기가 나온다. 앞으로 또 다른 혼란을 막기 위해선 보완책이 나와야 한다. 새로운 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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