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오 사설] 영화 '서울의 봄'과 언론이 할 일

미디어오늘 2023. 12. 2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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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1432호 사설

[미디어오늘 미디어오늘]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병세가 위중해 입원했을 때 병원 앞은 기자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현대사를 관통하던 김 전 대통령의 인생을 재조명하기 위해서였다.

서거하기까지 병원 앞에서 최경환 비서관은 김 전 대통령이 살아온 삶을 기자들에게 풀어놨다. 최 비서관은 박정희 정권에서 발생한 도쿄 납치사건부터 전두환 정권에서 내려진 내란음모죄 선고까지 '폭압'의 피해자가 대통령에 올랐던 역사를 기자들에게 친절히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한순간 정적을 흐르게 만든 질문이 나왔다. 최 비서관이 김 전 대통령이 신군부로부터 어떻게 탄압받았는지 말하는 도중에 한 기자는 “신군부가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다. 전두환 정권의 군대 내부 사조직인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집단을 사람의 이름으로 알았던 것이다.

젊은 기자에게 신군부라는 단어가 낯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1980년 5월 항쟁을 총칼로 짓밟은 폭압의 상징인 신군부를 어떻게 모를 수가 있느냐며 취재 현장에서 말들이 쏟아졌다. 목격했던 한 기자는 현장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고 한다. 당시 언론계 출신 한 정치인은 요즘 기자들이 역사 공부를 하지 않고 역사 의식이 없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 영화

최근 영화 '서울의 봄' 관람객수가 천만을 기록하면서 흥행 중이다. 신군부가 어떻게 정권을 찬탈했는지 정면으로 응시한 이 영화에 대중이 호응한 것을 두고 여러 정치적 해석이 나왔다.

언론에서도 정치권 입장에 대해 공방을 중계하는 보도를 내놓거나 칼럼 등을 통해 현재 정치권의 모습을 투영해 해설하기도 했다. 특별히 눈에 띤 건 14일자 조선일보 기자수첩인 <'하나회 해체' '전두환 단죄' YS의 당, '서울의 봄' 흥행에 왜 떠나>라는 보도다. 기사는 국민의힘이 '서울의 봄' 흥행에 위축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군 인사 조치로 하나회를 해체시킨 공로가 있고, 국민의힘이 YS의 후예인데 왜 떨고 있나라며 “영화로 공세를 펼치는 민주당을 향해 '충성 경쟁 펼치며 사익만 좇는 모습이 하나회와 꼭 닮았다'고 맞불 놓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국민의힘은 쉬쉬하기 바쁘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다음날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당대표 권한대행은 “12·12를 일으킨 하나회를 척결한 것도 우리 당의 뿌리인 문민정부였다”며 “민주당이 영화 '서울의 봄'을 이용해 군부독재의 부정적 이미지를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에 덧씌우려 한다”고 호응해 주장했다.

▲ 12월15일 오전 윤재옥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과 원내대표단은 서울 여의도 국회 회의실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했다. 사진=국민의힘 홈페이지

기자수첩 내용과 윤 원내대표의 주장은 절반의 진실만 담겨 있다. 민주자유당은 신군부의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공화당 등 3당 합당의 산물이다. 그리고 이를 이어받아 현재의 국민의힘이 됐다. 하나회 척결은 당시 민주화 흐름의 시대적 과제였고, YS 업적이긴 하지만 국민의힘의 뿌리는 신군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역사 문제에 있어 당대의 평가는 언론의 영향력이 지배적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소식 및 평가부터 흥행 중인 '서울의 봄'에 대한 해석까지 언론 보도 한 줄이 또다른 역사의 초고가 될 수 있다.

영화 '서울의 봄'을 계기로 전두환 정권 시절 언론 보도 행태를 스스로 성찰하는 것부터 역사의 기록을 남기면 어떨까. '서울의 봄'을 봤던 관객들은 당시 언론은 무엇을 했나라고 되묻고 있다.

'서울의 봄' 제작사가 전두환 정권 당시 언론 통제 계획이었던 'K공작 계획'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기대된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전두환 정권이 언론을 통제했던 사례가 극적으로 그려지고, 당시 언론의 비겁한 행태가 또다시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 전두환 정권 '보도지침' 폭로로 1989년 12월 국회 언론청문회에 참석한 김태홍, 신홍범, 김주언. ⓒ 민주언론시민연합

전두환이 사망했을 때 과거 찬양 보도를 반성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 언론은 바로잡지 못했다. 리포팅과 기사를 통해 과거 보도를 짚어보는 자사 비평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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