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성들은 왜 지방을 떠날까? [한국의 창(窓)]
지방소멸과 직결된 젊은 여성의 이탈
제조업 일자리와 무관한 여성 노동력
여성 경력 유지에 맞는 제도개선 필요
얼마 전 내가 맡고 있는 학부 수업에 '쇳밥일지'의 천현우 작가를 특강 강사로 초청했다. 청년 용접공으로 경남 지역의 여러 하청, 재하청 기업에서 일한 그의 경험을 책보다 더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지방소멸, 노동 양극화 등 이슈에 대해 나도 학생들도 꽤 아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그의 이야기에는 처음 듣는 대목도 많았다.
그는 지역 청년들이 숙련을 쌓기 어려운 현실, 미래 전망을 하기 어려운 현실 등에 대해서도 들려줬는데, 정부의 지역 경제 살리기 정책으로 가장 익숙한 '대형 제조업 공장 유치' 등은 어느 것과도 연결되지 않았다. 그동안에도 "실제 청년들은 제조업 일자리에 관심이 없다"는 목소리들이 있었으나 철없는 청년들 이야기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지역에 남은 제조산업과 일자리를 고도화하고 전략화하려는 노력은 비용 논리 앞에서 여전히 부차적이다.
그의 이야기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젊은 여성들이 떠나는 지역의 사정들이었다. '가임기 여성 인구'로 지방소멸지수를 매기는 방식이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 젊은 여성들이 떠나는 지역이 쇠락한다는 것은 이론이 아니라 현실임을 새삼 느꼈다.
설혹 지방에 좋은 일자리 수요를 높이는 정책을 한다 해도, 그 정책 방향에서 간과한 것이 바로 청년 여성의 존재다. 예로 특정 지역에 제조 일자리가 생겨나면 남성들은 유입되기도 하지만 여성 인구는 늘지 않는다.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의 이동에 가파른 증가세를 보여주는 청년 여성은 학교를 졸업해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수도권에 머물며 1인 가구로 살아갈 뿐이라고 최근 통계들은 일관되게 말해준다.
이런 현상의 이유를 묻는다면 "지역에 일자리 숫자만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가 적어서"라는 답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방의 거의 유일한 '좋은 일자리'인 대규모 제조업 공장들은 남성 편향이 강한 일터다. 최근 디지털화로 꼭 남성들만의 것일 필요가 없어졌는데도 이런 편향이 공고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스웨덴에서 2차 세계대전 이래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인체공학적 공장 설계'를 적극 도입하고 발전시킨 계기가 제조업에 여성인력을 유인하고 젠더 평등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이었다는 점을 우리의 맥락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편 한국에서 지난 10여 년간 빠르고 큰 폭으로 늘어난 지식·창의 산업이 수도권에 집적돼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사실 이 산업은 기술적·조직문화적으로 공간적 제약이 적다. '어디서나 일하기'가 상대적으로 가능하다는 의미다. 코로나19 기간 많은 사람이 재택근무를 긍정적으로 경험했음에도 기업들은 급격히 '백 투 오피스'를 선택했다. 경영진과 노동자 간 재택근무를 둘러싼 시각차는 다른 나라에서도 대두되고 있지만 이런 오피스 회귀는 한국에서 유독 강하다. 지식, 창의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원격근무가 정착하도록 돕는 정책당국의 적극적인 고민은 오히려 한국에서 더 필요하다. 인력과 좋은 일자리를 공간적으로 분산시키고 여성의 경력 유지에 도움을 줄 개연성이 높은 제도이기 때문이다.
또 민간 일자리를 인위적으로 늘리거나 옮길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정부 의지에 따라 지역 일자리의 양상을 바꿀 수 있는 여지도 있다. 최근 선진 산업 국가들도 디지털 전환에 따른 평생학습제도 개편, 직업 교육과 일자리 연계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런 노동시장 서비스를 지방에 촘촘히 그리고 획기적으로 확대한다면, 그리고 그 일자리들부터 여성친화적인 좋은 일자리로 만든다면 어떨까? 한국이 OECD 회원국 중 정부 지출 수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비롯한 사회서비스 지출 수준이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해봄직한 시도다. 여성들이 지역을 떠나는 이유에는 보수적 젠더 의식과 같은 지역의 문화적 이유들도 있다고 하지만 정부 노력에 따라 지역 경제 구조가 달라진다면 변화의 바람이 불 수도 있다.
권현지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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