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인사이트]오타니 “9000억은 10년 뒤에”… 다저스 “그 돈으로 전력보강”
그런데 오타니는 내년부터 계약이 끝나는 2033년까지는 해마다 200만 달러씩 총 2000만 달러만 받는다. 그리고 나머지 6억8000만 달러는 계약이 끝나는 2034년부터 10년 동안 나눠 받기로 했다. 전체 계약 가운데 97.1%를 나중에 받기로 한 것이다. 오타니가 이런 계약을 맺게 된 사정을 문답 형태로 정리했다.》
―도대체 왜 이런 계약을 맺은 건가.
그렇다. 연봉 지급 유예가 그만큼 유서 깊은 계약 방식이기 때문이다. MLB에서 연봉 지급 유예 계약 케이스가 처음 나온 건 1984년이었다. 브루스 수터(1953∼2022)가 애틀랜타와 6년 총액 910만 달러에 계약을 맺으면서 이 중 430만 달러(47.3%)를 나중에 받기로 했다. MLB에서 은퇴한 지 10년이 훌쩍 넘은 보비 보니야(60), 켄 그리피 주니어(54) 등이 여전히 이 제도를 통해 연봉을 받고 있다. 이렇게 연금 형태로 돈을 받을 때는 유예 금액에 이자를 붙이기 마련이지만 오타니는 이자 없이 10년간 6800만 달러씩 받기로 했다.
―아무리 그래도 97.1%를 나중에 받겠다는 건 좀 심한 것 같은데?
이번에도 단협에 정답이 들어 있다. 현행 MLB 단협 제16조는 “지급 유예 금액과 비율 모두 제한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계약 금액 100%를 나중에 받겠다고 해도 문제될 게 없다. 다만 실제로 이렇게 큰돈을 나중에 받겠다고 한 건 오타니가 처음이다. 이전에는 무키 베츠(31)가 2020년 다저스와 12년 3억6500만 달러에 계약하면서 1억1500만 달러를 나중에 받기로 한 게 기록이었다. 오타니는 광고 모델료 등 연간 ‘부수입’이 3500만 달러 정도 되기 때문에 당장 돈이 급한 것도 아니다.
―오타니가 유예율을 이렇게까지 끌어올린 이유는 뭔가.
자신이 뛰는 동안 구단의 ‘사치세(luxury tax)’ 부담을 최대한 줄여주기 위해서다. MLB 각 구단은 선수단 연봉 총액이 일정 기준을 넘어가면 사무국에 제재금을 내야 한다. 이 돈이 바로 사치세다. 내년은 2억3700만 달러가 기준이다. 오타니가 연봉 97.1%를 유예하면서 사치세 계산 때 오타니의 연봉은 7000만 달러가 아니라 할인율을 적용한 4600만 달러만 잡힌다. 다저스로서는 A급 투수 한 명을 추가로 영입할 수 있는 2400만 달러를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구단이 전력 강화에 돈을 쓰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여기서 오타니가 다저스를 선택한 이유가 드러난다. LA 에인절스 시절 한 번도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지 못한 오타니는 “다저스는 지난 10년간 매년 ‘가을 야구’에 진출했고 월드시리즈 우승(2020년)도 차지했다. 그런데도 이 10년 동안 한 번밖에 우승하지 못해 실패했다고 평가하더라. 정말 우승만이 목표인 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다저스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다저스는 올해 탬파베이에서 10승 7패 평균자책점 3.53을 기록한 타일러 글래스노(30)와 5년 1억3650만 달러, 이번 스토브리그 투수 최대어로 꼽힌 야마모토 요시노부(25·일본)와 12년 3억2500만 달러에 계약하는 등 전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연봉 지급 유예 방식이 사치세 제도를 무력화하는 건 아닌가.
그런 면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사치세 역시 일종의 샐러리캡(연봉 총액 상한) 제도다. 어떤 리그에 샐러리캡이 있다는 건 구단주 사이에 ‘선수 몸값이 너무 비싸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뜻이다. MLB 구단주들은 연봉 지급 유예 제도가 선수들의 몸값 상승을 부채질한다고 보고 있다. 노사 협상 과정에서 연봉 지급 유예 제도를 폐지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MLB 선수 노동조합의 반대를 이기지 못해 제도를 유지하기로 했다. MLB 선수 노조는 연봉 지급 유예 제도가 선수들의 노후 보장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구단 파산 등으로 돈을 받지 못할 우려는 없나.
선수와 연봉 지급 유예 계약을 맺은 구단은 계약 2년 뒤 7월 1일까지 선수에게 지급할 연봉을 확보한 뒤 사무국으로부터 확인을 받아야 한다. 다저스는 오타니와 2024년부터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2026년 7월 1일까지 6억8000만 달러를 확보해야 한다. 다저스는 투자 자문 회사 ‘구겐하임 파트너스’ 소유지만 오타니에게 당장 돈을 줄 필요가 없다고 해서 이 돈을 다른 곳에 투자할 수는 없다. MLB 사무국이 이런 안전 장치를 마련해 놓은 건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에서 1998년 피츠버그 구단의 파산 신청으로 선수들이 유예 연봉을 받지 못할 위기에 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츠버그 구단은 결국 어떻게 됐나.
사실 당시 피츠버그 선수들은 처음부터 연봉 일부를 나중에 받기로 한 게 아니라 구단 사정이 어려워 연봉이 밀린 것이다. 팀 간판 스타 마리오 르뮤(58)는 밀린 연봉 2500만 달러 가운데 500만 달러는 현금으로 받고 나머지 2000만 달러는 구단 지분으로 받기로 했다. 구단 최대 주주가 된 르뮤는 은퇴를 번복하고 구단주 겸 선수가 되어 링크에 복귀하기도 했다. 은퇴 후에도 구단 회장직을 유지한 그는 2021년 구단을 매각해 3억6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국내 프로야구에도 연봉 지급 유예 계약이 있었나.
소문은 무성했지만 ‘공식적으로’ 연봉을 나중에 받기로 한 선수는 없다. 거꾸로 연봉을 ‘먼저 받은’ 선수는 확실히 있다. 대표 사례가 SSG 김광현(35)이다. SSG는 지난해 3월 MLB에서 돌아온 김광현과 4년 151억 원에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2022년 연봉으로 전체 계약 금액의 53.6%인 81억 원을 지급했다. 이 역시 샐러리캡 회피 수단이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올해부터 샐러리캡을 도입하기로 하면서 지난해 연봉을 기준으로 상한선을 확정하기로 했다. 이에 각 구단은 다년 계약을 맺은 선수들의 연봉을 지난해에 몰아주면서 상한선을 최대한 높이려 애썼다.
―국내에도 연봉 지급 유예 제도 도입이 필요할까.
한국 프로야구도 이런 계약 형태를 ‘양지’로 끌고 나올 필요가 있다. 연봉 지급을 미루더라도 샐러리캡 계산에 반영되는 연봉을 일부 적용하도록 원칙을 세운다면 구단과 선수도 이면 계약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돈이 많은 구단의 우승 독식을 막는 샐러리캡 취지를 살리면서도 구단과 선수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오타니의 계약을 통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강동웅 스포츠부 기자 lep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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