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경제난’ 아르헨, 최고액권 10배로 발행 검토

김지원 기자 2023. 12. 26.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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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현지 시각)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정부 규탄 시위에서 한 여성이 "이건 (경제) 위기가 아니라 사기다"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등으로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가 최대 5만 페소(약 8만원)짜리 고액권 지폐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고 현지 매체 클라린·라나시온 등이 25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현재 최고액권 지폐는 2000페소권인데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이 10배인 2만페소권이나 25배인 5만페소권을 발행하는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다고 한다. 좌파 포퓰리즘 정권이 망쳐 놓은 경제를 되살리겠다며 당선된 극우 경제학자 출신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사에서 “매년 1만5000%에 달할 수 있는 인플레이션을 사전에 근절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워야 할 것”이라며 강도 높은 개혁을 예고했었다.

이 나라 중앙은행이 최고 5만페소의 고액권 발행을 검토하고 있는 이유는 고질적인 고물가에 외환보유고 고갈까지 겹쳐 자국 화폐인 페소 가치가 폭락했기 때문이다. 현행 최고액권인 2000페소는 미국 달러로 2.43달러, 한국 돈으로 3000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실제 통용되는 암환율 기준으로는 2달러(약 2600원)에 그친다. 1991년 화폐 개혁으로 등장한 페소는 당초 ‘1페소=1달러’의 환율로 시작했는데, 화폐 가치가 폭락하면서 페소의 달러화 대비 가치는 1000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현재 아르헨티나의 최고 액면가 지폐인 2000 페소 지폐./연합뉴스

밀레이 정부는 당초 페소를 폐지하고 페소를 미국 달러로 대체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한계로 공약은 보류 상태다. 중앙은행이 달러 등을 주고 국민들이나 기업들이 갖고 있는 페소를 모두 사들여야 하는데 외환보유고가 바닥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에 2만·5만 페소권 발행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이조차도 난관에 부딪혔다. 한국으로 따지면 조폐공사에 해당하는 카사데모네다 사장 자리가 공석인 데다, 2만페소권이든 5만페소권이든 새 고액권을 발행할 돈이 없기 때문이다. 당장 아르헨티나 주문에 따라 중국에서 현행 최고액권인 2000페소 지폐 4억장을 준비해 놨는데, 대금을 지급할 여력이 없다고 라나시온은 전했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당초 5000·1만 페소권 발행을 논의하다가 고물가가 극심해지면서 2만·5만 페소권 발행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클라린은 보도했다. 지난달 아르헨티나 물가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160%로, 한 달 전 대비 18%포인트, 1년 전 대비 68%포인트 뛰었다. 아르헨티나 시중은행들은 새로운 고액권 지폐 발행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페소 가치가 폭락하면서 지폐 운반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밀레이 정부 이전의 좌파 페로니즘(대중 영합주의) 정부는 초고액권 지폐가 고물가를 부추기고 탈세와 돈세탁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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